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대본 제13회)

제 13 회 그대 그리고 나

S#1. 바다 (새벽)

물새가 나는 새벽 바다 풍경. 조업중인 어선들.

S#2. 포구

포구로 들어오는 재천의 배. 민규가 밝은 얼굴로 로프를 던져 배를 댄다. 부지런한 바다 사람들이 벌써 포구 곳곳에서 일들 하고 있다. 어시장도 왁 자하고.

S#3. 새벽시장 (새벽)

새벽안개가 엷게 깔린 도매시장 풍경 (가락동이나 노량진 혹은 남대문) 차 량들이 내뿜는 열, 소음. 상하차중인 물건들과 입김을 내뿜으며 일하는 사 람들. 호루라기 소리들 속에 손수레들 위태롭게 오가고, 밥쟁반을 든 식당 종업원들… 깡통 화롯불 주변에서 커피 한 잔씩을 하거나 돈계산, 혹은 웃 는 시장의 상인들. 트롯트 가요도 들리고 멱살을 쥐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 다. 오토바이, 소형트럭, 자전거, 손수레 등등. 치열한 삶의 현장. 그 사이를 시연을 데리고 누비며 다니는 영규. 바닥이 진창이면 여왕 모시듯 시연을 잠깐 안아 옮겨도 주고. 무거운 손수레를 뒤에서 몰래 같이 밀어주기도 하 고. 뭔가 과일이라도 하나 쓸쩍한 영규, 시연에게 몰래 던져주기도 하고. 길 이 막힌 곳에서는 잠깐 장난스레 교통정리도 해주는 영규. 시연, 웃는다. 생 기를 찾은 얼굴.

S#4. 그 시장 어느 한적한 코너

두 사람, 커피 행상에게서 산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서 있다. 영규의 웃옷 을 걸쳐입은 시연.


영규            아직두 심심해?
시연            아니, 재미있어!
영규            근데 너 몇 살인데 나한테 꼬박꼬박 반말이냐?
시연            그쪽은 서른 살 넘었어? 안 넘었지?
영규            …응.
시연            그럼 우리 그냥  야자 트자.  존대말 하구 힘들구  귀찮잖    
                 아….

영규, 웃고는 호주머니에서 키 홀더 꺼내준다.


영규            이거 돌려줄게.
시연            (받아서 보며) 근데 이게 어디서 났어?
영규            너, 그때 담에서 뛰어 내리면서 떨어뜨린 거야.
시연            … 그럼 자기가 그때 그 군인이야?
영규            (기분 나빠서) 그럼 날 못 알아봤단 말야?
시연            응.
영규            나아 참! 나를… 못 알아봤다구?
시연            미안해! (웃는다)

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영규            (당황) 나 전화 좀 받을게.

영규, 급하게 거리를 좀 둔다.


영규            여보세요 어, 동욱이냐? 나 형이다,  왜? (얼른 좀더 떨어
                지며) 아, 이렇게 감이 나쁘지? …  잠깐만 기다려! (하고
                는 멀리 가서, 얼른  어투 바꿔서) 야,  느 엄마가 찾으시
                냐? …미안해. 차가  갑자기 좀 이상하더라구!  그래서 내 
                친구한테 정비 좀 받느라구… 공짜루 받자니까 임마 밤시
                간 밖에 더 있냐? 꼬박  밤새워서 고쳤다 임마!… 아무튼 
                니가 말씀 좀  잘 드려줘…  도련님, 부탁합니다!… 그래, 
                몇 시까지? … 오케이, 알았어!

영규, 비굴할 만큼 하고 후유하고 얼른 전화 끊는다.


영규            너 해장국 먹어볼래?

S#5. 포구 일각

김 오르는 해장국을 앞에 둔 부자. 민규는 국밥을 먹고 재천은 반주부터 한다.


재천            아부지 혼자 해두 되는데. 뭐하러 나왔어?
민규            (밥만 먹는다)
재천            (소주잔 내밀며) 한 잔 할래?
민규            싫어요
재천            임마, 한 잔 해. 몸이 풀릴 거다.

재천, 한 잔 따라준다. 민규, 받아서 얼굴 돌리고 마신다. 그리고 아버지에 게 한 잔을 따라드린다.

