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과' 이혜영, 뼈를 부러뜨리며 만든 또 하나의 전설 "세상이 달라진 건지, 내가 스타가 된 건지" [영화人]

기사입력2025-04-28 15:43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파과'에서 모든 킬러들이 열광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전설의 킬러 '조각'을 연기한 이혜영을 만났다. '조각'은 40여 년간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방역하며 '대모님'이라 불리고 전설로 추앙받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한물간 취급을 받던 중 자신을 쫓는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등장으로 생애 마지막 방역을 준비하는 인물이다.

'파과' 이혜영, 뼈를 부러뜨리며 만든 또 하나의 전설 "세상이 달라진 건지, 내가 스타가 된 건지" [영화人]

데뷔 이래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계에서도 살아 있는 레전드로 불리는 이혜영. "60이 넘은 나이의 킬러라니. 소설을 먼저 읽었을 때, 남들에게 전설로 불리게 된 그녀의 힘, 그 원천이 뭘까 궁금했고, 그것이 매력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킬러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민규동 감독이 영화화한다고 해서 기대가 생겼다. 민 감독의 영화 중 '앤티크'를 좋아했는데, 그런 식의 판타지가 녹아들지 않을까 싶었다. 흔히 보는 액션영화의 무드는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엔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고, 너무 두려웠고, 촬영 내내 겁이 났다.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전까지는 홍상수 감독님이나 제가 익숙한 감독님들과 작업해왔기 때문에, 민규동 감독님의 프로세스가 굉장히 낯설고 타이트하게 느껴졌다. 콘티가 강철처럼 완벽했다. 그 안에서 기술적으로 연기하고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여러 주문이 쉽지 않아 늘 불안했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는 감독님이 다 생각이 있으셨구나 싶었다. 촬영 중 불평불만했던 제 자신이 미안해졌다"고 덧붙였다.

조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처음엔 전혀 저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 할머니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매력은 수수께끼 같은 힘이었다. 그 힘이 매력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늙은 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이라며 웃었다. "제가 상상력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원작을 보면 액션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민 감독님이 액션영화를 한다고 해서 솔직히 불안하고 겁이 났다. 액션을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소설을 읽은 분들은 액션이 없는 걸 아쉬워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감독님이 액션을 좀 더 넣을까요? 하더라"고 말했다.

액션 장면 촬영은 쉽지 않았다. "첫 촬영이 이태원에서였는데, 구덩이에 빠뜨리고 벌레를 뿌리는 장면이었다. 그때 갈비뼈가 나갔다. 넘어지면서 갑자기 숨을 못 쉬겠더라.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이태원 촬영이 2박 3일이었는데, 그 안에 다 찍어야만 했다. 몸이 망가지고 영화가 제대로 안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고독이 밀려왔고, 아팠지만 나 때문에 촬영이 멈출수 없으니 그 상태로 촬영을 감행했고 결국 갈비뼈가 하나 더 나갔다"고 고백했다. "조깅하는 것만 찍어도 정형외과에 가야 했다. 초엽이 제압하는 장면에서도 손목을 다치고, 뭘 해도 병원을 가야 했다. 내복 안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그 위에 붕대를 감아야 해서 연기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버티며, 감정과 기술 사이를 오가야 했던 그는 "민 감독님에게 배운 게 많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감정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으로 연기했다면, 민 감독님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움직여야 했고, 저는 제 방식대로 고집하던 올드한 배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 가면 다 세팅돼 있었고, 심지어 벽을 트는 것조차 저에게 맞춰줬다. 그런데 민 감독님은 달랐다. 콘티 안 읽어보고 나오셨냐며 현장에 모인 100명이 콘티를 읽고 그렇게 할거라고 약속을 하고 이 자리에 모인걸 선배님 혼자 안 보면 어떡하냐고 하셨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맛봤다"고 했다.

'파과' 이혜영, 뼈를 부러뜨리며 만든 또 하나의 전설 "세상이 달라진 건지, 내가 스타가 된 건지" [영화人]

해외 영화제 반응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존윅이나 테이큰 같은 영화들과 비교되기도 했고, 베를린에서는 분위기가 축제 같았다. 자막이 있어서 관객들이 자막을 통해 이해하는데, 그 덕에 긴장이 덜 됐다. 평이 좋아서 기세등등하게 돌아왔는데, 한국에서 개봉한다고 하니 굉장히 긴장됐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세상이 달라진 건지, 내가 스타가 된 건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액션 준비는 촉박했다. "'우리집'이라는 드라마를 끝내고 10일도 안 돼서 촬영에 들어갔다. 몸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감독님도 무술감독님도 노쇠한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힘을 원했다. 그래서 액션배우처럼 몸을 만드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부상 방지를 위해 훈련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은 들었다"고 말했다. "감정과 기술 사이, 그 경계를 어떻게 지킬까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액션은 사실 더 많이 찍었다. 결정적으로 무릎이 나간 장면은 아예 삭제돼서 너무 억울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이 굴러야 감정이 산다. 스턴트가 다섯 바퀴 구르면 나는 세 바퀴라도 굴러야 했다. 스턴트 배우도 에너지가 넘쳐서 내 뒷모습과 다르게 보이지 않으려 많이 노력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편집이 잘 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폐건물 촬영 당시 일화도 들려줬다. "저를 안 보이게 하려고 낮은 포복으로 반바퀴를 돌았는데, 리허설 때는 됐지만 촬영팀은 안 될 거라 생각했다. 스턴트도 머리가 나와서 썰매를 준비했을 정도였다"고 웃었다. "결국 또 정형외과를 갔다"고 했다. 손에 불이 붙었던 일도 있었다. "가스펌프를 쏘는데 순간 손에 불이 붙었다. 김강우에게 칼을 찍는 장면에서도 칼이 순간 휘었다. 그런 걸 찍고 나면 꿈에 나오고 자다 벌떡 깼다"고 말했다. "조각과는 전혀 다른 내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액션 장면을 찍고 난 뒤, 감독과 함께 오열했다는 그는 "왜 끝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상을 받고 싶었다. 이렇게 끝내버리면 어떡하나 싶었다. 남들은 끝났다고 신나했는데, 나는 진짜 보상을 받고 싶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저는 '쓸모'라는 단어보다 '쓸모없음'이라는 단어에 더 많은 생각을 했다. 쓸모있다는 것보다 쓸모없어진다는 것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민 감독과 함께 쓸모 있는 배우로 살아남으려면 감독님의 프로세스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틀이 짜여진 곳에서 연기하면서 내 창의력을 발휘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상실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는 여유,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조각의 캐릭터를 통해 나도 그런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 '파과'는 4월 30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NEW, 수필름
※ 이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 복제, 배포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