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9. 나물시장 (낮)
옆가게 여자가 나물 푸대들을 끌고 오다가 놀라서 본다. 미숙이 먼저 나와서 장사 준비를
하고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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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미숙아!
미숙 (말없이 일만 한다)
옆집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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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머리 쥐어뜯고 싸운 후 더 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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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니, 시골루 살러 간다구 간 애가 왜 도루 왔냐구? (은밀하게) 못 만났구
나, 그 남자?
미숙 아니, 만났어.
옆집 그런데? 만났는데, 왜 그냥 왔어?
미숙 (옅게 웃는다)
옆집 애 가졌다니까, 뭐라대? 설마 지자식 아니라구 잡아떼지는 않았겠지?
미숙 그새 다른 여자가 생겼더라.
옆집 벼락맞을 인간! 그래서 어떡하구 왔어?
미숙 …언니, 나 돈 놔줄데 좀 알아봐 주라!
옆집 딴소리 하지 말구, 하던 말부터 끝내! 그래서 너 어떡하구 왔냐니까?
미숙 한 돈 천 되는데, 이자는 작게 줘두 확실한데 어디 없을까?
옆집 애 가졌단 말은 해보지두 못 하구 왔구나, 너?
미숙 ….
옆집 아니구 등신!…죽어라, 죽어!
옆집 여자가 더 분하다. 미숙, 더 열심히 무거운 푸대도 들어서 옮기고 마음을 비운 것 같
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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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얘가, 팔자가 어떻게 될려구 그러니, 너?
S#10. 바 정도
시연을 앞에 두고 앉아서 깊은 눈빛으로 고백을 하는 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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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난 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말 싫어. 그런데 너하구의 만남은 운명적이란
말 빼고는 도저히 설명을 못하겠어….
시연 ?
영규 너를 처음 본 날, 아, 그때의 전율감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져! 넌 담장에
앉아서 지나가는 나를 불렀지. 배낭을 좀 받아 달라구. 순간적이었지만 너
하구 내 눈이 부딪쳤지… 그때, 정말 이상했었어… 뭔가, 날카로운 섬광
같은게 내 심장의 깊은 곳을 팍! 찔러내는 그런 느낌을 받았지. 아마 전기
충격 같은 그런 거 였을 거야!
시연 ?
영규 집에 와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왜 그랬을까? 그 날카로운 통증은 뭐였
을까? …나한테는 미스테리였어….
시연 (관심 보인다)
영규 처음엔 네가 이쁜 애라서 그랬나부다 했었어… 그런데 단순히 그것만은 아
니였어.
시연 ?
영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던 쌍둥이를
만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시연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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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시연의 눈을 들여다보며 슬프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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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시연아… 너하구 같아. 나두 엄마가 둘이야….
시연 (놀라서 본다) ?
영규 다른 건 넌 엄마랑 같이 살지만 난, 낳아준 엄마의 얼굴두 모른다는 거
야…. (너무나 괴롭다)
시연 정말이니?
영규 그래… 내가 세 살때 헤어졌어.
시연 느 엄마는 어떤 여자였다니?
영규 그 여자… 그 가엾은 여자는 우리집 가정부였대… 말하자면 난 옛날 같으
면 노비의 자식이야….
영규 난 네가 어떤 기분으루 지금까지 살아왔는 지 알아….
시연 (생각해본다)
영규 넌 아마, 늘 너 자신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 같았을 거야….
시연 (그랬어…)
영규 …오라는 말두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파티장에 불쑥 들어선 느낌…모두
들 웃고 떠들다가 너를 보고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리는 거야… 너 혼
자, 앉을 자리두 못 찾구 어색해 서있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총… 쟤는
대체 뭐야? 갑자기 끼어 들어와서 우리의 안락한 행복을 깨뜨리는 저 미운
애는 뭐냐?
영규, 시연의 감정변화를 계산해 가며 이야기 한다. 시연, 영규의 계산대로 그 일을 듣고 앉
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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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늘 춥구, 뒤통수가 간지럽지, 쟤, 첩자식이래, 쟤 엄마 세컨드래… 등뒤에
서 느껴지는 손가락질… 수근거림… 축복받지 못하고, 아니, 축복은 커녕
누군가의 저주 속에 태어났다는 그 더러운 느낌!
시연 …그만해.
