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회
     

S#1. 미숙 시장


홍여사와 상옥이 마치 모녀처럼 시장 나들이를 하러 나온 길이다.

홍여사		상옥 씨, 우리 뭐 뭐 살까?
상옥		우리 아부지는 고기는 삼겹살밖에 안 잡수시거든요? 삼겹
		살하고 상추 사죠, 뭐.
홍여사		그래, 뭐든지 상옥 씨가 하자는대루 할께!
상옥		근데, 교수님 저한테 언제까지 말 높이실거예요? 이제 그
		만 상옥아! 그렇게 부르세요!
홍여사		그럴까?
상옥		네.! …전 교수님이 꼭 우리 엄마같이 좋은데 저더러 상옥 
		씨, 상옥 씨! 하고 씨자를 꼭 붙이시면 거리감이 느껴지잖
		아요! 그죠?
홍여사		알았어요! 상옥아… 됐어?
상옥		네!

상옥, 애교스레 얼른 홍여사의 팔을 낀다.

상옥		전 교수님이 진짜진짜 좋아요!
홍여사		아이, 정말이야?
상옥		네!
홍여사		몰라, 어떡해!

홍여사, 좋아한다. 두 사람, 즐거워하며 간다.

홍여사		상추 사려면 저 집에 가자! 숙이네!
상옥		아니예요! 그 집 별루예요, 다른 집 가요!
홍여사		…그래? 그럼 그러지 뭐!

다른 가게로 간다.

홍여사		아줌마, 이 상추 두근만 주세요!
가게 여자	어서 와요, 아이구 딸인가 부네?
홍여사		네?
상옥		네, 제가 딸 맞아요!
홍여사		!
가게 여자	엄마 닮아 날씬하구 딸이 참 이쁘네요?
상옥		우리 엄마가 더 미인이시죠 뭐! 전 엄마 따라갈려면 한참 
		멀었어요!  그죠?
가게 여자	그래, 엄마두 이쁘구 딸두 이쁘구 하네! 두근이라구?

상추 퍼담고 홍여사는 자기를 보고 생긋 웃는 상옥을 감격스럽게 바라본다. 
상옥은 애교스레 웃고 팔짱 낀채.

S#2. 계순방(낮)

계순, 이사장의 추궁에 민규와 재천의 일을 다 밝히고 난 뒤이다. 계순, 체
념한 얼굴로, 벽을 보고 돌아앉아 눈물만 흘리고 있다. 이사장, 담배 연기를 
날리고 있다. 빠르게 머리 굴려가며.

이사장		갸가 아들이라 말이지. 여기 테레비 고치러 왔단 그 놈.   
                가게서 나한테 깡패같이 덤비던 그 버르장머리 없던 그   
                놈아가 바로 당신 아들이라 그 말이지. 하하.
계순		(다 체념한)
이사장		어쩐지 날 보는 그 눔아 눈이 좀 이상하다 했다!
계순		…
이사장		하! …여자 독하다 소리 내 들어도 남의 여자 소린줄 알았
		지. 내 여자가 이래 독한줄 참말 몰랐다! 그렇게 감쪽같이 
		나를 속일 수가 있었단 말이지?
계순		결혼 두 번 실패했다구는 말했어요.
이사장		(미친 듯) 새끼 있다고는 안했다! 다 큰 새끼 몰래 만나고  
                산다고는 안했다! 본서방이 가게까지 들락거린다고는 안했
		다!
계순		…(두려워하며) 오늘 처음 본 거라고 했잖아요!
이사장		니 그 말을 내가 지금 어떻게 믿냐? 응? 너 같으마 믿겠
		냐? 나는 지금 이 당장은 당신 못 믿는다! 안 믿긴다! …  
                애 못 낳아 쫓겨났다고 했지, 네가 새끼 있다고 했나? 했  
                으면 했다고 말해봐라!


이사장, 흥분해서 방바닥을 치며 눈자위가 번들거린다.

이사장		아… 내 흥분해서 뭐하노! 이러다 내 쓰러지면 어느 놈 좋
		은 일 시키라꼬!!


급히 자기 바지 호주머니 안주머니 마구 뒤지더니 청심환 하나 꺼내 벗긴
다. 물, 청심환 마신다. 이사장, 마시고 내리는 순간도 속으로 뭔가 계산을 
해보느라 쉴 새 없다.

