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우산을 내어주느라 젖어버린 그의 왼쪽 어깨. 한 쪽 귀가 고장난 내가 들을 수 있도록 힘차게 외치던 전화번호. 창가의 작은 꽃다발. 같이 웅얼거리던 유행가 소절. 나를 태우고 어디라도 가줄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자전거…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나를 설레게 했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긴이별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할머니의 영정 앞에 나타난 그와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슬픈눈빛을 하고 있었는지...
서울로 떠나던 그와 나는 정말 사촌 지간처럼 악수를 했습니다.
그가 하는 마지막 말조차 듣지 못하는 내 귀가, 우리 아버지 딸인 내가.. 너무 싫어 매일을 울었습니다.
그를 생각하면 웃기만 하던 나의 눈은 이제는 눈물말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가 떠난 뒤 4년… 수술을 한 내 귀는 그의 목소리 하나만 빼고 별의별 소리를 다 듣습니다. 그가 선물했던 테이프에서는 오늘도 같은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콧물이 쏟아집니다. 예전에 할머니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했던것처럼...
오늘, 질리도록 듣던 카세트테이프의 노래가 거리에서도 들려왔습니다.“지겨워…”하면서도 한참이나 그 노랠 들으며,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런 제 등뒤로 4년전이었음 들리지도 않았을 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천천히 발을 떼며 뒤돌아 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걸어갑니다.
혹시나 울음소리가 새나올까봐 애써, 입술을 깨물고는 꿋꿋이 걸어갑니다. 어쩌면.... 어쩌면...이게 끝은 아닐거라고....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게 될거라고.... 나 아직도 현지석.....당신을 사랑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