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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체험] 하얀거탑, NG 내면 발로 차요?
 
 
 
 

 

 
 
 
전문 메디컬 드라마를 표방하고 나선 MBC TV <하얀 거탑>에 출연하게 된 기자. 이미 사극 <주몽>에서도 나라 잃은 유민 역으로 출연해 본 경험(?)이 있기에 ‘현대물 정도야’라는 다소 안이한 생각을 갖고 촬영장으로 떠났다.

8일 오후 2시 경기도 이천 <하얀 거탑> 세트장에 도착하기까지 기자는 내내 ‘오늘 가면 차인표를 만나볼 수 있을까’ ‘혹 김명민이나 이선균에게 진찰(?)받는 영광을 누릴지도 몰라’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조출연의 길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닌 것을.



△저도 의사 하고 싶다고요~

세트장에 도착한 기자를 맞이한 반장(보조출연자들을 관리하는 진행반장)은 기자를 보자마자 어떤 배역을 맡겨야 하나 고심하는 눈치였다. 이미 촬영은 오전부터 시작된 관계로 보조출연자들의 배역은 정해져 있는 상태. 기자가 도착한 후 촬영할 신은 장준혁(김명민)이 후배 의사로부터 환자에 대해 보고 받는 장면이었다.

그래도 출연하게 됐으니 대사까지는 무리라도 폼나게 나오고 싶었던 기자가 “혹 의사라든가 진찰 받는 환자가 가능할까요”라는 가당찮은 주문을 던졌다. “이거 어쩌나. 의사 역을 드리고 싶어도 옷차림이 정장이 아니어서 불가능하고. 지금은 주연배우 주변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환자도 좀….” 청바지에 낡은 코트를 걸치고 부스스한 머리로 달려간 마당에 의사를 바란 것은 역시 무리였다.

어렵사리 고민하던 반장은 “그럼. 여기 이 아주머니를 부축해서 저 복도 끝으로 걸어가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어정쩡하게 환자복을 입은 보조출연 아주머니의 팔짱을 낀다. 그런데 표정이 너무 어색했나 보다. 갑자기 배역이 바뀐다.

“자자. 여기 아주머니가 앉은 휠체어를 밀고 보도 끝까지 걸어가세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걸어가야 합니다.” 출발 지점은 장준혁과 후배 의사가 서 있는 외과 스테이션 옆. 연출을 맡은 안판석 PD가 옆에서 “알죠? 잘 밀어야 해요. 여기 못 하면 발로 차는 무서운 곳이에요”라며 겁을 준다.

설마 휠체어 미는 것 정도도 못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안 PD가 사진기자에게 “자. NG 내면 내가 바로 기자님을 발로 찰 테니까 그 장면 놓치지 않고 찍어주세요”라고 주문하며 웃는다.



이어 레디 액션 장준혁에게 후배 의사가 어려운 전문 용어를 구사하며 환자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자마자 기자는 휠체어를 밀고 그 곁을 지나쳐 복도로 걸어간다. 한참을 걷고 있어도 ‘컷’ 사인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그맣게 휠체어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어디까지 걸어야 해요”라고 물으니 “그냥 쭉 자연스럽게 걸어요”라고 답한다. 결국 복도 끝을 지나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서야 컷이 외쳐진다.

△동선을 잊지 말아 주세요

두세 번 같은 장면을 찍고 나더니 이젠 카메라 위치를 바꿔 주연배우들의 얼굴을 더 가깝게 찍는다. 기자는 아까 출발했던 지점에서 훨씬 멀어져 복도 중간쯤에서부터 다시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잠시 한가한 틈을 타 몇몇 보조출연 연기자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병원 이곳저곳을 찍기 시작한다.

특히 병원 스태프의 사진이 붙어진 현황판이 인기다. 의사로 연기 중인 이정길·장준혁 등의 사진이 붙어져 있다. 기자가 맡은 휠체어의 아주머니도 휴대전화를 꺼내들더니 통화를 시작한다. “응. <외과의사 봉달희>? 그것도 한 번 촬영 나갔었어. 내일은 <행복한 여자> 촬영 있다니까 아침까지 오면 돼. 운동화 한 켤레랑 캐주얼한 옷 두 벌 갖고 오면 돼.”



