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회
     

S#1. 계순방 (밤)


민규가 자는 계순의 손목을 잡고 앉아 지켜보고 있다. 노크 소리가 작게 난
다.

민규            (날카롭게 긴장해서 돌아본다)

다시 노크소리. 민규, 이사장인가 싶어서  주먹을 쥐고 일어나 조용히 문가
로 간다. 비켜선 채 어느 순간 문을 왈칵 연다. 아줌마가 섰다가 깜짝 놀라 
물러선다.

아줌마          아이, 깜짝이야!

민규, 맥이 풀린다.

아줌마          느 엄마 자니?
민규            네….
아줌마          아까 먹인 약에 진정제가 들어있나 부다. 아이구, 죽은 듯 
                자는구나…!

아줌마, 들어와서 본다.

아줌마          너 정말 집에 안가니?
민규            …네.
아줌마          그럼 전화라두 해. 괜히 너 때문에  시끄러워지면 느 엄마
                만 욕먹어.
민규            아줌마, 그 남자 오늘밤에 다시 올까요?
아줌마          그거야 모르지. 그전에  보면 패놓구, 또  금방 와서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구 그러긴 하던데. 이번엔 모르겠다.
민규            …우리 엄마 자주 맞았어요?
아줌마          …몰라… 속상해서 말하기두 싫다. 아이구, 나쁜놈…!
민규            (오기만 해봐라)
아줌마          자. 이거 엄마 깨면 줘. 오늘 매상이야.

밀어 놓는다.

아줌마          (가만히 이불깃 고쳐주며)  내 말을  들어야 하는데. 내가 
                그 남자 아무래두  이상하다구 딱 끊어버리라구  해두, 느 
                엄마 사람 그리워 그랬는지… 그렇게 못 끊더니만. 결국엔 
                이게 뭐냐?

아줌마, 측은하게 본다.

S#2. 미숙 새방 (밤)


미숙, 영규를 몰아가듯 거칠게 대들고 영규도 마찬가지다.

영규            너 그때 분명히 깨끗이 처리했다구 했어! 외숙모  하구 병  
                원 다녀왔다구 나더러 걱정 말라구 했어!  그래 놓구 이게  
                뭐야?
미숙            아직두 몰라? 같이 망하자니까! 나 혼자 망하기  억울하니
                까 우리 둘이 같이 망하자구! 
영규            이 기집애야! 망하구 싶으면 너나 망하지 왜  물귀신 같이 
                나를 끌여들여. 죄없는 나를 응?
미숙            …죄가 없어? 내 팔자를 이렇게 망쳐놓구, 죄가 없다구?
영규            야, 너 조선시대 여자냐? 누가 누구 팔자를  망쳐? 너하구 
                나하구 서로 좋아해서 연애한 거야! 그러다 네가 부주의해
                서 생긴 일을 누구한테 뒤집어 씌울려구 그러니?
미숙            이 치사한 자식! (뭔가 하나 던진다)
영규            (피하며) 치사해 한때 연애 좀 했다구 이렇게 배불러 나타
                나서 질기게 물어뜯는 네가 치사하냐, 아니면 뒤통수 맞은 
                내가 치사하냐?
미숙            너는 네 자식에 대해서 그렇게두  전혀 아무런 느낌두 없
                니?
영규            …너 나에 대해서 아직두 모르겠니? 말했을 텐데? 김미숙! 
                나는 일종의 변이종이야! 보통 사람들이 갖는 보편적인 정
                서가 나한텐 없어! …어려우면 쉬운 말루 해줄까?  한마디  
                루 나, 나쁜 놈이야!
미숙            …호호.
영규            다시 한번 말하는데, 너  그 뱃속의 아이는 너  혼자의 애
                기야. 괜히 나 갖다 그애 하구 줄 긋지마, 알았니?

미숙, 배개를 던진다.

미숙            나쁜 인간! 나. 너  만나기 전까지 순결했어! 아니라구  할   
                거야?

미숙, 영규를 똑바로 바라본다.

미숙            난 너 말고는 다른 남자 아무두 몰라!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영규, 얼른 외면한다.

