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의 월화 드라마 ‘대장금’이 안방극장의 천하통일(天下統一)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장금’의 현재까지 최고 시청률은 43.7%(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 올해 들어서는 상반기의 ‘올인’ 이후 두 번째로 40%의 벽을 넘은 드라마다.
‘대장금’은 SBS TV ‘왕의 여자’와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지만 예상을 뒤엎고 압승을 거둬 초반 분위기를 장악했다. 이 두 드라마는 ‘사극의 1인자’를 가리는 타이틀 매치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대장금’을 비롯해 ‘허준’ ‘상도’ ‘조선왕조 500년’의 이병훈 PD와 ‘왕의 여자’ 이전에 ‘용의 눈물’ ‘여인천하’ 등을 연출한 김재형 PD는 국내 사극 연출의 최고봉.
두 사람은 1년 전 ‘여인천하’와 ‘상도’로 맞붙어 김 PD의 ‘여인천하’가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당시에는 ‘여인천하’가 이미 최고조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던 대목에서 뒤늦게 ‘상도’가 방송을 시작해 정당한 승부는 아니었던 셈. 리턴매치격인 이번 대결에서는 ‘대장금’이 2주 먼저 시작했고, 현재 압승을 거두고 있다. 이병훈 PD의 복수가 성공한 셈이다.
일단 두 드라마의 승부에서는 캐스팅이 한몫을 했다. ‘대장금’이 오랫동안 TV를 떠나있던 톱스타 이영애를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 반면, ‘왕의 여자’팀은 이에 필적할 만한 ‘간판’을 내세우지 못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
물론 캐스팅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대장금’의 성공에는 바로 앞에 포진해 있던 퓨전 사극 ‘다모’의 기여가 적지 않다. 비록 시청률면에서는 단 한 번도 20%를 넘지 못했지만 수많은 매니아층의 형성과 함께 ‘하오’체의 유행 등 수많은 신드롬을 양산했던 드라마인 만큼, 이 드라마가 ‘대장금’의 전초전 역할을 충실히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대장금’은 ‘다모’에 비해 훨씬 더 대중적인 드라마다. ‘대장금’의 제작발표회 때 이영애는 “(소수 매니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다모’와는 달리 ‘대장금’은 (누구나 좋아하는) 김치같은 드라마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가 ‘다모’ 열성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럼 ‘다모’에는 없고 ‘대장금’에는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다모’를 지배했던 것이 다소 과장된 로맨티시즘이었다면 ‘대장금’에는 보다 많은 인간 군상과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현재의 갈등은 장금의 출세와 그를 시기하는 주변 인물들 그리고 궁정의 주방을 지배하는 최씨 일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드라마가 더 확장되면 의녀(醫女)가 되는 장금과 그를 가로막는 남자 의관들 사이의 갈등이 벌어진다.
특히나 이 소재는 시청자들에게 친숙하다는 강점이 있다. 그렇다. 이미 3년 전에 본 ‘허준’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두 드라마는 연출자가 같다는 점, 임금의 주치의인 전의들의 이야기라는 점, 두 주인공이 정사에 등장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성장과정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따라서 드라마화 하려면 많은 ‘창작’이 불가피하다)에서 방송 전부터 무척 비슷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허준, 또는 장금이라는 주인공은 탁월한 재치와 착한 심성을 갖고 있지만, 너무 올곧기 때문에 주위에는 항상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올라선다.
이들에게는 친절하고 유능한 스승이 있지만, 결국 이들의 성장을 다 지켜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허준’에서의 유의태(이순재)가 그랬고, ‘대장금’에서는 한 상궁(양미경)이 그런 운명이다.
물론 단골 연기자들도 두 드라마의 유사점을 더욱 짙게 한다. ‘대장금’에 각각 강 숙수, 최 대감, 제조상궁으로 등장하는 임현식, 이희도, 박정수는 ‘허준’에서도 각각 임오근, 구일서, 유의태의 아내로 등장해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 두 드라마는 사회 맨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라서는 서민 영웅의 성공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허준이나 장금은 명예도, 재산도, 권력도 타고 나지 못했지만 자기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들이고, 이런 부분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다’는 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진부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부분. 하지만 ‘대장금’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이를 ‘친숙함’으로 느끼고 있다. 따라서 “‘허준’과 너무 똑같아 결말이 뻔히 보인다”는 지적도 있지만 ‘허준’과 닮은꼴 시비가 드라마의 인기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대장금’의 후반부는 의료 드라마지만 일단 전반부는 ‘요리 드라마’로서 몫을 다 해주고 있다. 벌써부터 ‘대장금’으로 인해 조선 궁중음식 붐이 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드라마 초반에서는 음식 만드는 장면에서 이영애나 홍리나의 손이 지나치게 두툼한 ‘아줌마 손’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손 연기를 음식의 감수를 맡고 있는 궁중음식연구원(원장 한복려)의 중년 연구원들이 돌아가며 맡았기 때문. 하지만 지금은 ‘이영애의 손’만큼은 27세의 박준희 연구원이 전담하고 있다.
매일 화면에는 번쩍 하면 알록달록한 요리상이 차려지지만 한복려 원장은 “임진왜란 전이라는 배경 때문에 요리 색을 화사하게 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한다. 조선 땅에 고추가 들어온 것이 임진왜란 직전이다 보니 이 드라마에서는 음식에 붉은색을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중종 역할을 맡은 임호는 역대 사극 중에서 가장 행복한 왕으로 꼽히기도 한다. 정사를 다스리며 신료들을 꾸짖는 연기보다는 늘 진미(珍味)를 맛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또 같은 방송사 안에서도 “‘대장금’팀은 매일 촬영장에서 궁중요리 회식을 하느냐”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드라마 촬영은 쉽게 끝나는 작업이 아닌 데다 뜨거운 조명이 내리쬐고 있기 때문에 음식이 빨리 상한다. 특히 떡이나 나물 등은 촬영이 끝날 때쯤이면 거의 쉬기 직전이 되는데, 어쨌든 맛있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 장면이라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매회 음식비로만 수백만원이 나가지만, 촬영이 끝난 뒤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어 모두 버린다는 말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