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그대 그리고 나

S#1. 부대 근처 마을 풍경 (아침)

S#2. 미숙 방 (아침)
영규가 휘파람을 불면서 거울 보며 머리를 만지고 있다. 귀대할 준비다. 미 숙이 등 뒤에서 가만히 보고 서 있다.

영규            (이리저리 재보며 코 주변 눌러 기름 짜고, 뒤로  손 내민
                다)
미숙, 조용히 휴지 뜯어주고 영규는 익숙하게 받아 눌러 닦고.

영규            (또 짜며) 아야야야야야.
미숙            나 가게 내놨어.
영규            왜? (모르고)
미숙            방두 뺄 거야.
영규            … 너 적금 찾았구나! 맞지! 그래서 가게 넓힐려구?
미숙            아니.
영규            그럼 왜 가게를 빼냐? 장사 잘 된다면서?
미숙            오빠 제대하잖아.
영규            나 제대하구 너 방 빼는 거 하구 무슨 상관인데?
미숙            상관이 없단 말야?
영규            글쎄… 난 모르겠다?
미숙            …모른다니 가르쳐 줄게. 오빠 따라갈려구!
영규            (본다)
미숙            난, 오빠 세상 끝까지라두 따라 갈 거야.
영규            …맘대루 해라! (짐짓  가볍게 대꾸하고  다시 거울 보는 
                척)
미숙            무슨 뜻이야 그거?
영규            한국말 못 알아들어? 니 맘대루 하라구!
미숙            그래! 내 맘대루 할거야! 오빠가 혼자  어디루 내빼버리면 
                난 오빠네 시골 가서 오빠네 아버님 모시구 살 거니까.
영규, 미숙을 휙 잡아 앉힌다. 자기도 앉고.

영규            … (정색하며) 너 우리  시골에 왔을 때  내가 뭐라구 했
                어? 끈질긴 여자, 딱 질색이라구 했어, 안했어?
미숙            오빠가 그런 여자 싫어하듯이 나두 책임 못 지는 남자 싫
                어!
영규            (요거 봐라?, 전열정비 해야겠다)
미숙            오빠, 나하구 결혼할 마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영규            없어.
미숙            사랑한다구 했잖아.
영규            거짓말이야.
미숙            사랑한다구 말한 게 다 거짓말이라구?
영규            순간순간은 진실일 수두 있었겠지 
미숙, 눈을 똑바로 뜨고 쏘아본다.

미숙            …도둑놈… 그게 말이 된다구 생각해?
영규            너, 나 아는구나? 그래. 나, 도둑놈이구 나쁜 놈이야! 그러
                니 미숙아… 장사나 잘 하구 가만히 있어. 나 너하구 절대 
                결혼 안 해.
미숙            (대강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하다. 떨며 서있다)
영규            그리구, 내가 언제 너하구 결혼 한댔어? 나 그런  말 한적 
                없어?… 있었으면 있었다구 말해봐!  언제, 어디서, 몇 시
                에, 내가, 너하구 결혼 한댔어?
미숙            그럼 나 말구, 누구랑 결혼 할건데?
영규            아직은 모르지… 모르지만 되게 재수 없는 여잘 테지!
영규, 일어나 나갈 준비한다.

영규            미숙아, 난 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그래서 
                너랑은 안돼.
미숙            누군데?
영규            나!… 난 내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내  자신을 너
                무 사랑하기 때문에 남한테까지 나눠줄 사랑이 없어.
영규, 나가며 시계 보고.

영규            다시 한번 좋게 말할  때 들어라. 가게구  방이구, 가만히 
                지키구 살아!…이 바보야. (어쩔 수 없는 연민 담고)
미숙            나는 앞으루 어떻게 되는 거야?
영규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내가 앞으루 어떻게 될지두 모
                르는데?
영규, 나간다. 미숙, 영규 보내고 나서야 눈에 눈물이 고인다. 떨고 서있다.

S#3. 동규 하숙방
동규, 출근을 하려고 넥타이를 매다가 문득 수경에게 삐삐를 쳐본다. 흘러 나오는 시그널 음악.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동규, 호출기가 그대로 인 것에 약간 놀란다.

S#4. 수경방
우울한 얼굴로 출근 준비한다. 삐삐가 온다. 수경, 삐삐를 들고 확인을 해본 다. 핫 라인이므로 다른 데는 올 데가 없는데?

수경            ?
수경, 조용히 전화를 들어 확인해 본다.


동규            …윤수경씨, 점심시간에 잠깐만 나와 주셨으면 합니다. 장
                소는 거기루. 내키지  않더라두 잠깐만  나와줘요. 저는… 
                박동규입니다.
수경            …
S#5. 홍여사 안방
홍여사, 편하게 앉아 쟁반…에 밥, 총각김치 갖다 놓고 먹으며 강연 준비한 다.

홍여사          여러분, 인생은 짧은 거예요!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하
                구 입 맞추구 보듬구, 뒹굴구만 살아두  눈 깜짝, 짧은 게 
                인생이라구요! …스럽긴 하지만  귀에 쏙 들어올  얘기야! 
                좋았어, 써먹자!
노트 하다가 문득 재천 생각을 한다. 재천의 얼굴이 휙 떠오른다.

