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S#1. 홍여사 마당 (낮) 

제천이 혼자 아령을 하고 있다. 열심히 습관적으로 하고는  있으나 뭔가 생
각에 빠져서 눈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다. 그 눈에 떠오르는 계순의 모습.

재천E        틀림없이 그 여자였어…!  그 시간에 거기에  왜 나타났을     
                까?
재천            분명히… 나를 봤어. 보구 사라져 버렸어!

재천, 궁금한 채로 열심히 운동중이다.

S#2. 홍여사 거실 

홍여사, 아까부터 밖의 재천을 몰래 내다보고 있다. 웬지 서글퍼 보이는 모
습이다.


홍여사      저  우람한  팔뚝…!  저   팔뚝으로 넘실거리는   파도와             
                싸워왔을 테지! 저 팔뚝으로 고기들이 잔뜩  든 그물을 걷  
                어 올렸겠지! 아, 싱싱한 생명력… 아름다워라!

홍여사, 내다보다가 돌아선다.

홍여사          …저 남자를 이사오라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  실수   
                 였어…! 마치  지남철에 이끌려드는 쇳가루처럼  나는 지   
                 금 너무나  무력하게 저  남자에게 이끌려  가고 있어…!     
                 아,  자존심 상해!!

흥여사, 힘들어 한다.

S#3. 홍여사 마당 

재천이 운동을 마치고 수건으로 목을 닦으며 앉아있다. 수건으로 목을 닦으
며  앉아있다. 수경과 동규가 웃으며 들어온다.

수경            아버님!
재천            일찍 오는구나?
수경           네, 아버님! 오늘 동규씨 대리 임명장 받았어요! 보여드릴    
                까요?!
재천            야, 관둬!
수경            왜요?
재천            나중에 사장되서 임명장 받거든 그때나 뵈다구!

수경, 무안하다. 동규를 돌아본다.

동규            (무안하게 웃는다)
재천            안에 영규 친군지 누군지 왔더라.
동규            ?

S#4. 수경마루 

영규, 돈 세고 선배가 와서 달래는 중이다.


선배             …야, 돈 천 남았는데 마져 하구 끝내자!
영규             싫다니까!
선배             너 혹시 실연 했냐? 왜 기집애처럼 삐쳐 갖구 그래?
영규          …젊은 놈이 술값이나  받으러 다니면 되겠수?  …새해엔     
                 뭐 좀 그럴듯한 일을 해봐야지!
선배            딱, 우리 두껀만 더 하자! 백짜리 하나하구 백오십짜리 하  
                 나!
영규            혼자 해!

하는데  수경과 동규가 들어왔다.

선배            그럼 큰 걸로 딱 한껀만! 딱 한껀!
동규            (얼른 선배를 본다. 말투가 걱정 되어서)
영규            형 우리 형이우.
선배            (돌아보고 깍듯이 옷, 머리 매무새 가다듬으며) 안녕하십  
                니까?
동규            누구시냐?
영규            가요, 형. (선배를 끌고 나가려고)
선배            안녕하십니까? 저 조용필 (하다가 아차)…정명숩니다.
수경            안녕하세요? (조용필?)
동규            (말만 하고)
영규            나가요! (휙 민다)

선배, 휘청하고 끌려 나가고.

수경            안녕히 가세요?
선배            네! 또 뵙겠습니다. 두 분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순간 영규가 휙 채서 나간다.

동규            (목례를 한다)

두사람 나갔다.

수경            (웃으며) 동규씨? 저 사람이 자기가 조용필이라구  했지,   
                  지금?
동규              …

S#5. 홍여사 마당 

선배 나오며 정말 너무나 속상하다.


선배             나아 참! 이거 웨이터 티를 빨리 벗어야 하는데… 거기서  
                 왜 즐거운 시간이 나오니… 돌겠네, 진짜!
영규             얼른 가, 형!
선배            …알았어! 뭐 니가 그러는데 나두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너 덕분에 어쨌건 연말 연시 아빠  노릇, 남편 노릇 괜찮  
                 게 했다… 고맙다!

하고 나가는데 재천이 보고는 인사를 한다.

재천E           가는건가?
선배            네, 아버님! 편안한 시간 보내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공손히 하고 나갔다. 영규, 문 닫고 온다.


