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관련 프로그램인데, 동물이 없다.
MC 4명 중 3명은 동물에 대해 잘 모르고, 심지어 그중 2명은 동물 애호가도 아니다. MBC 에브리원 <인간탐구 스토리, 와일드 썰>(이하 '와일드 썰', 연출 어랑경)에 대한 이야기다.
<와일드 썰>은 방송가 흥행 불패 아이템으로 알려진 '동물' 관련 프로그램으로, <동물의 왕국>, <동물농장>, <동물의 세계>와 같은 동물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동물 프로그램과는 어딘가 모양새가 다르다.
게다가 그간 동물 프로그램들에서 익히 사용해왔던 연출 방식, 즉 동물들의 신비한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거나, 동물들의 재롱과 감동으로 지친 현대인들을 힐링시키는 식의 연출을 <와일드 썰>은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와일드 썰>은 동물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답은 <와일드 썰>의 진행을 맡고 있는 네 명의 MC(김경식, 김태훈, 후지타 사유리, 박정윤)에 있다.
혹자는 이들 조합이 동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다소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것이 애완동물 수의사인 박정윤 원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그맨, 팝칼럼리스트, 방송인이자 작가라는 동물과는 무관한 직종의 종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 그리고 동물이라는 주제에 그 어떤 교집합도 없는 4인 4색의 <와일드 썰> MC들은 각기 다른 입장과 견해, 관점과 태도를 유지하며 동물이라는 주제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반박한다. 그야말로 '썰전(舌戰)'이다.
뿐만 아니라 MC들은 동물에 대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이들의 대화는 자연스레 동물에 빗댄 '인간'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이것이 <와일드 썰>의 부제가 '동물탐구'가 아닌 '인간탐구 스토리'인 이유이다.
최근 <와일드 썰>은 동물 프로그램에 대한 신선한 발상적 전환과 예능적 재미를 인정받아 MBC 채널에 정규 편성됐다. 그 가운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네 명의 MC들을 2명씩 그룹을 지어 인터뷰를 나눠봤다. 먼저 팝칼럼리스트 김태훈과 수의사 박정윤 원장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Q. 축하한다. 드디어 <와일드썰>이 MBC에 정규 편성이 됐다. 정규 편성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태훈 :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박정윤 원장을 괴롭힌 내 덕분 아닌가?(웃음) 아마도 이런 건 있을 거다. 하찮은 미물로 봤던 동물들을 통해 인간들의 삶을 본다는 게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까? 더불어 최근 동물 혐오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는데, 그런 것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도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정윤 : 동물 프로그램이 많이 있지만, 제대로 성공한 프로그램은 몇 개 없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아무리 신기한 동물을 갖다 놓고, 동물의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줘도 교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거다. 그 대표적인게 <애니멀즈>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방송에서 막상 동물을 찍거나 다루는건 굉장히 힘들다.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이때 너무 연출이 지나치면 웃기고 아무것도 안하면 지루하고 이런 식이다. 우리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이 프로가 재미있는 건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를 하는데, 동물이 안 나온다. 그게 되게 매력적이었다.
사람들은 동물을 바라보면서 '귀엽다, 기특하다, 재미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이런 모습들은 동물에게서나 사람에게서나 큰 차이가 없다. 어찌보면 인간도 동물인데, 사람들은 항상 동물과 사람을 구별한다. 그러다보니 동물을 예뻐하는 사람들조차 동물을 대할 때 인간보다 '하찮다', '생각이 짧을거다' 이런 생각을 하는거다. 동물과 인간은 그냥 다를 뿐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은 <와일드 썰>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태훈 : 동물을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신기한 것'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던 것 같다. 동물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사람 이야기다.
Q. 기존의 동물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정말 많은 것 같다.
태훈 : 기존의 동물 프로그램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동물을 대상화 시킨다는 것이다. 동물을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부속물 정도로 생각할 뿐, 하나의 '생명'이라는 존중이 별로 없다. 그래서 동물이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동물을 통해 인간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프로그램에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일거다.
