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 황토고원


방송시간 : 3월 11일 (일) 11시 40분 ~12시 40분



 

■ 중국인들은 왜 황색(黃色)을 좋아하는가?

  황하는 중국의 어머니강(母親河)이다. 중국인들은 황하에서 태어나 황하에서 자랐다고 믿는다. 중국인의 황색 피부는 황하에서 물든 것이라고 하고, 중국인들의 시조는 황제(黃帝)라 부른다. 이렇듯 황하와 더불어 5천년을 함께 해온 중국인들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코드는 황색이다.

  중국인들에게 황색은 신성한 색이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황토가 양육한 민족이라 여기며, 황토의 색인 황색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색이라 믿는다. 황토의 깊음과 광대함, 부드러움, 인자함은 중국인의 성격을 창조하고 거대한 황색 문명을 낳았다. 그 황색 문명의 중심에 황토고원이 있다.

■ 황하를 낳은 땅, 황토고원

 아시아 내륙의 고비사막에서 불어온 모래가 쌓여 형성된 중국 북부의 황토고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황토지대로 그 면적이 한반도 전체의 3배에 달한다. 청해성, 영하회족자치구, 감숙성, 섬서성, 산서성, 하남성 등 6개 성과 자치구에 분포하고 있는 황토고원은 황하를 황색으로 만드는, 말 그대로 ‘황하의 어머니’다.

 이 광활한 황토고원에서 중국인들은 북방의 유목민족과 싸우고, 물과 싸우고, 먼지와 싸우며 척박한 황토의 삶을 일궈왔다. 그리고 그 도전과 응전의 시간 속에서 중국 최고(最古)의 황하문명을 탄생시켰다.

 MBC <황하>팀은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읍지였던 서안이 위치한 섬서성의 황토고원 마을을 찾아갔다. 섬서성 유림시에서 인적하나 없는 황토고원을 한참 지나서야 나오는 미지현 마을. 그 곳에는 황토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취재팀은 12년 만에 처음 내린 눈이 황토고원에 절경을 만들어내는 겨울에서 척박한 황토밭에 새순이 돋아나는 봄, 쉴 새 없이 불어 닥치는 먼지바람으로 눈을 뜰 수도 없었던 여름, 그리고 계단밭 곳곳에 주먹만한 사과가 열렸던 가을까지 황토고원의 사람들과 사계절을 함께했다. 그 속에는 메마른 땅에서 수천년을 살아온 중화민족의 삶과 지혜가 있었다.

  6부에서는 중국을 낳고 황하를 낳은 땅, 황토고원과 그 안에서 고단하지만 넉넉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사라져버린 섬서성 북부의 전통적인 결혼식, 장례식, 천인요고, 앙가 등 황토고원의 풍속을 소개한다.

■ 신마저 버린 땅, 황토고원

- 십년구한(十年九旱), 섬서성 봄비는 석유보다 귀하다

 

황토고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어느 중국 언론인은 이렇게 탄식했다.

“이 땅은 정녕 신마저 버린 땅이구나.”

10년 중 9년은 가뭄이 든다는 황토고원은 말 그대로 메마른 땅이다. 연강수량이 500mm도 안되는데다 지형이 험하고 경사가 심해 물을 대기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마저 포기한 척박한 대지에도 사람들은 계단밭을 만들고 땅을 일궈 씨를 뿌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황토고원의 수많은 등고선들은 황토에 기대 살아가는 가난한 농민들의 피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 황토고원의 독특한 토굴집, 요동

 

  황토고원이라는 독특한 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주거양식 ‘요동’. 황토산 허리에 굴을 파고 지은 토굴집을 가리키는 요동은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척박한 황토고원에서 살아야했던 가난한 농민들이 고안해낸 삶의 방편이자 지혜의 산물이다. 침실, 거실, 주방이 모두 갖춰져 있는 아치형의 요동은 보온과 단열이 잘되고 견고해 지어진 지 천년이 넘는 것도 있다. 또한 황토고원 사람들은 채소나 과일도 ‘채요’라 불리는 요동에 저장하는데 채요에 넣어두면 겨우내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봄 파종 때까지 무사히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신석기 때부터 있었다는 요동에는 지금도 4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최근에는 황토고원을 넘어 도시의 고층빌딩 사이에도 요동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건축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황토고원의 홍위병

