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다.
귀여운 딸과 다정한 남편.
그리 잘살지는 않아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
이것이 행복인가 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딸의 선물을 사러 나갔던 남편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험한 이 세상에 나와 딸, 그리고 그의 심장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살기 위해 달려야 했던 하루하루가 날 지치게 한다.
내게 모든 것이었던 ‘단란한 가족’의 의미는
이제 한낱 배부른 단어에 불과하다.
철저히 잊고 싶다.
존재의미를 잃어가는 일상에 햇빛마저 눈부시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절제를 잃어버린 이성으로
어느날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내 딸 ‘엄지’마저 잊고 살아간다.
뺑소니범에 대한 증오가, 세상에 대한 증오가 나를 바꿔버렸다.
그러던 내게 잊었던 증오를 다시 상기시킨 사람이 있다.
오혜성.
남편의 심장을 지닌 젊은이.
뺑소니로 내 남편을 죽인 남자의 자식인 그가 내 딸 엄지를 사랑한단다.
증오가 깨어나고 있다.
한번 무너진 나의 가정을 또다시 짓밟게 할 수는 없다.
다시 깨어나야 한다. 딸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