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대본 제23회)



제 23회

S#1. 지하방

지친 민규가 들여다 본다. 영규가 컵라면을 먹고 있다.

민규 …형.
영규 메리 크리스마스.
민규 (방으로 들어온다.)
영규 길거리 어떻든? 난리 부르더서냐? 아니, 아임에프 때문에
좀 조용할래나?
민규 …
영규 야 임마! 그새 여자 친구 하나두 못 만들었냐? 이붓날 밤
에 너 이게 뭐냐?
민규 …형!
영규 뭐?
민규 …형은 우리 엄마 기억하지?
영규 너, 갑자기 무슨 이상한 소리냐?
민규 아는데루 좀 말해줘.
영규 하, 자식…! 이상한 소리 하구 그래?
민규 지금쯤은 얘기해줘두 좋잖아?
영규 너두 컸다 이거냐? …좋아 얘기해 줄께. 어릴 때지만 느낌
이 좋은 여자라구 기억해… 잘 웃구… 거기다 대면 넌 영
아닌데, 응?
민규 …형두 미워? 우리 엄마? 큰형은 엄청 미워하잖아?
영규 난 너무 어려서 뭐가 뭔지 자세히는 모르겠어. 아무튼 어
느날인가 아부지가 널 안구 집으로 데려왔는데… 네가 우
리집에 와서 엄청 울었다는 것밖에 기억 안나. 얼마나 울
어대는지, 나중엔 너 목소리가 꺼억꺼억 하구 고장나서 잘
안닫기는 문소리 같았던 기억두 있어,
민규 …
영규 너 울음 그친 것 나 때문인줄 알아?
민규 그랬어?
영규 내가 고모네 가서 강아지 한마리를 안고 와서 너 줬어.
그때부터 울음 그치더라.
민규 …큰엄마가 나 무지하게 미워하던 생각 나.
영규 야, 임마 그건 잊어! 남편이 첩 얻으면 돌부처두 돌아앉는
다잖아? 우리 엄마두 여자잖아? 인간적으루 생각을 해봐.
네가 이뻤겠냐?
민규 한번은 큰엄마가 나를 부르고는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
시더니… 저놈의 꺼먼 눈구녁. 콱 후벼버리구 싶다 이러
셨어.
영규 …(웃고) 니 눈이 느 엄마 닮았잖아. 그래서 미웠겠지. 야,
모두 고인들 아니냐! 느 엄마두 우리 엄마두! 다 용서해
라. 이제!
민규 저승에 가서는 화해했겠지!
영규 아, 참 이 인간 박영규 성탄절이 이게 뭐냐?

하는데 노크 소리 난다.

영규 동욱이냐?

다시 노크 소리 난다.

영규 들어와, 그냥! 자식아!

하는데 문 열린다. 민규가 먼저 보고 놀란다.

민규 형…!

놀라 일어난다. 영규도 놀란다. 시연이 한아름 먹을 것을 안고 서있다.

시연 박영규! 거짓말쟁이!
영규 시연아…!
시연 박민규씨? 여기 있었네?
민규 …

두 사람 시선이 얽힌다. 민규가 시선을 피한다.

시연 메리 크리스마스! 들어가두 돼
영규 …

시연, 들어온다. 시연, 방안을 둘러본다.

시연 (씩 웃고) 아, 이 사람들아 뭘 그렇게 놀라나? 우리 파티
하자!
영규 시연아, 나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시연 쉿! 우리 얘긴 다음에 하자! 민규씨 우리 파티해요! 내가
맛있는 거 갖구 왔어요!

S#2. 수경 거실

수경부가 둘을 나무라고 있다. 애주가 근처에서 일하는 척 하며 다 듣고 있
다.

수경부 두 사람, 누가 억지루 맺어줬어? 사랑한다구, 반대 무릅쓰
구 결혼했지? 그런데, 느이들이 말하던 사랑이란 게 겨우
이거냐? 이 정도 시련에두 이기지 못할 만큼 허약한 거
냐?

동규, 수경 고개를 숙인다.

수경부 이 정도에 허물어지는 거라면 사랑이란 소리 갖다 대지두
마라. 그건 육욕일 뿐이야!… 단지 둘이 같이 잠자구 싶어
한 결혼이야!

두 사람, 부끄럽다.

수경모 여보, 점잖게 말씀하세요.
수경부 조용하세요. 난 지금 최대한 젊잖게 말하구 있는 겁니다.
수경모 그래도 더 젊잖게 하세요….

수경부가 둘을 달래고 있다.

수경부 나는 30여년을 비교적 성공적인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사
람일세. 그건 나나 이 사람이 뭐 유달리 인간성이 좋아서
잘 지내온건 아냐. 단지 우리는 항상 하나의 원칙을 존
중했어… 뭐냐… 부부는 함께 간다! 힘들고 괴로운 일 생
길 때 언제구 둘이 손 꼭 잡구 같이 간다!

동규, 수경 듣는다.

수경부 이 여자가 고약을 떨거나 할 때는 나두 여러번 그만 이
사람 손 놔버리구 혼자 가버리구 싶었어. 이 사람두 마찬
가지였겠지.

수경모도 듣는다.

	S#3. 수경방
	애주가 들어온다. 애주 여보 ! 상황 끝! 아가씨, 간대! 수한 당신 어째 섭섭해 하는 것 같다. 좋은 구경거리가 끝나서 그래? 애주 눈 흘긴다.

S#4. 다락방

수경이 옷가방을 싸고 있다 .수한이 들여다본다.

