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 14일 ----- 영덕의 함박눈이 가져다 준 '좋은 그림'
   
해돋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새해 첫날을 보냈던 영덕을 한달 남짓만에 또 찾게 되었다. 이번 촬영 때문에 함께 내려갔던 최불암 씨의 말처럼, 그야말로 '고향을 찾는 느낌'이 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영덕에는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뒤늦게 서울로 올라와서야 같은 시각 서울에도 10cm가 넘는 폭설이, 그것도 17년만 의 처음으로 많이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덕에는 일년에 고작해야 두세 차례 온다는 눈이 마치 우리 촬영팀의 도착을 환영이나 하듯이 계속해서 퍼부었던 것.

그렇지만 오랜만에 내리는 함박눈에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다. 당장 사흘간 겨우 짬을 내 내려온 촬영 스케줄이 차질을 빚으면 어떡하나 하는 나의 기우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눈이 그치자마자 기온은 영상으로 훌쩍 올랐고, 그 덕분에 밤새 내려 쌓여있던 눈도 슬그머니 녹았다. 물론 촬영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눈이 그친 뒤에 조금씩 불기 시작한 바닷가 바람은 시연을 서울로 올려보낸 민규가 쓸쓸이 혼자 바닷가를 거니는 상황과 잘 어우러져서 썩 괜찮은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다.

가끔씩 이번처럼 예상치 못한 좋은 장면의 연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마른 하늘에 비가 쏟아져도, 함박눈이 며칠 동안 펑펑 내리는 궂은 날씨도 때론 연출가로서 고마울 때가 있다. 사소하지만 자연스런 날씨의 변화는 오히려 좋은 드라마 연출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고, 해가 나고, 눈이 오고…,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그날그날의 날씨까지 일일이 촬영과 연관하여 생각하는 것을 보면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 아닌가 하고 혼자서 슬며시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