영규            누구든지 처음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 다 순결해!  내가 마
                침 너한테 처음 상대라구 너 이렇게 나오는 건 안 되지!
미숙            나 너한테 할만큼 했어. 아니면 아니라구 말해봐! 돈 달라
                면 돈 줬구,  뭐 사달라면  다 사줬어…! 나한테  쓰는 돈     
                은   단돈 천원두   아끼면서, 박영규한테는  아끼지  않구       
                다 해줬어. 아니니?
영규            그건 네가 좋아 해준 거야! 너 좋아서 니가 해준  걸 갖구  
                나한테 생색낼 거 없잖아?
미숙            뭐, 어째…?
영규            남자 여자 서로  좋아 연애할 때  누구는 너만큼 못하니? 
                너는 네가 나한테  아주 굉장히 잘해준  걸루 오해하는데.   
                그 정도는  별 것두 아냐?  남자한테 잘해주는 여자들  엄
                청 많아? …너 술직히 나한테  제대루 된 시계 하나를 사
                줘봤니, 양복 한벌을 맞춰줘 봤니? 아니잖아? 그래놓구 뭘 
                대단하게 잘해준 것처럼 그래?
미숙            (어이없어 본다)
영규            그리구 너만 나한테 잘한 거 아냐. 나두 너한테 할만큼 했
                어! 나로선 성의를 다 했다구!
미숙            너가 나한테 무슨 성의를 다 했는데…?
영규            내가 뭐 내 입으루 꼭  말해야겠니? 너 나중에 다른 남자   
                하구 살아보면 내가 너한테  성의를 다했다는 거 알게  될  
                거야.
미숙            (또 뭐 던진다) …나쁜인간! 가버려! 나가.
영규            (피하며) 네가 왜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는지는 
                나 정확히 모르겠다.  그게 혹시라두  내가 마음 돌려  너
                한테 돌아갈 걸루 기대하구 한 짓이라면 지금이라두 포기
                해라. 완벽한 계산착오야.
미숙            애 낳아서 느 집에 갖다 줄거야!
영규            맘대루 해!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고 나가버린다.

미숙            (벌떡 일어나며) 두구봐! 낳자마자 핏덩이 니네 집에 안고
                가나 안 가나! 두구 보라구!


미숙 소리치나 영규 가자 푹 무너지듯 앉아버린다.

S#3. 밤공원 (밤)

미숙과 다투고 난 뒤 미숙집에서 나온  영규, 혼자 앉아 분을 삭이고 있다. 
여러 가지 상념들로 머리 묻고 고민하는 영규. 충격을  받아 교활하게 빛나
는 눈이다.

S#4. 옥주방 (밤)

옥주와 상옥이 외출에서 돌아왔다.  둘다 화장을 하고 모양도  잔뜩 냈으나 
실망이다.

상옥            아이구, 다리야! 하루종일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다녀서 우
                리 오늘 뭐 한 거니?
옥주            뭐하긴? 열심히 퇴짜만 맞았지! 아니,  무슨 곡 하나 만들
                어 주는데 그렇게 많이 달라는  거야? 일류나 되면 또 말   
                도 안해! 기껏해야 삼류 주제에. 분해 죽겠어!
상옥            분해하지마! 나중에 출세해서 갚아주면 돼!
옥주            어떻게 갚아?
상옥            우리가 인기를 얻으면 그 사람들 우리 앞에 와서 굽신 굽
                신한다? 미스 박!  내 노래 한번만  불러줄래요? 내가  딱 
                상옥 씨 필링에 맞춰서 만든 곡인데,  멜로디 한번만 들어  
                봐 줘, 응?
옥주            그러면 뭐라구 할래, 너?
상옥            뭐라긴? 제 매니저한테 말해보세요! 아마 힘들겠지만요!

두 아이 웃고는 벌렁 누워버린다.

상옥            큰일났다! 밥까지 굶어가며 아부지 허락 얻어냈는데, 안되
                면 어떡하냐? 야, 아까 개들 봤지? 우리랑 같이 오디션 받
                은 애들 의상이랑 액세서리랑, 진짜 멋지더라?  누가 우리
                한테 투자좀 안하나? 우리두 돈만 좀  바르면 괜찮을텐데,  
                그지?
옥주            니네 작은 오빠한테 다시 한번 말해볼까?
상옥            우리 작은 오빠 요즘 정신없어! 
옥주            무슨 일루?
상옥            건 네가 알 거 없구! …아부지,  큰오빠, 다 능력 없구. 손 
                내밀어 볼 사람이 딱 한사람 있긴 한데?
옥주            누구?
상옥            우리 예비 새엄마!


S#5. 홍여사 마루

홍여사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돌아선다.

홍여사          오늘은 캡틴박 얼굴 한번두 못  봤는데 도대체 이 남자는 
                오늘 시장 나가는 거야, 안 나가는 거야? 시간 다 됐는데!

홍여사, 다시 루즈를 정성들여 고치고 머리 모양을 고치고 한다.


홍여사          어떻게 하면 저 남자를 후꾼 달게 하지? 답답해 죽겠네!

하다가 눈 반짝이며 소라고동을 본고 집어 올린다.

홍여사          그래, 이거야…! 질투!  죽음같이 강하고 무덤같이  잔혹한 
                질투!

홍여사, 눈 반짝하며 자신만만해 한다.