이사장		…그래! …당신 인생도 참 불쌍하구나! 마, 그쳐라! 내 없
		던 일로 생각하고 싹 잊어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신
		인기라! 냠녀관계라는 거는, 한번 등 돌리고 나면 끝날 수
		도 있는긴데 자식은 그기 아니거던?
        	당신 똑똑히 말하그라! 갸, 깨끗이 잊어뿔끼가? 엄마 아들 
		해싸면서 앞으로도 왔다갔다 할끼가?
계순		안 만나기루 했어요.
이사장		…그기 될까?
계순		믿고 싶으면 믿구 싫으면 알아요!
이사장		…좋다… 뭐! 당신이 믿으라면 믿어야지! 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마누라 말을 믿어야지! 내, 믿고 다 잊어줄거니께네, 
		당신두 싹 잊어부리고 말아라! 알았나? …근데, 아까 그   
                남자, 당신 첫 남편, 지금은 뭐하고 사나? 직업이 뭐꼬?

이사장, 지나는 소리처럼 하지만 뭔가 계산이 있는 듯이 위험스럽게 보여진
다.

S#3. 계순 가게


재천이 계순을 기다리다 지쳐서 다시 가본다. 재천이 안을 들여다보고 들어
간다. 아줌마가 일을 하다가 돌아본다.

아줌마		어서오세요.
재천		민규 엄마 어디 갔습니까?
아줌마		(쌀쌀맞게) …신랑이랑 집에 들어갔어요.
재천		집이 어딥니까?
아줌마		왜요?
재천		…전화번호라두 좀 줘요.
아줌마		참, 경우 없는 아저씨네?
재천		뭐요?
아줌마		…나두 대강 들어서 알구있어요! …아저씨, 우리 사장한테  
                입이 열 개라두 할말 없으시던데 뭘 그러세요?
재천		(본다)
아줌마		여자 하나, 팔자 그렇게 해놨으면 됐지. 뭘 이제 또와서 
		찾구 그래요? …난 집두 모르구 안다구 해두 아저씨 알려
		드릴 생각두 없네요!

아줌마, 팩 돌아서 일만 한다. 재천 지긋이 보다가 카운터의 종이에 전화와 
이름을 쓴다.

재천		아주머니. 이게 우리집 전화번호요. 내가 꼭 할 얘기가 있
		으니 만나기 꺼려지면 전화라두 한 번 걸어달라구 해주세
		요.

하고 주고간다.

아줌마		네, 알았어요.

아줌마, 재천이 주는 쪽지 받아본다. 박동규라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휙휙 
쓰인 종이.




S#4. 홍여사 마당(낮)

친구가 생선상자를 마당에 내려놓고 추궁하듯 수경에게 말하고 있다.


친구		아니, 어디 간다구 말두 없이 나갔단 말야?
수경		네.
친구		혹시…또 , 교수님하구 같이 나간 것 아냐? 교수님두 안   
                계시는데?
수경		아니예요. 아버님 혼자 나가셨는데요? 근데 아저씨, 매일 
		이렇게 비싼 생선을 갖다 주셔서 저흰 잘 먹지만, 죄송해
		서 어떡해요?
친구		괜찮아! 일부러 사다라두 줘야 할 판인데 어때?! 조카는  
		가서 칼하구 도마하구, 좀 갖구 나와! 여기 손질하게!

웃옷 벗고 나서는데 홍여사, 상옥이 상추, 삼겹살 등 사서 사이좋게 손잡고 
들어온다.

친구		교수님! (상옥과 같이 들어오자 너무 반갑다)
홍여사		어머나, 네에 또 오셨어요?
수경		이모, 어디 갔었어? 머리 잘랐네?
홍여사		응! 미장원 들렀다가 시장 갔었어.
수경		어저씨, 시장 가셨다네요, 이모요! (올라고 안으로 들어간
		다)
친구		…안녕하셨어요? 더 아름다워지셨네요!
홍여사		네, 뭐 저야 항상.
친구		교수님! 제가요, 우리 저 이쁜 조카두 좀 먹이구, 교수님두 
		잡숫구, 또 민규 저 놈, 속풀이두 하라구 직송시켜 갖고   
                온 생선이예요!

친구, 주섬주섬 풀어서 도다리나 광어, 아주 크지 않은 것을 들어올린다.


상옥		(토라진 척) 아저씨, 전 먹지 말아요?
친구		아이구! 우리 미스 코리아두 먹어야지! 교수님, 이거 보세
		요! 이게 바루 자연산이거든요? 제가 매운탕 시원하게 끓
		여 드릴테니까, 모과주 한잔 내세요?
홍여사		(먹고 싶다)
상옥		(생선 들고 보며) 진짜 우리 아저씨 매운탕은 한 솜씨 하  
                세요, 교수님!
홍여사		(말만 들어도 먹고 싶고) 그렇게 잘하셔?
친구		여러말 할 것없이 끓여 드릴테니까 교수님은 그저 맛있
		게 잡숫기나 하세요! 조카 뭘해? 얼른 칼 갖구 나와!

