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 1999.9.12~ 일요일 밤 11시 30분
2005(3/20 첫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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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연출에 임하는 소감

200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반기 "연출에 임하는 소감"

 

 

통산 80회 / 6월 20일 <중국의 6.25 참전> / 연출 정길화

 

  6.25 이후 54년이 지났다. 그동안 방송에서 많은 한국전쟁 관련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중국의 6.25 참전에 관한 본격적인 접근은 없었다. 한국, 미국, 중국...그들은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싸웠지만 이미 미국과 중국간에 데탕트가 이루어진지 오래고, 한국도 중국과 수교한지 12년이 되고 있다. 나아가 이즈음 중국은 6자회담과 룡천 참사에서 보듯 한반도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54년전 중국의 6.25 참전을 돌아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돌이켜보면 당시 중국은 오랜 기간의 내전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할 여력은 없었다. 그러나 6.25 발발 초기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고 1950년 9월 15일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 이후 전황이 역전되자 마침내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명분으로 한반도에 출병하게 된다. 중국은 왜 참전을 결정한 것인가? 중국에게 한국전쟁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중국의 참전 결정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전쟁이후 중국은 무엇을 얻고 잃었는가...등등은 오늘의 시점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한반도를 대하는 중국의 변치 않는 원칙은 그들의 '국익'이다. 취재와 접근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이 화두를 안고 제작에 임하고 있다.
 

통산 81회 / 6월 27일 <'신의 아들'과의 전쟁> / 연출 한학수

 

  '신의 아들'이네 '어둠의 자식들'이네 하는 말들이 군입대 비리와 관련해서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먼 얘기를 꺼낼 것도 없이, 우리는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병역의무를 이행했는가의 문제를 중요한 도덕적 잣대로 활용하고 있다.

  창군이래 최대 병역비리 수사라고 알려진 지난 '1998년이후 군검 합동수사'는 원용수 준위의 수첩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원용수 리스트'는 서울지역 면제비리의 대부인 박노항 원사 검거로까지 이어지며, 숱한 기록과 비화를 남겼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수사관들은 '전쟁을 치르는 심정'으로 임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들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우리에게 국방의 의무는 무엇인가? 당시 검찰관들과 군의관 그리고 병무비리 브로커 등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이 문제에 답하고자 하며, 아울러 병역비리 수사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해본다.
 

통산 82회 / 7월 4일 <1972.7.4 박정희와 김일성> / 연출 이채훈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어느덧 친숙한 이름로 자리잡았다는 얘기도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에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늘 새로워야 하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이즈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또 만들어야 하는 마음은 편안치 못하다. 익숙한 것 같은 주제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는 작업은 고통스럽다.  

  7.4 남북공동성명에 남북이 합의한 72년, 남의 박정희와 북의 김일성은 엄연히 냉전 상태에 있었다. 기나긴 적대상황의 소용돌이 사이로 잠깐 찾아온 대화국면에서 생겨난 이 성명은 다시 체제 경쟁의 폭음속에 파묻혀 버렸다. 늘 으르렁거리던 부부가 잠시 화해하여 자식을 만들고 다시 결별을 선언한 꼴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때 생겨난 아기인 남북공동성명의 통일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언젠가 다가올 통일을 준비할 때 꼭 되새겨야 할 7.4 남북공동성명을 차분히, 정확히 그릴 생각이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속마음에도 다가서 보고 싶다. 그러나 두 남과 북의 두 지도자에 모든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와 화해, 통일은 평범한 시민들이 주인으로 나설 때 비로소 이뤄지는 거니까...
 

통산 83회 / 7월 11일 <94년 조문파동과 공안 정국> / 연출 유현

 

  1994년 여름, 북한 주석 김일성의 사망소식은 이 땅에 어떤 소동을 일으켰던가. 남북정상회담을 보름 앞두고 숨진 한쪽 정상의 죽음 앞에, 그에 대한 조문 여부가 전 국민적인 색깔논쟁으로 비등하면서 국회의원에서 학생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국민이 '빨갱이'로 몰리고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같은 시기에 논리적 근거나 증거도 확실하지 않은 박 홍 총장의 '주사파' 주장은 학생운동권과 진보 학계, 일부 정치권에 용공딱지를 붙이면서 대대적인 마녀사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색깔시비는 분단이후 남한사회에서 정적을 거세하거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고 최근까지도 이것은 어김없이 활용되어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적인 상황에서의 매카시즘이 90년대 이후 곳곳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바로 10년전인 1994년 당시 정부와 언론, 국민 모두의 이데올로기적 미성숙이 남북관계 발전의 시계를 얼마나 늦추었는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소박한 질문 또는 출발점; 1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통산 84~86회 / 7월 18,25일,8월 1일 <한국전쟁과 포로>3부작
연출 김환균 /
제1부 : 철조망 속의 지배자들 , 제2부 : 철조망 속의 전쟁
제3부 : 철조망 속의 안과 밖

 

  6월이 오고 또 우리는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 50년도 더 지난 전쟁을, 기억하는 것이 고통일 수밖에 없는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 땅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포로들 문제를 다루어 보려고 한다. 포로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전쟁을 끝내자는 휴전협상은 2년이나 더 지속되고 그 사이 포로들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목숨들이 사라져 갔다는 것은 한국전쟁 최대의 역설이다. 세계 전쟁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또 하나의 전장'으로서의 포로수용소, '철의 삼각지대'보다 더한 살육이 행해졌던 철조망 속의 전장, 무엇이 그런 광기를 자극했던가?

  휴전이 되고 포로수용소가 있던 자리에는 초목이 자라나거나 건물이 세워졌다. 그러나 수용소의 기억은 '과거'만은 아니다. 여전히 남과 북에 억류된 포로들, 그들에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