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적인 인물로 집안의 결정들을 주도하고, 겉으로는 근엄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상을 가지고 있으나, 세파와 근대화의 물결, 그리고 집안의 어두운 숙명에
쓸쓸하게 끌려간다. 자손이 귀한 집안으로 고아였던 자신도 큰아버지의 양자로
지냈다. 그 만큼 아들에 대한 아쉬움은 크나, 그것을 딸들에게 내색하지도 않을
뿐더러 딸만 낳은 부인에 대한 원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렸을 때 첫사랑에 대한
상처와 근엄한 성격 때문에 부인과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
감정표현에 서툴러 부인에 대한 애정표현 뿐 아니라 타인들에게 자신을 감정
을 쉽게 보여주지 못한다. 다만 가끔 아들처럼 믿는 어장 책임자 기두에게 속마음
을 털어놓는다. 내심 기두를 자신이 가장 예뻐하는 셋째딸 용란의 사위로 생각하나
그것마저 뜻대로 안된다.
큰딸 용숙이 과부가 되지만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 병들어 죽어가는 사위한테
무심했던 게 괘씸하고, 애초부터 욕심 많고 허황된 큰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둘째딸인 용빈을 아들처럼 여겨 가끔 집안 일을 의논하지만, 쉽게 기대지는
못한다. 그나마 셋째인 용란(정열적인 성격이 자살한 어머니와 같아)에게는
애정을 보이는데 자기 집 머슴이었던 한돌과의 연분을 알게 되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아들이기를 고대했던 막내는 딸로 태어나자 작지 않게 실망한다.
자기 집 머슴의 아들이었던 정국주의 음모로 빚을 내 구입한 배가 물귀신이
되어 돌아오자 몰락의 길을 걷는다. 자기의 불행뿐 아니라, 불행해지는 딸들의
비극에 손도 못대고, 괴롭게 지켜보던 그는 결국 부인과 막내딸이 비명횡사하자
기력을 잃고 병에 걸려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