영규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태어났다는 그 불행감! 한남자의 바람기로 인해
생겨난, 아무 가치없는 생명이라는 느낌! 아버지라는 남자를 곤란하게 하
고 그의 법적 아내를 불행에 빠뜨리고…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너를 괴롭
히는 것은 네가 친엄마의 일생을 망쳐버렸다는 거야! 나만 아니면, 나만
생겨나지 않았으면 저 착하구 가여운 여자를 이렇게 살지않아두 좋았는데,
정말 그랬는데! 나 때문에 온통 망가지고 찢겨진 사랑하는 엄마의 일생!!
시연 야! 그만 하라잖아!
시연, 화를 내며 영규를 쏘아본다. 그러다가 탁자에 머리를 묻는다. 영규, 시연의 자리로 건
너가 나란히 앉는다.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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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허락해 줘. 너한테 감동을 되찾아주고 싶어, 너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바다를 깨뜨리는 하나의 돌맹이가 되구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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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 말없이 얼굴 들고 영규를 본다. 영규가 시연의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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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 (눈물 고인다)
영규, 시연을 한없이 가여워하는 눈으로 바라봐준다. 시연 영규의 어깨에 기댄다. 영규, 절
반은 성공했다는 기분을 시연 얼굴너머로 혼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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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 미숙방 (밤)
미숙을 찾아온 옆가게 여자, 같이 맥주, 땅콩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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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그 남자한테 알려! 너 혼자 어떻게 키울려구 그래?
미숙 어림없어! 나 혼자 키울 수 있어!
옆집 잔소리 말구 알려! 묘한 게 너 남자들이다! 자기 자식 가졌다면 나갔던 남
자두 들어온다, 너?
미숙 (희망 느끼나…) 애 핑계대구 거지같이 사정하구 싶지 않아.
옆집 야, 이판에 너 자존심 찾냐? 그런 게 아냐! 진짜 자존심이 뭔줄 알아? 네
새끼한테 아빠 찾아 주는 게 자존심인 거야, 야, 괜히 꾸물럭대다가 시간
놓치지 말구 빨리 알려! 그 여자하구 더 깊어지기 전에 알리라니까!
옆집 니가 못하면 내가 해줄게. 전화번호 대!
미숙 관둬! 언니!
옆집 그럼 어떡할려구 그래? 정말 너 낳아서 기를래?
미숙 병원앞까지 두 번이나 갔었어, 근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구. 난 못 해.
옆집 어떻게 기른다는 거야? 너? 응? 처녀몸에 아빠 없는 애 기르기가 쉬울 것
같아?
미숙 까짓 거 되는 대루 기르지 뭐!
옆집 (빼앗는다) 미숙아, 너 이러지 마!
미숙 언니… 제발 꿈이면 좋겠어… 자다가 꾼 나쁜 꿈이면 좋겠어….
옆집 (가엾게 본다)
미숙 죽어버리구 싶어, 그러면 모든 게 다 깨끗이 해결되잖아. 죽을까봐…나….
(엎드려 운다)
옆집 그러게 내 뭐라던? 연애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구 내가 말했잖아!
미숙 (흐느낀다)
옆집 이 기집애야! 그 새끼 번호 대! 빨리!
S#12. 공중전화
영규 여보세요? 아, 상옥이냐? 나다, 작은오빠! …나? 잘지내구 있다. 모든 게
다 순조롭게 잘나가고 있다! … 집에 별일 없지?… 민규? 아니, 못 만났는
데?…민규가 왜 서울에 왔어? (하다가 점점 몸이 기울어진다) 뭐? 뭐가 어
떻다구…?
영규 (몇 마디 더 듣다가) 이 새끼들을 진짜, 내가…!
S#13. 민규방
상옥 제발 모른 척 해, 응? 아부지두 겨우 맘 잡으신 눈치니까 그리구 작은오
빠, 당분간은 집에 내려올 생각 말아!… 동식이 걔, 진짜 죽을 뻔 했대…
아부지는 내가 꽉 잡구 있을테니까, 오빠는 민규나 가끔 들여다 봐! 알았
지? 올켄지 누군지 그 여자가 민규 밥이나 제대루 먹이는지, 굶기는지, 들
여다 봐주란 말야!
S#14. 사무실 외경 (낮)
S#15. 자료실
동규, 자료 찾고있는데 수경이 와서 옆에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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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오늘 저녁, 약속있어요?
동규 없어.
수경 그럼 나 맛있는 거 좀 사줘요!
동규 ….
수경 밥 하기 싫어, 오늘 나.
동규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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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 때문에 아직도 기분이 풀어지지 않는 동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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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6. 사무실
수경 …민규씨? 나에요, 형수님!! (웃고) 저, 오늘 형이랑 저녁먹구 들어 갈거
거든요? 저녁 혼자 해결하시라구요! 할 수 있죠? 그래요, 그럼 이따 만나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