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이 짧은 시기에 불러온 사회문화적 반향은 놀랍다. 백화점과 호텔, 식품업계의 마케팅 원용은 기본이다. 요리바람을 일으키더니 컴퓨터에서는 요리게임이 뜬다. 항공기 기내음식 메뉴판을 바꿨고, 거리 곳곳에서 ‘오나라 오나라~’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떡집 등이 수천만원을 내며 대장금 상호를 쓰고, 대장금쌀 판매액 중 일부가 로열티로 방송사에 들어간다. 과거에도 ‘모래시계’ ‘야인시대’처럼 열풍으로 수식된 드라마가 있었지만, 트렌드를 만들고 라이선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한 경우는 처음이다.
‘대장금’ 시청률은 기록적이다. 불과 4회부터 30%대에 올라서더니 이제 5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다모폐인’ 등 숱한 화제를 낳은 사극 ‘다모’가 한 번도 30%를 못넘은 것에 비추어 보면 속도를 실감케 한다. 드라마를 멀리 한다는 30대 남성들도 주시청자층으로 끌어들였다.
시청률에서 ‘대장금’은 경쟁 방송사에서 같은 시간대 방영되는 사극 ‘왕의 여자’와 대척이다. ‘왕의 여자’는 사극의 대부로 꼽히는 김재형 프로듀서의 역작이다. ‘대장금’을 연출자인 이병훈 프로듀서는 2001년 사극 ‘상도’로 김 프로듀서의 ‘여인천하’와 맞서 완패한 바 있다. 이번에는 역전이다. ‘대장금’이 비상하는 반면 ‘왕의 여자’는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왕의 여자’가 ‘여인천하’ 유의 사극 전통을 잇고 있다면 ‘대장금’은 ‘상도’보다 더 비전통적이다. ‘왕의 여자’에는 권력투쟁, 궁중여인들의 암투, 곡절 끝에 권력중심에 서는 여걸 등이 있다. 시대배경도 조선시대 파란의 선조, 광해군 때다. 하나같이 사극의 전통 요소들이다. 반면 ‘대장금’은 장금이 실록상 인물이라는 정도를 빼면 대부분 허구다. 권력 대신 음식이 전면에 등장한다. 왕과 귀족보다 궁녀, 서민 비중이 크다. 지금까지는 멜로도 부차적이다. 음악과 대사는 극히 현대적이다. 퓨전, 포스트모던 사극이라 일컬어지게 하는 세목이다.
‘왕의 여자’와 ‘대장금’ 사이에는 사극 문법의 깊은 간극과 대중의 변한 눈이 자리하고 있다.
‘왕의 여자’는 시청자에게 역사를 다시 보는 즐거움, 역사를 통해 현재를 새로 보는 것을 꾀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이다. 실제 과거에 인기와 화제를 낳았던 ‘용의 눈물’ ‘왕건’ 등의 사극은 역사 다시보기와 함께 현정치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하면서 대중에 호흡, 관심을 증폭시켰다.
‘대장금’은 이런 사극 문법에 등을 돌리고 섰다. ‘대장금’ 인기에는 TV사극에서까지 ‘무겁고 진지한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대중의 선호가 작동한다. 극화된 역사마저 즐길 여백이 없음이다. 하물며 사극을 통해 현실정치를 견줘보려 할까. 5년, 10년 전과 같은 주제와 인물상이 지지고볶는 정치세상, 권력투쟁을 매일 지겹게 대하는 판이다. 사실 ‘대장금’에는 현실 정치세계를 반추, 전망할 둔덕조차 없다.
대신 시청자들은 ‘대장금’에서 ‘보고 싶은 현실’을 보고, 보려 한다. ‘대장금’ 속 역사는 지금, 여기의 재미없고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꿈이 가공해낸 세계다. 장금은 오늘의 잣대로 보면 ‘헛똑똑이’다. 권력을 취하지도 않고, 로비를 벌일 줄도 모른다. 어떤 어려움에도 직업적 양심을 지킨다. 소위 ‘백’도 없고, 영재교육도 받지 못했다. “제가 한 노력은 이기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비법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거기에 들어간 땀과 정성만이 비법이었습니다”라는 장금의 대사는 아름답지만, ‘실리적’이지 않다. 한데도 장금은 여려움을 딛고 정점에 오른다. 현세에서는 드물기에, 전형적인 ‘콩쥐 팥쥐’ 공식에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가진 것 없이, 실력 하나로, 당당하게 난관을 헤쳐가는 장금을 보면서 대중은 경기침체·구조조정·실업 등으로 얼룩진 현실을 잠시 잊고 ‘잘 먹고 잘 살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