정윤 : 나 역시 처음에는 이 프로그램의 출연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나는 동물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일럿 촬영을 한 후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인간과 동물의 비슷한 점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동물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될거고, 자연스럽게 거부감이나 적대감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생각에 변화가 많아진 것 같다.
태훈 : 사실 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그런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니까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정윤 : 사실 정말로 동물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바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애완견을 10년 넘게 키웠다는 사람 중에 푸들도 키워봤다, 말티즈도 키워봤다 하며 애견 종류를 줄줄 읊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고보면 무서운 사람들이다. 개 수명이 10년에서 길게는 15년인데, 이렇게 여러 마리를 키워봤다는 건 그 개들이 다 어디로 갔다는 뜻이겠나?
태훈 : 이건 책임의 문제고 생명존중의 문제인거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거기서 스미스 요원이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은 포유류가 아니다. 인간은 바이러스다. 지구상의 어떤 포유류도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 이 말은 인간이 얼마나 생태파괴적인 동물인가 하는 것을 잘 말해준다. 우리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국 자동차 배기가스 제한같은 피상적인 구호만 외치다 그치게 되는 것이다.
정윤 : 인간은 종이 다른 동물이다. 생태계에서 인간은 좀더 힘이 센 상위 레벨의 동물인거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간인데, 거기서 인간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다른 동물을 내쫓은 거나 다름없다. 삶의 터전을 독식하고는 다른 동물들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나.
태훈 : 결국 공존, 공생에 대한 이야기인거다. 가까운 예로 라틴 아메리카를 들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원래 원주민이 살고 있던 땅을 유럽인들이 힘으로 빼앗아 자신의 땅으로 삼은 나라다. 그런 이유로 양심적 차원에서 원주민 보호구역을 따로 만들어 살게 하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연금도 준다.
그런데 그 대상이 동물이 되면 달라진다. 오히려 버려진 동물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캣맘충'이라며 비난한다. 또 캣맘들이 자꾸 밥을 주니까 길고양이들이 여기 와서 배설을 한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자기가 밥 먹는 곳에는 배설을 하지 않는다.
이건 일종의 인간이 만들어낸 '분노'의 일부분이다. 사회적 약자 계층인 장애인 혐오나 여성혐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
Q. 동물도 동물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MC들의 입담이 중요한 재미의 포인트인 것 같다. 각각의 정해진 역할이나 포지션이 있나?
태훈 : 역할이랄게 따로 없다. 그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이다. 김경식 씨는 프로그램의 전체적 흐름을 이끌어가는 역할이기 때문에 MC들의 입장을 잘 정리해 준다. 박정윤 원장은 동물 전문가이다보니 동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내가 인간의 입장에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변을 하거나 한다. 이때 사유리 씨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시각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어 놓는다. 근데, 그게 가끔 우리를 정말 놀라게 할 때가 있다. 각각의 입장이 다르다보니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알아 간다. 시청자들도 그런 부분을 재미있게 보시는 것 같다.
정윤 : 나는 애완동물 수의사이기 때문에 내가 아는 분야는 고작해야 개와 고양이 정도이다. 그래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한다. 최근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 중에 온몸이 하얀 북극곰은 바다사자를 사냥할 때 자신을 흰 눈덩이로 위장하기 위해 손으로 검은 눈과 코를 가린다고 한다. 또 어떤 침팬지는 30여가지 약초의 효능을 알고 질병에 맞는 약초를 선택해 사용하기도 한단다. 뿐만 아니라 붉은 콜로부스 원숭이는 숯이 해독작용을 한다는 걸 알아서 산불이 나면 숯이 된 나무를 가져가서 먹는단다. 심지어 잘 타지 않은 나무는 해독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도 알아서 원주민의 집 화로에서 제대로 탄 숯을 훔쳐가기도 한단다.
태훈 : 이게 여러분은 믿어지나? 나는 조만간 박정윤 원장이 원숭이도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웃음)
정윤 : (웃음) 어쨌든 이런 것들을 공부하다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니까 더 어렵기도 하다.
