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제 상황 탓에선지 올해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지나갔던 것 같다. 물론 크리스마스에 관계없이 우리 촬영 스텝들은 보통 때와 똑같이
촬영을 계속해야 했다.
우리 스텝진이 불행하게도(?)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 곳은 그야말로 서민들의 생생한
삶이 넘쳐나는 노량진 수산시장. 재천 역을 맡은 최불암 씨와 영덕 새벽 부둣가
이미지와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는 장소였다.
더없이 복잡하고도 분주한 시장 안이었지만,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택에 그 날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예년과는 달리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속상하다는
상인들의 푸념도 듣고, 수고한다며 내미는 소주 한 잔을 주거니받거니도 하면서… 내게
비춰진 그들의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바로 내가 원하는 극중 재천의 모습이기도 했다.
삶의 깊은 굴곡이 느껴지면서도 솔직함이 배어있는 일상의 모습.
그러한 까닭에 수산 시장의 장면 촬영에서는 단역 배우들이 따로 필요없었다. 카메라
안에 잡히는 그들의 모습 그대로가 그 어느 배우의 연기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보여진
까닭에서다.
늘상 되풀이되는 고된 촬영 속에서 가끔씩 이렇게 최선을 다해 힘차게 살아가는
서민들과 마주칠 때, 나는 다시 한 번 힘을 내게 된다.
아마도 내년에는 분명 올해보다 더욱 힘차고 기쁜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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