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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대원이
보내는 편지
To.
민구야,
오늘은 다시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이다. 지원조로 오신 강오형님,명호형님,정은이형님이 ?류하셔서
베이스 캠프에는 아연 선배형님들의 구라(?)가 활기를 띄고있다.
난 물론 “주섭형님의
지원조 성적은 10점 만점에 10점입니다.” 하고 3분 형님들을 협박(?)하고
있지만 광득이 말대로 나는 아마도 시니어들의 딱갈이 일지도 모른다.
기회가 된다면 형님들을 캠프 1까지는 올려야지!!!
이번 원정등반의 짭짤한
수입중의 하나는 막강한 산사나이 남기탁형님을 얻었다는 것이다. (엇그제
이곳에서 조촐한 회갑찬치-난 노스페이스에서 받은 고어텍스 클라이밍
장갑 한 켤레를 선물로 드렸다. 내년 2월에 토왕에 초대한다는 말씀과
함께)
형님은 지금까지 나의
룸메(베이스에서 둘이 한 텐트를 사용하고 있다.)인데 궁합이 잘 맞고
있다. 강오형님이 오셔서 엄대장과 내기한 맥주 3박스도, 형님께 절묘하게
토스해서 일거에 해결을 해버렸다.
4일전에 다시 운행에
나섰다.
셀파임을 자처하는 최광득과,
혈압이 높아 주위를 긴장시키는 용석이와, 막내 솔뫼와 함께 캠프 1로
올라가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일찍 다시 캠프 2까지 갔다가 캠프 1로
내려와 자는 일정이었는데 역시 마지막 플라토는 운행을 러셀로 시작해서
러셀로 끝나게 만들었다.
1시간 반이면 족하다고
판단했는데 거의 4시간이 걸릴정도로 눈은 무릎위까지 푹푹 빠져버렸다.
러셀을 자처(?)한 광득이가 완전히 지쳐버리고 운행중 죽은 피를 토할
정도로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찬스(?)라고 치고 나온
용석이가 캠프2 밑으로 이어지는 4-500m의 설벽을 치고 나갔지만 시간상
우리는 캠프 1로 철수를 해야했다. 캠프 1로 돌아오니 오후 7시 30분.
거의 11시간 운행을 한 셈이었다.
다음날 광득이와 용석이는
베이스로 철수를 하고 나는 솔뫼와 함께 캠프 1에서 휴식을 취했다.
솔뫼가 의외로 캠프2로 가서 자겠다고 나선 것이다. 운행중 가장 처지는
솔뫼가 왠일로 캠프2로 가겠다는 것인지? 나는 사실 솔뫼까지도 내려가
주기를 은근히 바랬는데 내려가라고 할 수도 없고….. 또 캠프 2로 가서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나를 가로 막는 생각이 복잡해졌지만 솔뫼가
기특하기도 해서 한마디로 “좋다” 하고는 솔뫼와 함께 캠프 2로 가기로
맘을 정리했다.
다음날 캠프2로 가서
자야할 침구등 개인장비가 많아서 운행이 더뎌질 것을 감안, 일찍 출발했다.
07:10 캠프 1 출발. 솔뫼를 앞세웠다. 대 암벽구간을 밑으로 트레버스하는
지역을 빠져나와 넓은 설원지대로 나왔는데 솔뫼는 한 30걸음은 내 닫다가
배낭을 맨 채로 뒤로 자빠져서는 숨을 헐떡이다가 내가 다가가면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나 또 운행을 하곤했다.
내가 “저게 몇번이나
갈까?” 하고 속으로 걱정을 했지만, 솔뫼는 그날 운행이 끝날 때 까지
계속 자신이 불사조임을 보여주었다. 솔뫼는 사실 베이스에서 원정역사상
전무후무(?)한 기합을 나한테 받았다. (후에 소문이 퍼지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나의
운행 파트너이고, 나는 솔뫼한테 언제 저런 정신력이 있었나하고 감동받고
있었다. 일찍 운행을 시작해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그 플라토 지역에 들어섰고 또다시 러셀을 쳐야만 했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무릎까지 빠지는 러셀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설벽구간에 들어섰는데 어느새 날씨가 나빠지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허벅지까지
빠지고…..
