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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

연출: 유해진, 작가: 노경희

기획의도

“이제 나 밥 안 먹을 거야” 105세 시어머니의 폭탄 선언!

“방에 들어올 수가 없어. 어머니가 똥을 싸서
다 이렇게 손으로 파고 뭉개고 여기다 다 묻혀 가지고”

  거동이 불편해 기저귀를 차고 누워있는 105세 시어머니 김말선 씨. 오늘도 일이 터졌다. 시어머니가 또 기저귀에 대변을 보고 손을 댄 것! 평소에는 혹여 시어머니가 돌아가실까 불철주야 시어머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며느리 박영혜(68) 씨. 옛날에 깔끔하고 멋쟁이었던 시어머니가 안타깝긴 하지만 이때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난다. 옛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노인들을 보며 흉을 봤던 시어머니, 영혜 씨는 과거 이야기를 하며 시어머니의 자존심을 박박 긁는데... 잠자코 영혜 씨의 하소연을 듣고 있던 시어머니,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갑자기 밥을 먹지 않겠다며 폭탄선언을 한다!


꽃보다 예쁜 두 할머니 

“어머니 꽃 같으세요. 꽃 같아요”

  시어머니의 105세 생신 잔칫날! 두 할머니는 물론 손주와 손주며느리, 증손녀까지 3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1912년생 시어머니와 2012년생 손녀는 딱 100년 차이! 제 나이 세는 것도 까먹은 시어머니 앞에서 ‘청춘을 돌려다오’ 노래를 구성지게 뽑아내는 친정엄마. 두 할머니 덕에 가족들의 얼굴에는 활짝 웃음꽃이 피는데...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그곳에서 할머니 두 분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며느리가 있다. 2001년 남편과 사별한 후 거동이 불편한 105세 시어머니 김말선 씨와 당뇨로 고생중인 88세 친정어머니 홍정임 씨를 14년째 모시고 있는 박영혜(68) 씨가 그 주인공. 2010년부터는 두 할머니의 건강을 고려해 공기 좋고 물 좋은 제주도에서 특별한 동거를 이어오고 있다.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살기 전, 시어머니를 모신 것까지 합치면 무려 40년을 넘게 며느리로 살고 있는 영혜 씨. 호랑이 시어머니의 한마디에도 벌벌 떨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시어머니의 식사는 물론 대소변까지 처리하며 지극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한 때 며느리 영혜 씨의 건강문제로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야 했던 때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곁에 없어 적적해하는 친정엄마와 집에 오고 싶어하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밟혀 금세 다시 집으로 모셔오기도 했다. 몸은 고달프지만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는 이제 영혜 씨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두 사람이 되었다. 식당 일과 귤농사를 지으며 두 할머니를 돌보기까지, 하루에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하지만 영혜 씨의 눈에는 꽃보다 예쁜 두 할머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나누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끈끈한 우정!

“호랑이는 수염이 있지도 않아.”
“우리는 맨날 산골에서만 살아서 낮에 문 닫고 바깥에 내다보고 있으면 개 같은 거 있잖아. 개 같은 거 닭 같은 거 있으면 호랑이가 살금살금 내려와 갖고 그거 잡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고 다닌다고”

  옛날이야기를 꺼내보노라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빼놓을 수 없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 수 십 년 전에 본 호랑이 이야기에 서로 맞장구치느라 바쁘다. 이럴 때는 꼭 둘도 없는 자매 같은 두 할머니. 하지만 같이 살면서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라고. 친정엄마의 제안으로 같이 살게 된 세 사람이지만, 매사에 깐깐한 시어머니와 정 많고 유순한 친정엄마는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였다. 하지만 식당일이며 귤농사에 바쁜 영혜 씨 대신 사돈을 돌보는 일까지 척척 해내고 있는 친정엄마 정임 씨. 오히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돈이 어린 시절 일찍 여윈 부모님같이 여겨진다는 친정엄마. 그래서일까? 부부싸움에 대한 신문기사 하나에도 사돈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할머니, 할머니는 예전에 젊었을 때 할아버지랑 자주 싸웠어?”
“아니야 잘 안 싸웠어”
“할아버지 지금 있으면 어떨까?”
“있으면 좋아”
“좋아?”
“응, 참 착했어요.”

  홍정임 할머니가 50세 되던 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부부간에 다툼도 몰랐건만 문득, 허망하게 세상을 등진 남편 생각에 홍정임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지는데...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들 대신 서로의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두 할머니. 이제는 단순한 사돈관계를 넘어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엄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심상치 않은 친정엄마의 상태
  시어머니의 식사와 말동무를 책임지며 영혜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친정엄마. 그런 엄마가 요새 이상하다? 며칠 전 놀러온 둘째 아들도 몰라보더니 죽만 드셔야 하는 시어머니에게 고두밥을 먹이질 않나, 딱딱한 빼대기죽을 먹인 흔적까지 보이는데... 영혜 씨가 빼대기죽에 대해 추궁하자 친정엄마는 안 먹였다며 손사래를 친다. 처음에는 발뺌인 줄로만 알았던 엄마의 행동. 하지만 엄마는 며칠 전 몰라봤던 둘째 아들을 막내 삼촌이라며 우기기까지 하는데...

“준이가 와서 이틀 밤 자고 갔는데 누구냐고 모른다고 그랬잖아 엄마가 저 사람 저 아저씨는 왜 안 가냐고 모른다고 그랬잖아”
“그게 막내 삼촌이지 준이야?”
“막내 삼촌 죽은 지가 몇 년 됐는데 무슨 막내 삼촌이야, 엄마. 준이잖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은 엄마에 결국 영혜 씨는 폭발하고 만다.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병이 엄마에게 온 것은 아닐까? 시어머니에 비해 잘 보살펴드리지 못했던 친정엄마. 엄마와 하고 싶은 것도, 아직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은 영혜 씨. 병원에 가기 싫다는 친정엄마를 겨우 설득해 치매 검사를 받는데... 친정엄마 정임 씨는 정말 괜찮은 걸까?


여생(餘生), 그 평범하고도 특별한 2년여의 기록
  미음마저 넘기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진 시어머니. 급기야 숨이 넘어가듯 기침을 한다. 고령의 나이다보니 종종 응급실에 간 적은 많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괴로워하는 시어머니. 된장국과 미숫가루가 먹고 싶다는 시어머니의 사소한 부탁조차 들어줄 수 없는 며느리 영혜 씨의 마음이 타들어간다.

“겁나니까, 내가. 시어머니가 대소변도 못가리고 저러고 계시지만 그래도 돌아가시는 거는 두렵거든요. 그래도 옆에 계시니까. 든든하고”
- 박영혜 씨의 인터뷰 중

  한편 사돈이 집으로 돌아올까 하루 종일 집 앞에 마중 나와있는 친정엄마, 하지만 시어머니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서로가 기댈 수 있는 나무이자, 보기만 해도 예쁜 꽃이었던 세 사람. 그 평범하고도 특별한 2년여의 시간을 휴먼다큐 <사랑>에서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