  ‘중화인민공화국’ 선포를 2년 앞둔 1947년, 모택동은 부인 강청과 섬서성 양가구 마을의 한 요동에 강청과 함께 머무르면서 혁명 이론을 연구하고 수십편에 이르는 책을 썼다. 그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이개생(李改生) 씨는 문화대혁명 당시 모택동을 신봉하던 어린 홍위병이었다. 이씨는 천안문 광장에서 모택동을 보았던 순간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차고 다녔던 ‘홍위병’ 완장과 모택동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 등을 상자 아래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씨.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광기를 내뿜었던 문화대혁명의 바람은 오지 중의 오지인 황토고원에도 불어 닥쳤다.

 

■ 중국 전통문화의 보고(寶庫), 황토고원

  황토고원에서의 삶은 인간과 자연의 투쟁의 역사다. 가난의 땅인 황토고원의 삶은 늘 고단했고, 하루에 두 끼만 먹어야할 정도로 생활은 궁핍했다. 하지만 그들은 궁핍한 생활 속에도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마음은 항상 자유로웠다. 이러한 황토고원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과 삶에 대한 여유는 매우 우수한 전통 문화를 낳았다. 그리고 그 문화는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존돼 왔다.

- 천지를 뒤흔드는 북소리 ‘천인요고’

  

  허리에 차는 북을 가리키는 요고(腰鼓)는 전쟁에서 사기를 고무시키고 적을 위협하기 위해 북을 치던 데서 유래했다.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생존권을 놓고 늘 충돌하던 무대였던 황토고원에서 요고는 북소리와 먼지바람으로 적의 기세를 제압하기 위해 쓰이던 것이다.

  취재팀이 찾은 섬서성 북부 안새현은 요고 춤으로 가장 유명한 지역이다. 황토고원 정상의 먼지바람 속에서 천명이 넘는 농민들이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며 추는 요고 춤은 신선함을 넘어 웅장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 풍년을 기원하는 길놀이, 앙가

  

  앙가(秧歌)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농사일에 관한 노래와 춤이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설날 무렵이면 앙가춤을 추며 지난해의 추수를 자축한다. 꼭두각시놀이를 하고, 악대를 따라 마을 여기저기를 돌며 한해의 무사태평과 풍작을 기원하는 앙가는 우리나라의 길놀이와 비슷한 풍습이다. 색색으로 장식한 우산을 들고 추는 앙가춤은 그 동작이 시원하고 힘차며, 중국인들은 밥 먹다 뛰쳐나와서 구경을 할 정도로 앙가를 좋아한다고 한다.

  취재팀은 2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앙가의 원류, 섬서성 북부 미지현을 찾았다. 농한기인 겨울에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추는 앙가 춤은 춤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황토고원 사람들의 여유와 신명이 그대로 전달된다.

- ‘학을 타고 서쪽으로 돌아가다’  황토고원의 장례식

  황토고원 일대에는 중국 전통장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평생 황토를 일구며 가난하게 살았던 농부들이 죽어서야 누리는 마지막 호사, 그래서 황토고원의 장례식은 절차와 격식을 갖춰 성대하게 치러진다. 가족이 모두 모여 절을 하고 추도문을 읽는 개제(開祭), 망자의 혼령에게 길을 인도하기 위해 밤에 등불을 켜는 살로등(撒路燈), 악대를 앞세우고 해가 뜨기 전에 장지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출빈(出殯) 등은 화장이 일반화된 중국에서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풍속이다.          

- 온 마을의 경사, 황토고원의 결혼식



  황토고원의 결혼식은 우리나라처럼 돼지를 잡는 것에서 시작한다. 보통 농한기인 겨울에 치러지는 결혼식은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는 축제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새로 들어오는 신부를 환영하고, 음식을 나누고, 인정을 나눈다. 옛날 방식 그대로는 아니지만, 섬서성 도진진의 황토고원 마을에서 펼쳐지는 결혼식은 중국 전통의 흥미로운 결혼식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