설벽을 한 300미터 정도
유마링으로 올라갔는데 선발대가 설치한 픽스로프가 눈 밑으로 1미터나
묻혀버려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한치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한 100미터나 150미터 정도만 올라가면 분명 텐트가 3동이나 쳐진 캠프2가
있을 것 같았지만 우리는 설벽에 갇혀버렸다. 나는 픽스로프를 10여미터
잘라서 솔뫼보고 확보를 보라고 하면서 오른쪽 설능으로 나가 보았지만
그곳에는 또다른 설사면이 펼쳐질 뿐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배낭을 벋고 확보없이 위쪽으로 치고 올라가 보았지만 솔뫼한테 들린
소리는 “형! 위험해요.” 라는 외침뿐이었다. 나는 내려 올 수 밖에
없었다. 올라간다해도 수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난 솔뫼가 후배가 아닌 등반파트너로 생각하고, “솔뫼야! 어떻게 할까?”
하고 물어보았다. “형! 돌아가지요.” 솔뫼의 대답이었다.
난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베이스 나오세요.
여기는 캠프1 운행조 김동수, 김솔뫼입니다. 상황이 악화되어 우리는
캠프1로 철수합니다. 운행이 끝나면 다시 무전하겠습니다.”
우리는 6,700m지점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설벽구간 약 300여미터를 하강하고 플라토 지역으로
내려서서 반대편으로 횡단을 했는데 아! 그만 러셀자국과 표식기를 놓쳐
길을 잃고 말았다. 바로 몇시간 전에 솔뫼와 함께 만들었던 러셀 자국이
아주 깨끗하게 지워져 없어져버렸고, 사방팔방이 짙은 개스와 눈보라로
한치 앞을 볼수가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좌우로 펼쳐지는 크레바스들뿐. 나참 ! 김동수가 6,400m지점에서 조난상태에
빠지다니! 물론 솔뫼와 난 매트리와 침낭도 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겠지만 나의 심정은 절망적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헤맸다.
날은 어두어지고 있었다. 그냥 경사가 낮은 지역으로 눈속을 푹푹 빠지며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솔뫼를 멈춰세우고 내가 앞장 서 나갔다.
그렇게 내가 앞장서 나갈 때 나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방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 빠져들어갈지
모르는 히든 크레바스였다.
나는 오른 손에 광득이의
캠프 피켈 손목걸이를 가운데로 해서 단단히 손목에 걸었다. 혹시라도
크레바스에 빠질 때 걸릴것을 기대하면서. 한번은 발밑이 우지직하는
소리를 내서 판 전체가 꺼지는 줄 알고 기겁을 해서 뛰었지만, 뛰어봐야
서너걸음뿐 더 이상 뛸 수도 없었다.
가다가 멈춰서서 방향을
잡아보고 승우가 건네준 선토시계로 방향을 수정해 걸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난 아주 절망하지 않았다. 난 지금까지 산에
다니면서 누구보다도 길은 잘 찾았으니까. 그렇게 헤매면서 잠시 멈춰섰는데…..
아! 멀리 좌측에서 빨간 표식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난 한참 뒤에서 내 발자국을
따라오고 있는 솔뫼를 손짓으로 불러 표식기를 가르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솔뫼를 세워놓고 표식기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솔뫼를 표식기까지
부르니, 눈보라 속에서 표식기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 다이하드
2에서 하늘에 떠 착륙하지 못하고 빙빙 돌던 비행기들에 한순간 착륙
유도등 불빛이 들어 오고 승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던 장면처럼 나의 눈
앞에 희미하지만 일렬로 꽂혀있는 표식기들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솔뫼와 나는 지쳤지만
그리고 여전히 눈보라 속이었지만 표식기를 따라 걸었다. 암벽 트레버스
구간만 지나면 아무리 혹독한 조건이라도 캠프 1로 돌아갈 자신은 있었다.
그렇게 길고 긴 설원지역을
거의 빠져나와 암벽구간을 10여 미터 남겨 놓았을 때, 나는 보통 운행을
할 때 픽스로프에 확보 카라비너를 걸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이제 다왔다는
심정 때문에 로프를 그냥 손으로 잡고 가다가 순간 발밑이 푹 꺼지면서
두발과 몸이 크레바스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느꼈고 손이 걸렸는지
배낭이 걸렸는지 뭔가 걸린 순간 난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다리를 올리고
크레바스를 빠져나왔다.