재천 엄마… 잊어라….
민규 ?
재천 세상에는 인연이 아닌 사람들이 많아. 느 엄마하구 나두,
그런 사람들이야.
민규 엄마… 어디 사는 줄 아세요? (먹으며)
재천 뭐, 서울 어디서 산다는 말은 들었다.
민규 만나보구 싶진 않으세요?
재천 남의 사람 된 여자, 만나서 뭐 하겠냐? 그저 잘 살기 바랠
뿐이지.
민규 ….
재천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겠지만, 그런 생각은 버려.
아부지하구 남이면 너하구두 남인 거야.

재천, 소주만 마신다.

재천 아부지는 날마다 그물 쳐놓구 혼자비는 게 있다…. 나는
비록 팔자 사납게 살지만 내 자식들은 순탄하게 살게 해
줍시오… 빈다.

하고는 멀리 바다만 보고 있다.

민규 … 아빠.
재천 응?
민규 식어요.
재천 어, 그래

재천, 민규가 밀어주는 밥을 끌어당긴다.

재천 … 아부지 비는 대루… 그렇게 될 거야!

하고 밥 뜨기 시작하는데 친구가 돈과 전표 들고 온다.

친구 옛다! 너 오늘 일진 좋았나 부다? (돈 제법 많이 준다)
재천 (받아서 찔러 넣는다)
친구 안 세봐? 야, 부자간에두 세어주구 세어받구 하는 게 돈이
야!
재천 해장 한 잔 해라.
친구 한 잔 줘.

술 한잔 주고받고 한다.

친구 민규야, 백사장이 너 아주 칭찬하더라. 열심히 배워라. 배
워서 큰형더라 나중에 카센타 하나 내주라구 해서 그걸루
벌어먹구 살어.
민규 (먹기만 한다)
친구 돈없구 빽없는 사람은 그저 기술이 최고다! 돈이야 있다가
두 없어지구 빽이야 끈 떨어지면 그날루 끝이지만, 기술은
평생을 제 것 이거든!
민규 (다 먹었다) 저 먼저 갈께요. 아빠.
친구 다 먹었냐, 그새?
민규 네… (꾸벅 인사하고 간다)

친구와 재천, 민규 가는 것 본다.

친구 저놈은 갈수록 말수가 준다? 쟤 저러다 입 천장에 거미줄
스는 거 아니냐?
재천 (소주 한 잔 꼴깍) 저눔이 요즘 왜 그러는지 몰라.
친구 왜?
재천 갑자기 즈 엄마 얘길 묻구 그래.
친구 …야, 철이 철 아니냐… 추워지니까 나두 그냥 밤이면 그
딱장배 마누라두 생각나구 그런다, 요새. 늙은 나두 그런
데 저눔들이야 오죽해?
재천 에이, 속상해서 정말.
친구 달래라. 그저, 달래 맛있는 것두 사주구 옷두 사줘가며 달
래. 상옥이 년두 거 늘상 보면 키는 껑충헌 게 짠~ 하더
라. 옷이라두 한 벌씩 사줘가며 달래.
재천 ….
친구 야, 재천아. 그런데 그 교수님이 정말루 혼자 사냐?
재천 누구?
친구 아, 동규 색시네 이몬 지 하는 그 여자? 혼자라며?
재천 아주머니, 여기 더운 국물 좀 주슈!

S#6. 고수부지 정도 (아침)

시연, 영규 나란히 앉아있다.

영규 이 시간에 보니까 한강두 꽤 이쁘구나….
시연 ….
영규 춥니?

영규, 제 옷을 시연에게 걸쳐준다.

