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권위는 무너뜨려야 산다. 요즘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은 이순재 할아버지를 망가뜨려 제대로 웃기는데 성공하고 있다.

극중 한방병원 원장인 이순재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지만 실권은 며느리(박해미)에게 넘어가 있다. 부도 직전의 한방병원을 며느리가 새로 일으킨데다 의사로서의 실력도 며느리보다 한참 뒤진다. 순재 할아버지는 늘 큰 소리를 치지만 실제로는 ‘종이호랑이’라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요즘은 ‘야동’(야한 동영상)으로 이 할아버지가 또 한번 망신을 당하고 있다. ‘컴맹’이라는 점 때문에 손자들이 무슨 말을 해도 믿어야 한다. 손자들은 컴퓨터에 대고 말을 하면 음성인식이 돼 무엇이든 다 나온다고 하면서도 침이 튀면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며 노트북에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

하지만 노인이라고 야동을 보고싶지 않을까.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노트북 모니터에 대고 ‘야동’ ‘야동’을 소곤거린다. 그림이 안나오니 제법 큰 소리로 ‘야한동영상’을 외친다.

이 상황을 가족에게 들켰을 때의 민망함이란... 시원하게 ‘야동’ 한번 못보고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가족들도 못믿겠다. 노인에게 프라이버시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다. 시청자들은 인터넷에서 이 장면 동영상을 보며 킥킥거린다.

드라마상의 노인 캐릭터도 비중이 늘어났다. 가족들 사이에서 할아버지 시절을 조용히 보내는 걸로 처리하기에는 이제 본격적인 노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 ‘열아홉순정’ 처럼 젊은 여성과 결혼하고픈 노인(신구)도 등장하고, ‘누나’에서처럼 약간 치매끼가 있지만 오랜 경륜으로 가족들의 인생 문제를 정리해주는 노인(오현경)도 있다.

노인의 쓸데없는 권위는 무너뜨리는게 좋다. 가족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90년대 인기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처럼 하다가는 가족에게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이순재 할아버지의 권위주의도 제거하자. 시트콤 장르니 별로 어렵지도 않을 것같다. 대신 필요한 권위는 조금 남겨두자. 이순재 할아버지 에피소드는 가족으로 축쇄된 ‘2006년 대한민국 일상의 수면 밑’을 보여주는 한도내에서 권위의 수위조절이 필요할 듯 싶다. 권위주의가 제대로 무너진 그 자리에 노인의 새로운 권위가 살아날지도 모른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