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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원작 사이...

최근에 본 영화 몇 편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이, 로봇' '바람의 파이터' '킹 아더' '늑대의 유혹'... 다 원작이 따로 있고 이번에 영화로 나온 작품들입니다.

먼저 '늑대의 유혹'...

김태균 감독의 전작인 '화산고'를 보면서, 참 무술씬과 CG는 공들여 찍었는데 기왕이면 대본을 직접 쓰지 말고 작가한테 맡기시지...하고 아쉬워했더랍니다. 솔직히 화산고가 그림은 죽이는데 스토리는 좀... 그렇잖아요? 이번에 귀여니 원작의 '늑대의 유혹'을 갖고 나온걸 보며 '그래, 그래도 확실한 원작이 있는 스토리니 훨씬 안전한 선택을 하셨군'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저는 나름대로 만족했습니다. 조한선의 배역보다 강동원이 워낙 돋보이는 구성이 아쉽기는 하지만, 특히나 조한선 쪽 사람이라 생각하는 저로서는... 마지막에 강동원으로 스토리가 확 가는 것 말고, 그림 면에서는 여전히 힘있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감독의 역량이 돋보였습니다. 청춘 로맨스 영화인데 멋진 싸움씬에 더 눈길이 가는걸 보면 역시 감독의 취향은 속일 수 없는거지요. 원작의 인기와 강동원의 열연으로 인터넷 소설 중 영화화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의 파이터'...

논스톱 친구들이 주연하는 영화는 보러갈 때마다 망설여집니다. 혹 영화가 별로면 어떡하지? 아이들 다음에 만나서 뭐라고 인사하지? '야, 지난번 영화는 좀 꽝이더라,응?'... 이렇게 말해줄수도 없고... 대개의 경우, 그냥 빈 말로 '영화 괜찮더라'라고 해주지요. 혹 그런 빈 말도 못할까봐 아예 안보고 있는 영화도 몇 편 있지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나 '그 놈은 멋있었다'... 평을 보고 나니 보기가 두렵더군요. 못봤다고 하는게 정화나 다빈이를 만날때 덜 민망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바람의 파이터'는 본 후, 확실하게 동구리에게 '야, 영화 대박이더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원래 비가 캐스팅되었던 역할인데, 보고나니 양동근 말고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최배달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워낙 방학기 씨의 원작 만화를 좋아했고, 송강호가 넘버 쓰리에서 들려주는 최배달 이야기가 좋았기에... 개인적으로 저는 '바람의 파이터 2'를 기대해 봅니다. 원래 만화 원작에서 정말 매력있는 부분은, 도장깨기로 일본 열도를 정복한 최배달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고수들과 겨루기를 하는 부분이거든요. 그 일화 중 하나가 소뿔꺽기 이고... 원작을 옮겨오면서 영화는 일본 게이샤와의 사랑 이야기를 넣었는데, 좀 그 부분은 지루하더군요. 뭐, 양동근이라는 배우의 파워를 스크린에서 맘껏 즐긴다는 점에서 만족.

'아이 로봇'

영화 '크로우'와 '다크 시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절대지지자이긴 하지만, 이번 영화는 감독보다는 원안의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팬으로서 보았습니다. 아시모프의 과학 소설을 워낙 좋아해 한때 책으로 번역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물론 그 책은 별로 안 팔렸고, 출판사는 다음해 망했지요...) 이번에 아시모프의 원작이 영화화되는 걸 보고 감회가 새로와 원작 소설을 찾아봤습니다. 10년 전에 읽은 책인데, 다시 뒤져보니 저작권 연도는 1950년으로 되어있군요.

천재라는 건 이럴때 정말 어울리는 표현이지요. 1950년에 로봇 세계에 관한 소설을 쓴 것이 이제 2004년에 영화로 나왔는데, 여전히 그 선지자적인 시선은 놀라우니까요. 로봇 3원칙을 만들어낸 아시모프는 진정한 천재이지요. 못지않게 똑똑한 알렉스 프로야스가 감독을 했으니, 꽤나 영상은 멋집니다. 수십대의 로봇이 도시를 공격하는 순간의 비주얼은 정말 엄청나지요. 다만... 로봇에 대해서는 끝없이 낙관적이고, 로봇 옹호주의자였던 원작자 아시모프의 세계관을 좀 다르게 풀었다는데 대해서는, 약간 불만... 다만, 위안삼을수 있는건 50년전에 쓰여진 아시모프의 소설이 21세기에 영화화되어 뒤늦게라도 대중들에게 선보여진다는 것... 그것에 감사해야겠지요. 아뭏튼 '아이 로봇'의 비주얼은 정말 대단하니까요.

'킹 아더'

원작을 가지고 영화나 드라마로 새로 각색할 때, 흔히 겪는 오류가 각색자의 주관이 심하게 많이 개입되다 거의 훼손 수준까지 가는 거죠. 그로인해서 원본의 주제가 왜곡되기도 하는데요.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라는 전설을 실존했던 인물사로 만들려다, 영화 '킹 아더'는 길을 잃고 표류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기사 랜슬럿과 기네비어'의 사랑도 없어지고, 마법사 멀린의 이야기도 변질되고... 그나마 '바위에 꽂힌 칼을 뽑는 장면'을 색다르게 해석한건 성의있어 보이나... 쩝. 우리가 알던 원탁의 기사는 다들 어디로 갔나요?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지요. '해리 포터 1편'을 보면 소설의 이미지가 그대로 스크린에 펼쳐져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그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으면...하고 아쉽기도 하잖아요? 반면 원작에 새로운 시선이 가해진 영화를 보는 것은, 매니아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비춰져 욕먹기 쉽구요. 대중적인 작품을 만드는것과 매니아들의 박수를 이끌어내는건 동시 수행 가능한 작업이 아니지요. 각색이란 대중에게 알려진 친근한 이미지를 이용하되, 무언가 새로운 의미를 더해줘야하는건데... 참으로 어려운 줄타기이지요?

요즘 영화들을 볼수록,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들 했던 '반지의 제왕'을 멋지게 영상으로 펼쳐낸 피터 잭슨 감독이 대단해보이는군요. 활자 매체의 걸작이 영상 매체의 걸작으로 만들어지긴 쉽지가 않거든요. 원작의 인지도에 슬며시 기댄 많은 영화가 쏟아져나오는 요즘, 창작의 고통과 열정을 씨앗삼아 만들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