S#6. 홍여사 마당

홍여사, 혼자 마당에 나와서 수경집 쪽  몰래 보며, 오락가락 한다. 홍여사, 
재천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S#7. 수경 신방

수경, 혼자서 가계부의 적금통장, 부금통장  등을 놓고 앉아서 돈계산을 한
다.

수경            계란값이 너무 올랐어! 이거  뭐야? 뭘 또 카드루  결제한   
                거야? …시사 잡지? 이런 건 회사에서 보잖구!

수경 확인하고 적는다. 계산기로 두들겨보고 남은 돈 헤아려 보고.

수경            50만원 찾은 지가 엊그젠데 돈 다썼네. 기가 막혀. 진짜!

수경, 투덜거리며 계산중이다. 하는데 문이 열린다.

재천            얘, 너 나좀 봐라. 
수경            네, 아버님! 지금 나가시게요?
재천            어, 그래 얘, 너 이거 받아라.

돈을 준다. 한 십여만원.

수경            고맙습니다.(얼른 받는다)
재천            (가계부 등 보고, 싱긋 웃으며) 많이 주구 싶은데 요새 별
                루 신통치가 않구나. 어떻게 …셈이 안 맞냐?
수경            …아니예요. 이것두 많은데요?
재천            상옥이두 늦구. 민규 이 녀석은 또 종일 어디 갔니?
수경            아까 누가 전화해서 나갔는데요.
재천            누가?
수경            …친구겠죠. 뭐.
재천            그 녀석들 혹시 딴짓하구 다니는 거 아니지. 네가 좀 신경  
                써봐라.
수경            네.
재천            그리구, 너 뭐  먹구 싶은 거  있으면 부지런히 찾아먹구,    
                그래야 애기 튼튼하지…!
수경            네, 잘먹구 있어요, 아버님.

수경, 웃고 따라 나간다.

재천            얘, 나오지 마라!


S#8. 홍여사 마당

홍여사, 속상해 샌드백 하나 치는데, 문 소리가 나며 재천 나온다.

재천            아니 교수님 뭐 하세요?
홍여사          어머나, 벌써 나가신줄 알았는데 출근하세요?
재천            네.

홍여사, 소라를 귀에 대고 듣는다.

재천            웬 소랍니까?
홍여사          이거요? 이걸 이렇게 귀에다 대구선요. 들으면  파도 소리
                가 나거든요. 양사장님이 접때 갖다 주셨어요!

질투심 좀 일으켜 볼려고.

재천            그랬어요?
홍여사          양사장님은 참 낭만적이신데가 있으시대요? 그죠?
재천            네, 그 친구가 원래 좀 그래요. 많이 들으세요.

하고 도루 줘버린다. 홍여사, 받으며 실망이다.

홍여사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예요?

홍여사 주자 재천 다시 받는다.

재천            참소라요, 이러게 뿔이 울퉁불퉁한 게 참소라하구 맛이 좀 
                낫죠! 몽퉁한 건 개소라라구, 맛이 떨어지구요.
홍여사          …

하는데, 영규가 잔뜩 고민에 찬 얼굴로 들어온다.

재천            너, 아부지 잠깐 보자.
영규            …저요?
재천            그래.

하고는 소라 껍데기를 도로 줘버린다. 홍여사, 무시 상한듯 분하다.
재천이 영규를 나무 밑으로 데리고 간다.

영규            뭔데요, 아부지?
재천            (홍여사를 한번   돌아본다. 좀  들어가줬으면 하는   눈치
                로)

홍여사, 휙 돌라서는 얼굴이 화가 나서 붉그락 푸르락한다.




S#9. 홍여사 안방

홍여사, 스카프들을 휙휙 벗겨내고. 속바지로 갈아입으며 속상해한다.

홍여사          …바보 멍청이!

귤바구니를 꺼내 놓고 마구 먹기 시작한다.

홍여사          …아메바, 멍게, 말미잘…!

속상하다.

홍여사          식충인가? 맨 먹는 것밖에 몰라!

울 것 같은 얼굴로 미어지게 먹는다.

S#10. 홍여사 마당

재천, 영규에게 말한다.

영규            생활비요? 형수가 달래요?
재천            그런건 아닌데, 느 형수두 직장 쉬구 하니까 돈 모자랄 거
                다, 네가 알아서 밤값좀 내놓구 해.
영규            알았습니다. 드릴께요.
재천            너 어디 아프냐? 얼굴이 왜 그래?
영규            아닙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부지.
재천            그래.

재천 나간다. 영규, 벤치에 주저 앉는다.  화나서 웃통을 획 벗어버린다. 견
디기 힘들다. 샌드백을 몇번 친다.

영규            이 기집애 하는 걸루 봐선 이거  진짜 애 낳아 갖구 열번   
                두 더 안구 올텐데? 아,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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