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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진 계순이 벽을 보고 죽은 듯 쓰러져 누워있다. 아줌마와 이사장 처
가 웃목에 앉아있다. 그동안 계순도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된 이사장 마누라
이다.
여자 …세상에! 믿을 게 없어서 남자를 믿어? 그것도 지나가다
길바닥에서 만난 남자를 믿어? 당신 등신 아니가, 응?
여자, 방바닥을 쳐가며 안타깝고 화도 난다.
아줌마 아줌마같으면 안 믿어? 이혼했다고 서류까지 떼다 보여
주고, 자기네 형님, 조카, 누님 다 만나서 결혼할 여자라구
인사시키고 그런 남자를 안 믿고 누굴 믿어? 누굴?
여자 아이고 그 웬수! 그때 그랬고마, 그때! 내가 진짜로 그
인간 지긋지긋 해서 참말로 서류에 도장 쿡 찍어뿔고, 한
일년 애들 데리고 나가서 따로 살았던 때.
아줌마 어쨌건 지금두 아줌마 호적상 남남이잖아, 이사장 하고?
그러니 명백하게 말하면 아줌마, 우리 사장한테 이럴 권리
없다구!
여자 권리라? …그기 뭔데? 에미애비 하고 자식 사이에 권리라
는 기이 더 먼저 있나?
아줌마 말이 그렇다 그 말이잖아요!
여자 새끼들 둘도 아니고 셋씩이나 놓고 사는데. 남남 되기가
죽기보다 더 힘들더라꼬.… 칵 그냥 평생 그 인간 안 보고
살았으마 싶은데, 새끼들 한테 애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
안 듣게 할려고 내가 간도 쓸개도 다 내던지고 산다꼬! 아
이고…내 …팔자야!
아줌마 울지마요. 정말 울고싶은 사람은 우리 사장이요!
계순 (눈감은 채 그대로)
아줌마 간도 쓸개도 다 내준 사람은 우리 사장이란 말이예요!
여자 아이고, 아이고… 나는 백날 천날 따라살아도 이런 것 구
경도 못했다.
여자, 계순 옷장을 열고 계순옷을 꺼내 흐트린다.
여자 느들은 칠칠하게 살았구나아! 아이고, 지 계집, 지 새끼는
못 먹이고 못 입힌 주제에 어떤 년은 호강하고 살았구나.
이거 다 뭐꼬… 이게?
여자, 옷가지를 하나 들어서 찟기도 한다. 아줌마, 질겁해서 빼앗는다.
아줌마 이 아줌마가! 그 인간이 뭐 우리 사장한테 변변한 옷 한
벌 사준 줄 아나봐? 이것 다 우리 사장이 산 거라구!
계순, 그대로 눈 허공에 뜬 채로 미동도 않는다. 죽음같은 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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