재천            민규는 어디 갔니?
영규            모르겠는데요?
재천           모른다구만 하지 말구 좀 챙겨봐! 형이라는 게 왜 그 모양  
                이냐!
영규            알았습니다!
재천            그 녀석 왜 날마다 밖으루만 돌지, 그거?
영규            여자 만나는 눈치라니까요!
재천         글쎄 그렇더라두, 어떤  애를 만나구 다니는지  쓸만한 앤      
                지,  좀 알아보란 말야, 자식아!
영규            네.

재천, 문득 돌아서며.

재천E           …영규야.
영규             네?
재천            우리 해돋이 보러 갔을 때 말야. 너 혹시 거기서 아는 사  
                 람 누구 만난 적 없냐?
영규             아는 사람… 누구요?
재천             …아냐….

이번엔 역기다.

영규            ?

S#6. 수경 마루 

영규, 들어오는데 동규가 기다리고 서있다.

동규            그 친구 뭐하는 친구야?
영규            알면서 뭘 물어?

영규, 그냥 들어가려는데 동규가 휙 잡는다.

동규            한껀이라는게 뭐야, 너?
영규            (웃는다) 신경 쓰지 마. 암것두 아니니까.
동규            웃지 말구 말해. 너 뭐하구 다니는 거야?
영규            (동규 손 치워내며) 혹시 내가 뭐 신문에 이름이라두 나서  
                형 체면, 구길까봐 걱정되는  모양인데 전혀 걱정하지 마!   
                형이 체면  있다면 나두 있어!  나, 형이 생각하는  것처럼   
                바보 아냐!
동규            그러니까 말을 하라구! 무슨 일을 하는 거야, 너? 내가 좀  
                알자!
영규           범법행위 같은 거 안해! 혹시 그런  일을 하게 된대두 나    
                 내 손 절대  더럽히지 않아! 그런 경우엔  남을 시킬테니   
                 까…아무 걱정 말우, 응? 내  손은 언제나 클린…클린 핸  
                 드야!

영규, 두 손을 펴보여주며 비웃어주고 들어가려다가 돌며.

영규             아참, 형 용돈 없으면 용돈 좀 줄까?
동규             맞을래, 너?
영규             (비웃고 들어간다)

동규, 말 안 듣는 동생이 아주 지겹다. 속상하다.

S#7. 수경 신방 


동규, 겉옷들을 벗는다.

수경            아버님 왜 이거 안 보신다구 하실까? (임명장)
동규            아부지 나한테 욕심 많은 분이야. 나두 꿈두 컸구.
수경            그러니까 자기가 어렸을 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 자랑하  
                는 거야?
동규            그래! 나 우리 시골선 엄청 잘 나갔었어! 박선장네 큰아들,  
                못해두 판검사는 한다! …이게 정설이었다구.
수경            아니, 왕년에 잘 나가지  않은 사람 어딨냐?  나두 한때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통령을 꿈꾸던  사람이라구! 비록  
                초등학교 때긴 하지만!
동규            딴소리 말구, 어떡할까 우리?  사무실 식구들한테 밥 한끼  
                내야잖아? 
수경            그래! 한번 사자, 동규씨!
동규            밖에서 먹자구?
수경            그럼? 집에서 하면 돈 더 들어 동규씨 ! 괜히 힘만 들구!
동규            그래두 집들이두 못했는데, 집에서 간단히 하자.
수경            …일루 사람들을 부르자구? 이 좁은 집에? 나대리, 이대리  
                다 부르자구? 일루? (어림없다)
동규            (웃는다) 나대리는 뺄까, 그럼?
수경            나, 요리두 못해?
동규            뭐 요리씩이나 할려구 그러니?  그냥 상옥이 불러서 같이   
                밥 하구 국 끓이구 하자! 날짜는  내가 팀장님하구 의논해  
                서 잡을게.
수경            …알았어! (하고는 다시 임명장 본다) 동규씨…어릴 때 있  
                 잖아? 우등상 타오면 우리 아빠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거   
                 든? 바루 이런 기분인가봐? 나, 되게 좋아?
동규             (쓰게 웃는다) 너무 그러지 마라.  겨우 이 정도 갖구 니  
                 가 너무 그러면 내가 슬프다!