수한 야, 빠진 것 없이 잘 챙겨가라?
수경 …
수한 (얼굴 바꿔) 야, 어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박서방
같은 남자 무섭다? 너 조심해야 돼.
수경 ?
수한 저 남자 아마 진짜 너하구 이혼할려구 했을거야. 저런 타
입이 그렇거든. 단정하구, 깔끔하구, 저런 사람은 자기만
그런 게 아니구 상대한테두 그러길 바라거든. 한마디루 괜
찮은 아들이구, 괜찮은 사윈데, 남편으룬 좀 피곤한 타입
이지!
수경 …
수경모 (빨래 걷어서 들고온다) 얘, 이것두 챙겨라. 엄마 얘 팬
티하구 부라자까지 빨아줬어요?
수경 (휙 받아 넣고, 분하고 부끄럽고)
수경모 나가, 넌!

수경모, 수한을 밀어내고 문닫아 버린다.

수경모 너 이걸루 끝 하자, 우리? 가방 싸들구 친정 오는 거?
수경 엄마… 미안해… 다신 안 그럴께요….
수경모 박서방 보기보다 독하더라… 너 너무 쉽게 대하구 그러면
안되겠어. 조심해서 살아…
수경 네…
수경모 아이구, 가긴 간다만, 그 시아버지, 시동생들… 또 어떻게
보고 사니, 너?

큰 걱정이다.

	S#5. 수경 거실 (밤)
	동규 혼자 가만히 앉아서 생각 많은 얼굴로 수경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경모 내려온다. 수경모 수경이 가방 챙기구 있네. 동규 …네…

S#6. 수경 안방 (밤)



수경부 외투랑 챙겨 입는다.

수경부          그 돈 줘요! 사둔이 갖구 온 거.
수경모          돌려줄께요?
수경부          …돌려줘야지!
수경모          주긴 뭘 줘요! 휙 뿌리고 간 돈인데?
수경부          그 형편에 급전 얻어 왔을 거 뻔하잖소? 결국은 다 수경   
                 이가 갚아야 된다구요!
수경모           …속상해서 정말…!

장농 열다가, 휙 돌며

수경모          동규 아부지, 또 삐딱하게 나오면 정말, 우리 딸, 도루 끌
                구 와 버리세요?

수경모 생각할수록 화난다.

수경모          세상에 나는 살다 살다 그렇게  교양없는 사람은 처음 봤
                어 진짜?
수경부          당신두 그렇게 썩 교양있는 사람은 아니예요?
수경모          …알아요! 그래두 난 … 있는 척은 해요!

수경모 돈다발을 찾아 내주며

수경모          아이구, 그날 그냥 이 돈다발 들어갖구, 확 그냥 사둔인
                지뭔지 그 양반 얼굴에다 내 팽개쳐줬으면 좋겠더구만!

분하다.  수경부 돈 챙겨 넣는다.

S#7. 수경 거실 (밤)

 
      
수경부 나온다. 수경, 동규 기다리고 있다가 선다. 서로 어색해하며

수경            아빠, 우리끼리 갈께요.
수경모          사둔 만나뵙구 드릴 말씀두 있구 하시댄다, 아빠.
수경            (걱정스럽게 엄마를 돌아본다. 말려 달라고)
수경모          (괜찮아)

수경부, 먼저 나간다. 애주와 수한이 큰가방 들고 따라나간다.

동규            장모님… 안녕히 계십시오.
수경모          잘 가게.

동규도 나간다. 수경이 엄마를 한번 돌아본다. 겁먹은 얼굴이다.

수경모          어서 가.

손 쳐준다. 수경, 나간다. 수경모, 보다가 휙 돌아선다. 속상해서 안방으로 
간다.

	S#8. 친정 안방 (밤)
	수경모 들어와서 배게를 꺼내 휙 돌아눕는다. 손으로 이마 가려버린다.

S#9. 수산시장 (밤)

냉동차들이 윙윙거리고 그 차에서 냉동상자들이 떨어지고 한다. 잡다한 시
장 풍경사이에서 재천도 일하고 있다. 냉동상자를 차에서 부리고 하는 재
천. 주인인듯한 40대 남자가 좀 떨어진 곳에서 재천을 부른다.

주인 박씨 아저씨! 박씨 아저씨!

재천, 못 듣고 하던 일만 계속한다.

주인 아, 박씨!

그래도 못 알아듣고 일만 계속하는 재천. 옆에서 같이 일하던 노동자 풍의
남자가 툭 치며 주인이 부른다고 한다.

재천 ?

보니 주인이 인상을 쓰면서 자신을 부르고 있다.

재천 나 불렀수
주인 아니, 그새 귀 잡수셨어요?
재천 예?
주인 왜 그렇게 사람이 불러두 대답을 안해요?
재천 (아차!)허허, 미안허우! 다른 사람 부르는줄 알았수… 그
래, 뭡니까?
주인 이거 배달부터 하세요!

냉동 생선상자가 여러 층으로 쌓여있다.

재천 그럽시다!

재천, 시장 안에서 쓰는 작은 손수레에다 냉동상자를 쌓는다.

주인 거기 각 이름 써졌으니까. 헷갈리지 않게 허세요!
재천 염려 말아요!

재천, 상자에 붙은 종이를 봐가며 상자를 싣는다. 좁은 시장 골목을 가며

재천 짐이요, 짐! 짐이예요! 비켜요, 아주머니!

기운차게 일하는 재천이다.

S#10. 홍여사 안방 (밤)



홍여사 아스피린이라도 찾아보려구 찾으나 얼른 찾아지지가 않는다.

홍여사          (서랍을 뒤지며) 아스피린이 몇알 남았을텐데? 이게 어디
                갔지? 다 먹었나? 하나두 없네?

홍여사 머리가 아파 찡그리며 이 서랍, 저 서랍을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