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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

신동현 내사랑

기획: 전연식 연출: 최병륜 글.구성: 윤희영

기획의도

 그날 이후 집안의 시계는 8시에 멈춰있다.
2008년 9월 22일 8시로 부부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 그 시각, 하나뿐인 아들 동현(당시 25세)이가
10개월간의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2007년. 복통 때문에 병원을 찾은 동현에게
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판정이 내려졌다.
급히 위 절제 수술에 들어갔지만, 위를 떼어내고 나니 간에 암이 퍼져있고, 간을 절제하고 나면
임파선에 전이가 되었다. 급기야 복부 전체에 암이 퍼졌다. 절제수술을 한지 단 이틀 만에
의사는 아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동현이는 부부의 곁에서 10개월을
더 버텨주었다. 동현이가 세상을 떠난 그 당일 까지 부부는 설마설마 하면서도
아들이 떠날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준비 없이 아들을 보냈으니 부부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엄마 명신씨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아빠 희철씨는 차가운 냉동고로 들어가는
아들의 시신을 붙들고 한동안 몸부림을 쳤다. 부부는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랬던 부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별 가족들이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 위로의 댓글을 달고
사별 가족 모임에 나가면서 어렵게 세상 밖으로 나온 것.
다시 동현이 엄마 아빠로 불리면서, 부부는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둘은 더 용감한 결심을 하게 된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며 남은 생을 살기로 한 것.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가는 아들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이 부부를 더 큰 사랑으로 이끌어 가는데‥
이 이야기는 자식을 잃은 부부가 극한의 고통을 극복하고, 가슴에 묻은 아들과 함께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주요 내용

“내 아들 신동현. 엄마 아빠 지켜봐줘.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신동현 엄마,
아빠로서 잘 살다가 널 만나러 갈게.
그땐 꼭 마중 나와 줘. 꼭 마중
나와 줘야 돼. 사랑한다. 우리 아들” 
          - 엄마 이명신 씨의 편지 中



▶ 하나뿐인 아들이 떠났다..!

 “엄마, 미안해. 고마워.
이다음에 우리 다시 만나면
내가 다 갚아줄게. 사랑해..
이게 동현이의
마지막 인사였어요.”
 - 엄마 이명신 씨 인터뷰 中

 

 엄마가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서 옷 속에 품고 달려오던 아들 동현이를 얘기하면서
명신씨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다 큰 아들이 뒤에서 안겨올 때, 귀찮으니
저리가라고 뿌리쳤던 일을 생각해내고는 금세 후회로 가슴을 내리쳤다. 한 번 더 안아줄걸.
한 번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방도, 물건도 그대로인데 그 살가웠던 아들만 없다니,
기가 막히다.

 2007년. 복통 때문에 병원을 찾은 동현에게 위암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판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이어진 수술들. 위를 떼 내고 나면 간에 암이 퍼져있고, 간을 절제하고 나면
임파선에 전이가 되었다. 급기야 복부 전체에 암이 퍼졌고, 암 선고 받은 지 10개월 만에
의사는 아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라고 했다. 설마설마 하면서도 부부는 아들이 떠날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준비 없이 아들을 보냈으니 부부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엄마 명신씨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아빠 희철씨는 차가운 냉동고로 들어가는
아들의 시신을 붙들고 한동안 몸부림을 쳤다. 부부는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 아들 앞세운 죄인으로 산다는 것

“미안하다 우리 아들..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 아빠 신희철 씨의 독백 中


 지난 4년, 동현을 떠나보낸 부부는 힘겨운 시간을 견뎌왔다. 36년 동안 군인으로
살아온  희철 씨지만 이제 동현이 또래 청년들만 봐도 눈물이 난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동현을 위해 잘 살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가끔은 아들이 없다는 이 현실이 견딜
수가 없다. ‘살아서 뭐하니. 우리도 그만 살자, 아들한테 가자…’ 어두운 방에서
부둥켜안고 울기를 여러 날. 부부를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은 ‘떠난 아들은 잊고,
산 사람은 살자’ 라고 위로하지만, 부부에게는 아들을 잊으라는 말이 가장 잔인하고 야속하다. 


▶ 아들을 향한 사랑, 이타적 사랑으로

“우리 아들 떠나보내고요,
나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서
내가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기도했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로 같이 위로 받고
위로해주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엄마 이명신 씨 인터뷰中


 모진 세월을 살아내면서 부부가 가장 많이 위로 받은 곳은 ‘사별가족 모임’ 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슬픔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금세 친해지고,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다.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태호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1년 전, 익사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태호 엄마.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과
두려움에 태호의 사고현장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그녀는 명신씨에게 작은 소원 하나를
털어놓는다. 꼭 한번 그곳에 가서 꽃이라도 뿌려주고 싶다는 것. 얘기를 들은 명신씨
부부는 용기를 내어 태호 엄마와 함께 사고현장을 찾아 가는데…


▶ 아들을 떠나보낸 그 곳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다
“ 사람들은 자기가 정해놓은 애도기간이 있더라고요. 그걸 딱 지나면 그냥 평소대로
살아야 돼요. ‘아직까지 그러고 있어?’ 그런데 자식을 아직까지 라는 게 없잖아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그 아이를 놓을 수 없거든요.“
- 엄마 이명신 씨의 인터뷰 中
 

 

동현의 납골묘, 동현이가 첫 아르바이트를 한 곳, 가족이 함께 보낸 여행지.
동현이의 기억이 남은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찾아가는 부부. 그러나 지난 4년간 단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동현이 짧은 여생을 마친 병원. 부부는 하늘에서
아빠엄마를 지켜보고 있을 동현을 위해 큰 용기를 낸다. 호스피스병실에서 마음을 다해
동현이를 돌봐 준 수녀님과 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아들이 남겨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기로 결심한 것인데‥
 동현을 보낸 지 4년 만에 다시 찾은 병원. 명신 씨는 병원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차가워진 아들을 이 병원에서 데리고 나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닌 채, 부부는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게 된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는 첫날, 머리를 깎고 야윈 모습의 환자들을 보니 투병하던 아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희철씨 부부. 뒤돌아 겨우 눈물을 참아낸다. 부부는 아픈 기억을
잠시 접고, 성심성의껏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마음을 나누고 가까워진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마주하며 고비를 겪는데‥ 부부는 호스피스 봉사를 계속 할 수 있을까.

아들바라기, 희철씨 명신씨 부부의 또 다른 사랑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