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 이제야 정신없이 지내던 한달이 지나가는군요.
느낌표에서 새로운 코너를 만들면서, 근 한달 동안 주말에는 해외 출장 주중에는 편집에 회의, 아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고 있습니다.
느낌표에서 새로운 코너를 기획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그때 내가 평소 많이 고민해보던 문제를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예전에도 살짝 고백한 적이 있지만, 저는 고교 시절 학교에서 왕따였더랍니다.
중학교 때 별명이 '보트 피플'-베트남 난민-이었구요.
대학교때에도 키 173에 체중이 53킬로였으니 정말 초라한 체구였죠.
시커먼 피부에 남방계 외모를 가진 덕에
늘 필리핀이나 베트남이란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습니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때 '넌 우리반에서 제일 못생긴 애다'
라는 소리를 공공연히 들으며 살았으니, 정말 꿀꿀한 시절이었지요.
현실 도피를 위해 늘 몽상을 즐겼는데요,
자주 해보던 상상이 내 비록 외모는 초라하지만
언젠가는 이쁜 여자와 보란듯이 연애해보리라...
뉴논스톱을 연출할때, 박경림을 사랑해주는 조인성, 양동근을 사모하는 장나라 이야기...
정말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서 찍고 만들었습니다.
그건 사춘기때 늘 내가 꿈꾸던 환타지의 완결편이었구요,
사랑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건 외모가 아니라는건
내가 어린 시절 스스로에게 늘 했던 다짐이니까요.
느낌표 새 코너를 기획하던 어느날, 우리나라 혼혈아동 실태 보고서를 보았습니다.
'아....
난 그냥 필리핀 사람처럼 생겼다고 놀림을 받았는데,
이제는 진짜 필리핀 사람이라고 놀림받는 아이들이 있구나.'
우리가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단일민족, 순혈주의...
우리의 자긍심이 혹 미래에는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
우리와 다른 가족을 가진 우리 동포를 향한
편견의 칼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요?
적어도 필리핀 엄마를 가졌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놀림받고
좀 다른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서 따돌림받는
그런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 엄마만 다르게 생겼는지,
왜 우리 엄마만 이상한 말을 하는지 궁금했을 아이들에게
엄마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사는 나라,
엄마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집으로' 첫 방송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엄마도 같이 갔었으면 더 좋았을걸'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시더군요.
물론 저희도 많은 고민을 했던 부분입니다...
다만 저희가 '집으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현재에 닥친 농촌 국제 결혼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늘어날 혼혈 아동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였습니다.
결혼 후 10년만에 처음 친정을 찾아가는 엄마와 아이의 동행기라면
당연히 보는 이의 감정의 촛점은 '엄마'가 되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태어나 한번도 가보지 못한 외갓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이 그 아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길 원했더랍니다.
엄마가 촛점이 되면, 국제 이주 여성들의 복지문제나 언어 부적응 문제가 이슈가 되겠지만,
아이가 중심이 되면, 혼혈 아동의 정체성이나 사회의 인식을 정조준할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동안 연출하면서 저는 즐거웠습니다.
외모 덕에 이렇게 덕보긴 처음이었으니까요.
날보고 '무척 낯익은 인상이네요.'라며 반갑게 맞아주고 속내를 보이던 태국 아줌마, 보자마자 '아저씨도 필리핀 사람이야?'라고 말걸어오던 문영이(지난주 주인공 여자아이).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을 잘해?'라고 먼저 물어오던 아이들...
날보고 반가워해주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이야.
필리핀에 가서 촬영하면서도 일하기가 수월했지요.
다들 고향에 돌아온 모국방문단인양 맞아주었으니까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또 아이들이 필리핀! 필리핀!하고 놀린다면 이제는 대꾸해줄수 있어요.
'그래! 난 이국적으로 생겼다. 난 나중에 국제적으로 놀려고 그런다 왜!'
헤니의 말처럼, 저 역시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받은 수모가 오히려 힘이 되었습니다.
타고난 외모는 어쩔수 없지만, 내가 노력을 통해 바꿀수 있는 부분은 뭐든지 바꾸겠다.
그런 다짐으로 하루 하루를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번주 느낌표 방송분부터는 엄마와 함께가는 외갓집 방문기가 방송됩니다.
항상 즐겁고 감동적인 외갓집 방문기, '집으로!' 늘 아껴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다니엘 헤니랑 찍은 사진 한장...
미국에서 자란 다니엘, 혼혈이라고 놀림도 많이 받고 맞기도 많이 맞았더군요.
그래요, 이젠 우리도 웃을수 있어요.
같은 상처를 안고 자란 두 사람이라고 우겨보려지만
어쩜 이리도 분위기가 달라주시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