그 순간 솔뫼가 잡아주었고,
솔뫼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를 난 “형 ! 내가 형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라고 들었다. 그렇게 다시 위기일발을 넘기며 암벽지대로 와서 솔뫼와
나는 랜턴 불빛을 켰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저녁 8시10분 ! 아주
힘들게 13시간의 운행 끝에 우리는 캠프1로 돌아왔다. 솔뫼는 텐트가
바로 눈앞에 있는 곳에서도 배낭을 맨채로 뒤로 쓰러져 힘들어 했지만
오늘 솔뫼가 보여준 정신력은 훌륭한 것이었다. 캠프1에 도착해서 나는
장갑을 낀 손을 그대로 내밀어 솔뫼와 굳은 악수를 했다. 그는 훌륭한
후배였다.
얄룽캉 베이스에서 김동수
(민구야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시 보낸다.)
남기탁대원이
보내는 편지
남기탁 글올립니다.
보내주신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에 힘입어 어려운 환경에 적응
잘하고 간간히 생기는 환자들도 치료 잘하고있습니다. 산사랑 산악회
매화산 등반 잘햇다니 고맙고 제주 한라산 등반 계획중 인것도 알고
있습니다. 밍재는 개업한 약국이 잘 되는지 궁금하고 다른 회원님들
안녕하시겠죠.
이곳 사정은 메일을 통해 아시다시피 어제는 정상을
향해 출발했으나 자연이 허락을 하지않아 도중에서 돌아 왓습니다. 오늘은
망중한을 보내고 잇습니다.날씨 좋은 한 낮은 그런대로 지낼만 하지만
매일 오후만되면 몰아치는 눈보라에 추위는 고국생각을 더욱 간절하게
하지요.
그러나 이곳이 좋아서
온 저로서는 변화심하고 어려운 이곳환경에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온통
흰눈으로만 둘러싸인 산중에서 가마귀떼어 섞이어 어쩌다 나타나는 갈매기를
볼수도 있답니다 수백만년전에 바다가 융기되어 산맥을 이루고 그당시
서식하던 갈매기가 미처 피신을 못하여 토착화 된것이라고 합니다.
희박한
공기 높은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몸은 가벼워지고 다리의 뼈는 속이
커졌답니다. 피리의 명인은 그 뼈로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한답니다.
여하튼
저는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좀더 비어있는 몸으로
여러분을 뵙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얄룽캉에서 남기탁
올림.
김정은
지원조장이 보내는 편지
지원조 김정은입니다.
본대 도착 후 베이스
캠프 생활 5일째 등정성공을 기원하며,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최광득대원의 각혈로
캠프 1 철수, 김동수, 김솔뫼 대원의 캠프 1 -> 캠프 2 이동 중 2시간
30분간의 무전 불통, 캠프 4에서 베이스 캠프로 철수 시 하호성, 신동섬
대원의 2시간여의 무전불통 등은 베이스 캠프의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캠프 4에서의 공격 여부를
앞둔 긴박했던 순간들, 그리고 공격명령이 떨어지고 2시간 공격 후 폭설에
의한 시계 불량으로 정상을 눈앞에 두고 전원 베이스 캠프로의 철수
지시로 돌변, 역시 히말라야의 큰 산은 우리에게 인내와 시련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지겹게 내리던
눈도 개이고 지금 엄대장 이하 전 대원은 베이스 캠프에서 재도전을
위한 각오를 다지며, 각자의 몸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등정의 어려움을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오로지 성공을 위한
역경은 처음부터 각오했으나, 대원들의 사투에 분함과 엄대장의 내색않고
주위를 배려하는 상황판단과 카리스마는 나도 몰래 홀로 지난 밤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휴식 속에 충전을 하며,
엄대장의 출정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발 전 뜻하지 않은
허리 디스크로 본대와 떨어져 모든 고뇌를 감수하며 홀로 카트만두에서
치료하는 조동식 원정대장의 몫을 생각하며…간단히 베이스 캠프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가족들에겐 항상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며… 얄룽캉 베이스 캠프에서 지원조장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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