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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민규동 감독 "소년미와 광기 오가는 김성철의 매력, 8부작 시리즈까지 염두에 둬" [영화人]

기사입력2025-04-29 17:14
민규동 감독은 배우 김성철을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뮤지컬 무대 위에서였다. "처음엔 수줍고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무대에 오르니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더군요. 카리스마가 정말 엄청났어요. '이 사람 안에 우리가 보지 못한 광기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파과' 민규동 감독 "소년미와 광기 오가는 김성철의 매력, 8부작 시리즈까지 염두에 둬" [영화人]

'파과'에서 김성철이 연기한 투우는 원작 소설에서도 많은 설명이 생략된 인물이다. 등장 분량도 많지 않다. "왜 조각을 찾아왔는지도, 둘이 어떤 관계였는지도 불분명해요. 실제로 조각과 마주치는 장면도 세 번밖에 안 나옵니다. 그런데 그 안에 거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걸 파고들고 싶었죠."

민 감독은 그 과정에서 아예 투우를 중심으로 한 8부작 시리즈 트리트먼트까지 작성했다. "1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상상해서 썼어요. 소년원에 갔다가 강원도 할머니 집에 입양됐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미국으로 다시 입양되고, 거기서 차별과 학대를 당하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고, 누군가를 제압한 후 불을 지릅니다. 그 안에서 '나는 이 사람을 만나야 인생이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강박을 가진 아이로 설정했어요."

그는 투우의 이러한 심리를 "자기 강박을 실천에 옮기는 인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생각해요.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선 내가 최고의, 가장 무시무시한 동급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날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민 감독이 이토록 집요하게 투우라는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의 기억과도 맞닿아 있었다. "대학 시절, 하숙집에 살았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와보니 하숙집 아주머니가 하숙집 아저씨를 죽이고 본인도 목을 맨 사건을 목격했어요. 제가 처음 본 시신이었죠. 그 옆에 그 부부의 여섯 살 아들이 있었어요. 경찰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 아이도 본 거예요. 그때 생각했어요. 저 아이는 어떤 정신 세계를 갖고 살아갈까."

이런 경험은 투우라는 인물의 정서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투우는 친절함을 믿지 않아요. 거짓된 관계는 거부해요. 약속은 '개나 줘버려'라는 심정이죠. 하지만 동시에 그를 구원해준 어떤 존재가 있다는 믿음도 있어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인물이에요."

그 구원의 대상이 바로 조각이다. 투우에게 조각은 한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존재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조각은 아버지보다 더 강해지라고 칼을 쥐여주고, 신념을 심어준 사람이에요. 하지만 결국 버림받았다는 감정이 남아 있죠. 그 배신감, 외로움 같은 것들을 무기로 삼고 살아가는 인물이 투우예요."

'파과' 민규동 감독 "소년미와 광기 오가는 김성철의 매력, 8부작 시리즈까지 염두에 둬" [영화人]

민 감독은 이러한 관계를 "사실상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배트맨은 정의라는 명분에 눌려 있고, 조커는 인정받고 싶다는 광기와 트라우마로 무장한 인물이죠. 투우와 조각도 그런 관계로 봤어요. 다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복수가 아니라 화해에 있어요. 관객이 마지막 순간에 투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조각을 포함한 모든 인물을 이해하게 되는 영화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실패하면 단지 무모하게 사람을 학대하고 죽인, 매우 비호감인 영화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정말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요."

이 인물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김성철의 존재는 결정적이었다. "이혜영 선배님이 작은 키는 아니에요. 그런데 188cm 넘는 건장한 남성이 붙으면 물리적으로 너무 불균형해 보일 수 있거든요. 성철 배우는 소년성과 광기를 동시에 가진 얼굴이에요. 과하지 않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이 인물을 정말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어요."

실제로 김성철은 감독이 구성한 투우의 모든 배경 에피소드를 전달받았다. "이혜영 선배님한테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과거 장면들을 일부러 안 보여줬어요. 하지만 성철이는 다르게 했죠. 그가 상상할 수 있도록 모든 에피소드를 보여줬어요. 실제 영화에 나오지 않더라도 그의 연기에 이 전사들이 다 배어 나올 수 있게끔 준비했어요."

감독은 영화 속 노래 가사도 직접 썼다. "촬영 전에부터 가사를 계속 썼어요. 조각에 대한 노래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성철이는 뮤지컬에서 노래를 잘하지만, 가수는 아니잖아요. 자기 노래에 대해 부끄러움이 있는 걸 알아서 조심스럽게 제안했죠."

그 노래의 콘셉트는 '구천에서 조각을 부르는 투우'였다. "유령의 입장에서 조각을 기억하는 노래예요. 그런 가사라면 성철이도 부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민 감독은 예전 작품에서도 노래 가사를 썼던 경험이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임수정이 남자와 춤출 때 나오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 가사도 제가 썼어요. 저작권료가 13년째 들어와요. 지난달에도 13,000원이 나왔어요(웃음)."

'파과' 민규동 감독 "소년미와 광기 오가는 김성철의 매력, 8부작 시리즈까지 염두에 둬" [영화人]

한때 그는 투우의 이야기를 단독 시리즈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시기는 좋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였어요. 만들어질 가능성을 찾기 위해 많은 상상을 했죠. 늑대인간에서 여성 투구, 기후위기 재앙 속에서의 생존 서사, '로건'과 '알랑 들롱', 틸다 스윈튼과 샤를리즈 테론이 나올 수 있는 이야기까지 상상했어요."

민규동 감독은 자신에게 장르 실험의 시간을 준 시대에 감사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앤티크도 원래 영화로 하려고 하다가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뮤지컬까지 가버렸잖아요. 그 사이에 제가 우리나라 꽃미남 배우들을 다 모아서 1년 반 만에 뮤지컬로 만들었거든요. 다음에는 좀 빨리, 조촐하게 만들 수 있게 시대가 허락해줬으면 좋겠어요."

'파과'는 조각의 이야기이지만, 투우의 서사는 그 이야기에 뜨겁고도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모든 서사가 응축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전사들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다 장착해두자고 했어요. 그리고 그걸 성철이한테 모두 보여줬죠." 민 감독은 그렇게 '파과'를, 그리고 투우를 설계했다.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로, 4월 30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NEW, 수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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