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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희와 한동네에서 태어난 배꼽친구.
화끈한 여자. 학창시절 양순이(날나리)로 이름 꽤나 날렸다.


그녀가 양순이 생활을 마감한 건 부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고2 때. 겨우 열여덟에 아직 초등학생인 동생을 떠안은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건 조그만 연립주택 한 채와 약간의 저축 뿐.
대학도 못가고 허접한 직장을 다니며 허리끈 동여매 모은 돈으로 전문대에 입학했다.
돈 떨어지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해 겨우 졸업하고 또 몇 년 직장을 다니다가 직장동료와 눈이 맞아 결혼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시댁의 숨겨진 빚이 수억 원, 툭하면 빚쟁이들이 들이닥치고, 남편이란 놈은 마마보이 주제에 싸나이 인생 운운하며 직장 옮기기를 밥 먹듯이 하더라. 사랑은 잠깐이요 현실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화끈하게 이혼해버렸다.
위자료는커녕 아파트 판 돈 반을 간신히 받아내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연립주택도 팔아 비디오 가게를 차렸다.

철수는 그녀에게 특별한 동생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엄마처럼 누나처럼 친구처럼, 또는 오빠처럼 아버지처럼 의지하며 살아왔다. 한편으로는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머리도 좋고 집중력도 좋고, 한번 마음을 먹으면 끝장을 보는 기질로 보거나 생각이 깊은 걸로 보거나, 분명 싹수는 있는 놈인데 공고를 가질 않나 대학을 마다하지 않나. 점점 성적순이 아닌 세상이 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보수적인 한국 땅에서 대학 졸업장도 없이 저렇게 살아갈 걸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게다가 홀연히 떠났다가 1년 만에 돌아와 능청맞게 웃는 꼴이라니!

친구 병희도 너무 잘 안다.
동창들은 학부형이 되었는데 이 기집애는 아직도 운명적 사랑 운운하면서 하이틴로맨스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둘이 연애를 한단다.
내 동생이 저보다 9살 많은 늙다리를 사랑한단다.
내 친구가 새파란 내동생 앞길을 망쳐놓는단다.

ㅆ ㅂ

성질 죽이고 살고 싶었건만 안도와주는군하. 앙큼한 년!
30년 우정에 금이 간다. 피비린 내나는 결투가 벌어진다.


명문여대 비서학과를 나와 명문기업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좋은 집안, 좋은 학벌, 좋은 직장, 1류 캐리어우먼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이지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에 깔끔한 성격.
대학교 1학년 때인 스무 살에 철수와 미팅에서 처음 만났다. 주선자(철수의 잘난 친구)의 농간으로 대학생인줄 알고 만났는데 철수 스스로 공고3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대학생 미팅에 고삐리가 나오다니, 386식 유머에나 나올법한 일을 당하자 뺨 한대 때리고 돌아섰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잘 나가는 오피스걸이 된 그녀는 차를 고치러 정비소에 들렀고 철수와 재회한다.
그녀는 철수의 얼굴을 기억한다.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철수는 그 날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웬걸. 철수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자존심 구겨지고 오기가 생기고 기름복 입고도 당당한 모습에 왠지 비위가 상한다.
한번 꼬셔볼까? 도도한 기질이 올라온다. 그녀로서는 정말 말도 안되는 상대지만 한번 꼬셔보고 싶다. 그런데 여의치가 않다.
목석도 이런 목석이 없다. 그를 유혹하기 위해서 귀엽게 망가지기 시작한다.

입만 열면 남자다움과 의리에 거품 무는 사고뭉치 마초청년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집안이 어려운데다 중학교 때부터 쌈질만 하고 다녀 공고에도 간신히 입학했다.

거기서도 짱으로 위용을 떨치다 철수를 만났다.
녀석이 학우 하나를 괴롭히고 있었고 겁대가리 상실한 철수가 끼어들었는데 철수의 배짱 때문에 녀석이 지고 말았다.
그래서 철수는 주먹 한방 안쓰고 학교 패거리들도 건들지 못하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 후로는 철수와 가깝게 지냈다. 철수는 그를 무시하지도 않고 훈계하지도 않으면서 편견 없이 대해주었다. 그게 좋았다.
그러면서 오토바이 장사를 함께 했는데 돈 좀 벌었다고 폼 나는 오토바이를 사서 여자친구 태우고 질주하다 사고를 내었다. 사경을 헤맬 때 철수가 치료비를 모두 대주었다.
그러니 여러모로 평생 갈 친구다.
죽다 살아난 사고 후유증으로 철도 들고 군 면제도 받고 일찌감치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기름밥을 먹고 있다. 철수가 여행을 떠난 사이 결혼을 해 몇 달 있으면 아기아빠가 될 예정이다.
속도위반이었는데 여친이 임신했다고 하자 30초만에 결혼하자고 했다. 왜냐하면, 사고 났을 때 뒤에 타고 있던 여친은 죽었고 그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여자들한테 상처주기 싫어서이다. 아직은 술과 친구들이 더 좋은 청춘이라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정식 명칭은 <싱싱 자동차공업소>.
1급 정비소로 규모가 꽤 크다.
자수성가해 정비소를 20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성미가 몹시 괴팍하다. 잘 삐지고, 버럭 화도 잘 내고, 옹색하고, 자기가 월급 주는 정비공들한테 막걸리 사달라 조르기 일쑤고, 항상 남루한 잠바를 걸치고 다닌다.

성실한 구두쇠라 돈도 꽤 많지만 절대 티를 안낸다.
돈 있는 티내는 사람은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몹시 정직한 사람이라 단골손님이 많다.
제멋대로인 철수에게 항상 틱틱거리지만 내심 꽤나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