친구, 안에다 대고 소리치고 겉옷 벗고 팔소매 걷어부친다.





S#5. 시연방

시연, 음악을 들으며 누워있다. 영규가 들어와서 작은 슈크림을 권한다.

시연		안 먹어!
영규		너 안 먹으면 죽는다?
시연		(돌아서 작게 웃는다)
영규		시연아. 너 이러면 안돼! 네 몸은 뭐 특별한 건줄 알아?
시연		?
영규		먹을 때 먹어주구, 잘때 자주어야 하는 거야! 도대체 먹어
		주지두 않구 자주지두 않으면서 어떻게 몸이 건강해지길 
		기대하는 거냐? 그건 기름두 안 넣어주고 자동차더러 혼
		자 그냥 달리라는 거나 마찬가진 거야!
시연		…모래알 씹어본 적 있어, 오빠? 모든 음식이 나한텐 그   
                맛이야.
영규		약 때문에 그렇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모래 아니라 개똥
		맛이래두 참구 먹어줘! 아, 그냥 눈 딱 감구, 꼴꺽 삼기는 
		거 못해?
시연		…
영규E	 	세상에 네 몸처럼 가여운 몸은 처음 보겠다.



S#6. 홍여사 마당

친구가 끓고 있는 큰 냄비를 행주로 싸서 홍여사 문 앞에 서있다.

친구		교수님! 문좀 열어보세요.
홍여사		(문열고 내다보며) 글쎄, 이따가 박 선생님 오시면 그때   
                함께 하시자구요.
친구		재천이 몫은 또 따루 있어요, 교수님. 그리구 탕이란 게 
		즉석에서 먹어야 맛이 나거든요. 이 냄새 맡아보세요!
홍여사		아이, 어떡하나? (먹고는 싶고)

하는데 재천이 막 우울한 얼굴로 들어온다.


홍여사		(반색을 한다) 어머, 박 선생님!
친구		…(돌아보고 실망이다) 너 그새 오니?
재천		그거 뭐냐?
홍여사		마침 잘 오셨어요! 얼른 들어오셔서, 모과주 한잔 하세요!
재천		…술이요? …그럽시다!


들어간다. 우울한 얼굴 그대로.

친구		자식. 10분만 늦게 오지. 단, 5분이라두 늦게 올 일이지. 
		딱 맞춰오냐? 인정머리 없는 놈.


냄비 들고 혼자 약 오른다.




S#7. 수경 친정 거실

수경부, 농사책을 보고 있는데 수경모가 한숨을 쉰다.


수경부		왜 그래요, 또?
수경모		얘가 뭘 좀 먹어야 할텐데. 우리 수경이요.
수경부		배 고프면 먹어요!
수경모		어떻게 그렇게 독한 말씀을 하세요? 입덧이라는 게 그렇  
                게 배고프다구 먹어지는 게 아닌 거예요!
수경부		…이상하네?
수경모		뭐가요?
수경부		아니, 우리 며느리 첫 애 가졌을 때, 수한이가 지 색시 아
		무 것두 못 먹어 큰일 낫다구 하니까 당신이 그때 그랬잖  
                아요! 걱정마, 얘! 배고프다면 다 먹어, 얘!
수경모		(무안)
수경부E		그래서 난 또 다 그런줄 알았지….
수경모		(눈 흘긴다)…김밥이나 좀 말아가 볼까? (하다가) 아이구, 
		그 식구들 입이 몇 개야? 스무줄을 말아가두 부족할걸?
수경모		얘가 아주 쫄쫄굶고 앉았겠네! …가엾어 어떡해!



S#8. 수경 마루


상옥이 수경이 매운탕 냄비 하나를 같이 바닥을 냈다.


수경		숙이네루 가지 말라구요, 왜요?
상옥		비싸니까요!
수경		어머, 아가씨, 그 가게가 제일 싸요! 그 여자 얼마나 싸게 
		판다구요!
상옥		싸면 뭘해요? 근수를 잘 줘야죠! 그 여자 저울 속이더라구
		요!
수경		…아가씨,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 여자, 얼마나 경우가 
		분명한대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상옥		…어쨌건 언니 저는요, 그 여자가 싫어요! 제가 다른데 더 
		싸구 좋은데 단골 알아둘테니깐요, 가지 마세요?
수경		왜 그래요, 아가씨? 이상하시네?
상옥		아무튼요, 그 가게는 가지 말아요! 아셨죠?
수경		…?

전화가 온다.