홍여사          어머, 내가 왜 이러지, 엊저녁부터? 왜 자꾸 그 상스런 아
                저씨가 떠오르는 거야?
홍여사, 밥숟가락 크게 떠먹으며 라디오를 켠다. 쓸쓸한 가을 음악이 흘러 나온다. 홍여사, 눈 감고 음악을 감상하는데 또 떠오르는 재천의 얼굴. 홍여 사, 깜짝 놀라서 눈을 뜬다. 재천의 환상을 쫓아내기라두 할 듯 두손을 들 고 얼굴 앞을 내젓는다.

홍여사          …어머나, 내가 왜 이러니, 왜? 병 났나봐, 어떡해?
홍여사, 진짜 걱정스럽다. 음악을 탁 끄고 전화를 건다.

홍여사          …여보세요, 어머, 형부세요? 언니 좀 어떠신가 해서요?
S#6. 수경 안방
수경모, 아직 자리에 있다.

수경부          괜찮아요… 이 사람은 아무리 골치  아픈 일이 있다 해도 
                하룻밤 내 팔베개 하구 자구 나면 깨끗해집니다…  네, 바
                꿔드릴까요? 여보, 홍여사.
수경모는 수경부의 농담에도 모른 척 한다.

수경모          싫어요
수경부          홍여사, 이 사람이 싫답니다. 아마 내가 팔베개 얘길 해서 
                무안한가 봅니다. 하하! 나중에 걸겠대요.  네에. 그러시죠 
                (끊는다)
수경부가 수경모를 일으켜 앉힌다.

수경부          당신, 아침 안 할거예요?
수경모          하루 아침, 안 잡수면 큰일 나요?
수경부          그래요, 큰일 나요! 자, 엄살 그만 떨구 일어나요!
수경모          (일어나 앉아) 여보… 허무해요…
수경부          아침에 난 북어국하구, 완두콩 넣은 밥을 먹구 싶어요.
수경모          수경이 다섯 살 때 한글 줄줄 읽을 때, 난 쟤가 천잰줄 알
                았어요.
수경부          내가 아니라구, 그냥 보통 아이라구 그때 말했어요.
수경모          중학교 3등 들어갔을 땐, 서울대학두  3등으로 들어갈 줄 
                알았어요.
수경부          내가 서울대학은 힘들거라구 그때 분명 말했어요
수경모          수경이 덕분에 정말 비행기 타구  하와이 관광 가게 될걸
                루 알았어요.
수경부, 아내를 돌아본다.

수경부          여보, 그건 할 수 있을 거요. 그건 아직 희망 있잖아요!
S#7. 사무실 (낮)
변함없이 서로 각자의 일을 모른 척 한다.

S#8. 카페 (낮)
동규가 먼저 와서 밖을 내다보고 앉아있다. 수경이 들어온다. 종업원이 반 색하며 아는 척을 해온다.

종업원          어서 오세요! 저쪽, 그 자리에서 기다리세요!
수경            (억지로 미소한다. 다가간다)
동규가 고개를 돌리고 옆모습을 보인다. 그 얼굴을 보자 수경, 울컥하는 기 분이다. 동규, 고개를 돌린다. 두 사람이 서로 본다. 얼른 서로 시선들을 거 둔다.


동규            고마워, 나와줘서
수경            (앉는다)
종업원          (물잔 갖다주며) 너무 안 오셔서 두분, 인제 다른 집 가시
                나 부다 했어요!
동규            네. (애매하게 웃어주고)
종업원          왜 통 안 오셨어요?
수경            바빠서요. (미소)
종업원          또, 역시 정식 두 개? 스프는 야채  스프 하나, 크림 스프 
                하나?
수경            우선 커피 주세요.
동규            어차피 밥 먹어야 하잖아?
수경            … 커피 마실래요
동규            커피 두 잔 주세요
종업원          (얼른 눈치 채고) 네, 감사합니다. (사라져 준다)
두 사람, 잠시 그러고 있다. 수경은 눈을 약간 내리 깐 채이고. 동규도 시선 을 수경에게 못 맞춘다.

동규            장소를 바꿀 걸 그랬어… 미안해.
수경            …
동규            삐삐가 아직 남아 있는 줄 몰랐어.
수경            할말 있다면서요?
동규            ... (수경을 건네다 본다) 아버지 일  사과할게. 거기 가신 
                줄은 정말 몰랐어… 사과할게. 미안해.  뭐든 깊이 생각하
                지 않으시구… 그런 분이셔…
수경            ...동규씨 추억 때문에 오래 힘들까봐 겁났었어요… 그런데 
                그 걱정을 사라지게 해주셨어요… 감사하다구 해야겠죠?
동규            … (아비지가 어쨌을까 짐작한다)
수경            결혼하신다구요? 축하합니다…
커피가 온다. 말없이 얼른 커피를 두고 가버리는 눈치 빠른 종업원.


HOME
NEXT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