영규 내가 널 처음 봤을 때, 넌 담 넘어 도망가던 중이었어. 두
번째는 병원에 실려가더구나. 그때 어디 아팠었니?
시연 그때 봤구나… 밥 먹기 귀찮아서 한 일주일 안 먹었을 뿐
이야….
영규 밥먹기두 귀찮구, 살기두 싫구, 너 큰일 났구나?
시연 ….
영규 난 널 아직 잘 모르지만 너한테는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가 필요한 것 같다. 너만 좋다면 내가 그 역할을 해줄 수
두 있어….
시연 고마워….
영규 네 문제는 도대체 뭐니?
시연 내 문제… 그건 내가 감동을 못한다는 거야. 네가 금방 이
시간에 보니까 한강두 꽤 이쁘다 그랬지… 근데 난 이쁜
줄을 전혀 몰라.
영규 왜? 이쁘잖니?
시연 난, 그냥 이래… 물 참 되게 많다… 그게 내 느낌이야….
영규 ….
시연 장미를 보면 빨갛구나… 안개꽃 보면 하얗구나… 그게 전
부야… 그 이상은 아무것두 느낄 수 없어… 심각하지?
영규 연애 해본 적 있니? 너 그 병 연애하면 낫는다?
시연 그거 안될 거야. 난 남자랑두 자봤어… 그런데 연애는 안
되드라.
영규 (내심 놀란다) 느이 집에 혹시 문제있는 거 아니냐? 집
이야기 좀 해봐.
시연 하구싶진 않은데 네가 궁금하다면 해줄게. 나는 아버지가
없어… 아니 아버지는 있는데 엄마가 없다는 게 맞겠다….
영규 ?
시연 엄마는 동거인으루 나랑 살아. 아버지는 다른 집에서 다른
여자하구 살지. 난 법적으론 그 여자 딸이야. 우리 아버지
가 누군가는 말하기 싫어… 네가 혹시 알지두 모르니까.
영규 (내심 쾌재)
시연 우리 엄마는 저녁마다 실크가운을 입고 누군가를 기다
려… 지금 마흔 다섯 살인데 스물 한 살부터 그랬대. 기다
리는 사람은 한 달에 한 번두 오구 두 달에 한 번두 오구
그래… 언젠가는 6개월만에 온 적두 있었어.
영규 ...!
시연 난, 정말루 느껴보구 싶어… 이 강무을 나두 너처럼 아름
다운 것으로 느껴보구 싶어….

영규, 시연이 점점 어려워간다.

S#7. 시연 집 앞 (아침)

시연 집 앞에 멈춘 영규의 차.

영규 니네 집에서 난리 났겠다. 밤내 너 찾느라구… 근데, 나에
대해 아무것두 궁금하지 않아?
시연 (돌아본다) 이름이 뭐야?
영규 박영규.
시연 난 시연이야, 신시연….

하고 차에서 내린다.

영규 이름 이쁘다. 이건 내 호출기 넘버. (적어서 준다) 핸드폰
은 동생이 가끔 갖구나가 버려서 말야….
시연 (받아서 본다)
영규 가끔 답답하거나 누구한테 뭐든지 말하구 싶으면 나 찾아.
시연 고마워.

시연 그러고 서있는데, 안에서 감시 카메라로 봤는 지 문이 열린다.

시연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었어.

시연, 웃고 안으로 사라진다. 영규, 강한 호기심으로 시연을 보고 있다. 그
러다가 다시 한 번 핸드폰이 울린다. 영규, 기겁하여 전화듣는다.

영규 여보세요? 아, 사모님! 예, 다왔습니다. 바루 댁앞입니다
요, 네! 네! 네!

S#8. 수경 주방

수경, 칼라 요리책 펴놓고 두부찌게 끓이고 있다. 두부를 예쁘게 잘라서 찌
개에 넣는데, 동규가 뒤에서 안는다.

동규 뭐하는 거야?

수경, 조용히 팔을 풀어내려고 한다. 동규, 그러나 더 안는다.

동규 야, 맛있겠는데?
수경 절루 가요. (밀어낸다)
동규 아직두 화 안 풀렸어?
수경 … (두부를 넣고 불을 줄인다)

동규, 수경을 돌려서 안는다.

동규 …수경아, 변화를 인정하구 받아들여. 넌 이제 결혼한 여
자야!
수경 난 하나두 안 달라졌어! 달라지기두 싫구!
동규 이미 달라졌잖아?
수경 … 뭐가 달라졌다는 거야?
동규 결혼전 같으면 너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모양내구 출근하
면 됐지만 인제 너 나 위해서 찌개 끓여야 하잖아, 이렇
게.
수경 … 안 끓이구 동규씨, 빵 줄 수두 있어! (하다가) 나, 결
혼한 여잔 거 알아! 자꾸 그렇게 강조 안 해두 안다구! 근
데, 그게 내 일하구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냐구?

수경, 동규 휙 털어낸다.

동규 우선 순위라는 게 있잖아, 인제 우리한테 일이 먼저 일수
는 없어. 그건 너만 아니구, 나두 마찬가지야!
수경 동규씨 말은 그럼 뭐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
대리처럼 회사에선 집안일 걱정, 집에선 회사일 걱정, 그
렇게 살란 말야?
동규 여유를 좀 가지라는 거지… 지금까지 단거리 선수처럼 뛰
었다면 이제부턴 마라톤선수처럼 뛰어야 하는 거야. 그렇
지 않으면 너 스스로 지쳐서 쓰러져, 알았지? 너 쓰러지면
나 죽어…!

동규, 수경을 다시 안으려 든다.

수경 놔, 이거 찌개 끓어 넘잖아!

HOME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