수경		여보세요?
수경모E 	나다. 엄마야, 너 뭐 좀 먹었니?
수경		응, 엄마! 나 매운탕해서 밥 많이 먹었어요. 걱정마세요!
수경모E		너 생선 싫어하잖아?
수경		응, 그런데 맛있어요! 그리구 엄마 나 오늘부터 출근해요!
수경모E 	얘, 안돼, 너 더 쉬어!
수경		더 쉬면 나 짤려! 짤리면 엄마가 내 월급 주실거야?!

대답하는데 아직 창백한 민규가 학원 가려고 나온다.

상옥		야, 너 어디가?

민규, 말없이 찬바람 일으키며 나가버린다.

수경		엄마, 나 이따가 전화할께요. 끊어요!!


S#9. 홍여사 마당


학원 가려고 나오는 민규. 수경이 따라 나온다.


수경		데련님, 어디 가세요?
민규		학원에요.
수경		…큰형이 약먹구 푹쉬라구 하던데.
민규		괜찮아요.

수경, 외면한 채로 서있는 힘들어하는 민규를 본다.

수경		다 털어 놓으니까 시원하시죠? 데련님?
민규		…아빠 어디 가셨어요?
수경		몰라요, 아까 나가셨어요.

하는데 안방에서 취한 재천과 홍여사 웃음소리 터져나온다.


수경		어머, 아버님 오셨었네?
민규		…(아빠는 웃고 있구나. 듣다가)

댓돌에 신발 세 켤레 민규, 획 나간다.

수경		데련님.

수경 가서 잡고는 돈 2, 3만원 정도 넣어준다.


수경		이거 교통비로 쓰세요. 아르바이트두 안하잖아요?

민규 받아서 나간다.

수경		(안된듯 보고 서있고) 아버님은 왜 또 저방에 가계시지?


S#10. 홍여사 안방
홍여사		힌트! 비비안 리가 청순한 발레리나루 나온다! 그래두 모
		르세요?
친구		비비안 리요? 알았다! 로마의 휴일! 로마의 휴일 맞죠?
재천		임마 그게 어제 로마의 휴일이냐, 애수지.
홍여사		그래요, 어쩜 아시네요?! 애수! 머빈 르로이 감독의 애수 
		있잖아요! 전 그 영화를 다섯번 봤거든요? 그래서 어지간
		한 대사는 지금두 줄줄 다 외워요.
재천		나두 두번 봤어요.
홍여사		어머, 어머! 박 선생님하고 전 뭔가 확실히 통해요!
친구		통하긴 뭐가 통합니까? 교수님, 얘가 같은 영화를 두번 
		봤다는 이 말은요, 그 영확 상영될 때 두 여자하구 동시에  
                연애를 하고 있었다, 즉 요새 애들말루 하자면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이런 얘기예요!
홍여사		어머, 정말이세요?
친구		아니냐, 너 인간적으루 아니면 아니라구 말해 봐!
재천		시끄러 자식아…!
친구 		너 수산학교 이학년때 오케 목장이란 영화, 전파상 딸 미
		자 하구 조조할인 한번 보구, 선구점 딸 순옥이하구 마지
		막회 또 한번 보구 했냐, 안했냐? 솔직히 말해!
홍여사		어머, 정말이신가봐…!
친구		얘, 아주 선수예요! …그때 제가 얼마나 바빴냐면요. 식전 
		아침부터 줄서서 조조할인표 사다줘야죠, 저녁에는 또 저
		녁대루 밥두 쫄쫄 굶어가며 마지막회 표 사다줘야죠, 그뿐
		인가요, 호랑이 같은 걔네 아부지 몰래 시간 맞춰 딱딱 불
		러다 줘야죠! 헷갈리면 이게 또 난리거든요! 거기다 빵값
		까지 빌려줘야지. 저, 아주 힘들었어요!
재천		하하하! …어쨌건 애수가 어떻단 말씀이세요, 교수님.
홍여사		오늘 박 선생님 표정이 꼭, 그 영화 속의 워털루 다리에 
		서 있는 슬픈 주인공 같으시다구요!
재천		하하하! 아무일 없습니다.
홍여사		그럼 됐구요! 그 마지막 장면 있잖아요! 조그마한 악세서  
                리를 하나 들고 애인을 추억하는 로이! …전 이 장면을 보  
                려고 다섯 번이나 봤어요. 그때, 아이라의 목소리가 들리  
                는거예요. 로이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다른 사람은 없어요.  
                정말이예요!

친구는 홍여사 하는 것 취해서 보고, 재천은 스스로 또 한잔 마신다. 많이 
마신 재천, 문이 조금 열리고 수경이 들여다본다. 거푸 마시는 재천의 모습
이 쓸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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