하고는 종이 치워버린다.

수경            근데 박동규 대리님! 정식으루 임명장두 받았는데…  그냥  
                넘어갈꺼야?
동규            또 뭐?
수경            승진기념 뽀뽀는 한번 해야지! 이 남자 완전히  성의 부족  
                이야, 진짜?

수경, 허리에 손 올리고 노려본다. 동규, 웃고.

S#8. 수경 작은방 


영규 선배가 준 돈을 다시 세어본다. 만족한 얼굴로 찔러  넣는다. 영규, 방
을 돌다가 문득 앉아서 민규의 소지품을 검사한다. 이것저것 보다가 스케치
북을 펼쳐본다. 훌렁훌렁 넘기다가 잠깐  멈춘다. 거기에 그려진 계순의 얼
굴, 영규 그냥 넘긴다. 다시  훌렁거리고 넘기다가 문득 한  장에서 멈춘다. 
시연이 분명해 보이는 그림 한 장.


영규            (눈이 반짝해진다) 이건 시연인데, 분명?

영규, 믿기지 않은 듯한  얼굴로 다시 그림을  천천히 본다. 뭔가 떠오르는 
얼굴이다. 시연을 만나고 오던 날 밤 민규의 어색하던 얼굴 표정.

영규            (설마 하는?)

영규 놀란다.

S#9. 계순방 (낮) 

모자, 군밤을 까먹으며 다정하게 앉아있다.


민규            엄마!


서로 깐 군밤을 동시에 내민다. 웃는다.

계순            너부터 먹어.

계순 주는 것 민규가 먹는다. 민규가 계순에게도 준다.

계순            니네 아빠 시골 다녀와서 아무 말씀 안 하셔?
민규            응, 확실히 못 보셨다니까.

계순            동규는 지금두 점잖아보이더라…  클때두 젊잖더니…동규   
                클  때, 시골서  모두 그랬다.  박선장집에 인물  하나난다    
                구….

민규            …
계순            내가 동규한테는 큰 죄를 졌어. 넌 큰형 애먹이지 마. 
민규            엄마 정말루 큰형 때문에 엄마하구 나하구 헤어졌어요?
계순            …누가 그래.?
민규            아빠가.
계순            …그건 핑계야. 아빠가  결심만 했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데, 너 그 여자, 영규  애인, 인제 안 만나  
                지?
민규            …네…
계순            (얼굴 올려다보고) 그래, 그렇게 해. 절대 안 되는거야, 그  
                건. 내가 느이 형들한테 죄지었는데 너까지 그럼 안 되지!
밈규            …(자신없다) 임마, 나 여기서   엄마랑 같이 살면  안 되   
                지?
계순            (바라본다)
민규            아냐, 그냥 농담이예요.
계순            너 얼른 커서 장가가, 네가 장가가면…  그때는 내가 엄마  
                다 하구 드나들어두 좋지만 지금은 안돼.
민규            …(섭섭하다) 알았어요. 그런데  엄마, 아저씨…어떤  분이   
                야?
계순            그냥 보통 남자야.
민규            그런데 왜 같이 안 살아요?
계순            …사정이 좀 있어서.
민규            그 아저씨한테 내 이야기 할 거예요?
계순            …
민규            말 안해두 난 괜찮아. 엄마.
계순            …밤이나 먹어, 얼른.

계순 밤으로 민규 입을 막아버린다.

S#10. 수경 작은방 


영규, 눈 반짝이며 앉았다가 전화기를 끌고 와서 단추를 누른다.

시연E           여보세요?

한다. 영규 그 소리 그립게 듣고 있다.

시연E           여보세요? 누구세요?

하는데 , 상옥이 불쑥 들어온다. 영규, 얼른 전화를 내린다.

상옥E           오빠, 왜 그래?
영규            뭐가?

하고 일어나 나가버린다.

상옥            저 인간 진짜루 이상하네? 요즘?

상옥 하다가, 문득 전화기를 본다.

상옥            도대체 누구랑 전화하다가  그렇게 놀라는 거야?  …맞아!   
                재발신 눌러보자!

상옥, 재발신 신호를 놀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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