Q. 김태훈 씨는 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동물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 중 어떤게 더 어렵나?
태훈 : 나는 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렵다. 팝은 내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틀릴까봐 항상 조심스럽다. 하지만 동물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지 않나? 반면 박정윤 원장은 동물에 대해 말하는 게 더 어렵고 부담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Q.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동물들도 있을 것 같다.
태훈 : 보노보(침팬지와 함께 인간과 가장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동물로 알려진 아프리카 콩고의 원숭이. 집단간 평화유지의 도구로 섹스를 이용하는 탓에 <와일드 썰>에서는 '성의 화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웃음) 글쎄.
정윤 : 나는 닮은 동물보다 닮고싶은 동물은 있다. 코끼리. 코끼리는 엄청난 그 덩치만큼 여러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어서 동물들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린다. 나이가 많은 리더 코끼리는 그런 경험을 자신의 무리를 지키는 데 사용한다. 리더 코끼리는 밀렵꾼이 오면 무리들이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스스로 밀렵꾼들과 맞선다. 혼자의 힘으로 밀렵꾼들의 트럭을 뒤집거나 밀렵꾼들의 총알받이가 되기도 한다. 어떤 코끼리의 경우, 몸에 총알이 박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태훈 : 그렇다면 나는 낙지를 닮고 싶다. 발이 많지 않나.(웃음)
Q. <와일드 썰>을 더 많은 시청자들이 보게 됐다. 그 시청자들을 향한 바람이 있을까?
태훈 : 재미있게 보시면 제일 좋을 것 같다. 예전에 동물이 나오는 어떤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화가 좀 났던 적이 있다. 아이들과 강아지가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촬영이 쉽지 않은거다. 제작진은 어떻게 하면 좋은 그림을 뽑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 강아지는 굉장히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요즘 아이들이 혼자인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같이 사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싸워야 할 것 같다.(웃음)
정윤 : 나는 사실 이 프로그램 MC 중에서 말로는 가장 밀리는 사람이다. 개그맨과 팝칼럼리스트와 작가를 어떻게 말로 이기나.(웃음) 그래서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동물이 사람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도 동물이다. <와일드 썰>은 동물 안에서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이니까 '보노보'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태훈 : 저는 그렇게 야하지 않습니다.(웃음)
정윤 : (웃음) 보노보라는 동물이 '성의 화신'으로 와전된 면이 없지 않지만, 보노보는 굉장히 현명한 동물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약육강식의 본능, 힘의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만 세계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데, 보노보는 그렇지 않다. 보노보는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권력이나 힘으로 누르지 않는다. 우리 역시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나. 보노보와 인간의 유전자는 1.6%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며, 인간은 침팬지보다 보노보에 더 가까운 동물이라고 한다.
물론 침팬지의 성향도 가지고 있다. 또 어떻게 보면 코끼리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일부분은 고래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할거다. 그런 동물들의 부분적인 요소들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상대방을 대하거나 동물들을 대할 때 거부감이 없고, 조금은 다른 모습, 다른 마음가짐이 될 것 같다. 우리와 동물은 하나다. 그렇게 봤으면 좋겠다.
태훈 : 결론적으로 말해 '이해심이 많아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남의 입장에서 자기를 볼 수 있다는 거다. '3인칭' 화법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근데 동물을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도 '1인칭'으로만 사고한다는 거다. '나는' 이라고만. 그런데 애완동물이나 또 다른 동물들을 통해 세상을 '3인칭'으로 볼 수 있다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보더 더 인간적인 동물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참신한 기획과 4인 4색 MC 김경식, 김태훈, 후지타 사유리, 박정윤의 '썰전'급 입담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동물판 썰전 <인간탐구 스토리 와일드 썰>은 매주 월요일 저녁 8시 30분 MBC 에브리원을 통해 방송되며, 매주 수요일 새벽 1시 40분 MBC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