아주머니에게 보조출연 연기자로 일한지 얼마나 되셨냐고 묻자 “2. 3년 됐다”고 답한다. 사극은 상관 없지만 현대물인 경우 상황에 맞는 옷을 준비해가는 일이 힘들단다. “오늘은 새벽 6시 20분부터 모여서 버스 타고 왔죠. 분장요?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화장 지우면 그게 알맞은 분장이 돼요. 환자니까.”

아닌 게 아니라 걸어오는 연기자 중엔 정말 몸이 불편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리를 질질 끌며 걷는 고난도(?)의 연기를 보여주는 이들도 있었다. “자자. 다시 들어갑니다. 아까 그 위치대로 서주세요.

저기 아저씨. 아까 동선 잊지 말고 그대로 해주세요.” 반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보조출연 연기자들이 귀신같이 정확한 위치에 서 대기한다. 나름의 표정 짓는 것은 물론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제스추어까지. 반면 기자는 그 간단하다는 휠체어를 미는 것조차 로봇처럼 뻣뻣하게 밀어 사진기자로부터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구박을 받았다.

△의사들은 너무 진지해

다음 장면은 장준혁과 내과의사 최도영(이선균)이 최도영의 연구실에서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든 거냐’는 요지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 안 PD에게 “이젠 뭘 할까요”라고 묻자 “이제 힘든 거나 시켜볼까? 변 받는 거 같은 거 해야지”라고 농담을 던진다.

<하얀 거탑>의 촬영이 이뤄지는 세트장은 1200평 규모로. 실제 병원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수술 전 의사가 손을 씻는 곳에 보조출연 연기자들의 짐을 옹기종기 모아놨는데 지나가던 스태프가 “조심하세요. 거기 아래 버튼 누르면 다 젖어요”라고 주의를 준다.



아래를 보니 서 있는 상태로 무릎이 닿는 곳에 ‘water’ ‘soap’라는 글자가 새겨진 버튼이 있다. 오호. 의사들은 이렇게 무릎으로 버튼을 눌러 손을 씻는 거구나.

세트 제작비에만 15억원이 투자됐는데. 드라마 끝난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드라마가 끝난 후엔 평택으로 옮겨져 보관할 예정이란다. 어디에 뭐가 있나 슬금슬금 돌아다니다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 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놀래키게 한다.

무대가 병원인 만큼 침대와 모포가 곳곳에 있는 터여서 짬짬이 스태프들이 침대에서 눈을 붙인다. 특히 1시간 난방을 하려면 2시간은 워밍업해야 한다는 난방 시스템 탓에 세트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실내가 서늘해 병실 안 침대의 유혹이 점점 커진다.

그 순간 저 멀리 보이는 이선균. 애써 침대의 유혹을 떨치고 이선균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 “안녕하세요? 보조출연 체험 나왔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넸다. ‘김명민이 내과의사는 너무 날로 먹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는 말을 전하자 이선균은 슬쩍 웃으며 “워낙 내면으로 누르는 역할이어서 표현하는 것에도 고심이 많아요”라고 답한다.

옆에 있던 김명민은 스태프에게 “윗 주머니에 꽂을 빨간펜 좀 갖다 달라”고 부탁한다. 세심한 디테일에도 신경 쓰는 모습에 감탄. 간호사로 출연도 하고 자문도 맡고 있는 전직 간호사 문선화씨가 “수술 장면에서 꿰매고 메스 놀리는 손놀림이 정말 의사 같다”고 김명민에 대해 칭찬한 것이 이해가 간다.

쉴새없이 담배를 피며 촬영 준비를 하던 안 PD가 “자. 시작합시다”라고 말하자 김명민과 이선균이 연구실로 들어간다. 그 사이 보조출연 연기자들은 끊임없는 대기모드 상태에 들어간다. 사극과 현대물. 재연 프로그램까지 안 해본 게 없다는 황용규(43)씨가 대기모드에 들어가며 보조출연 연기자의 어려움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준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돼.”
[일간스포츠]
정수진 기자 [
gipsy@movieweek.co.kr]
사진=김진경 기자 [jink@ilgan.co.kr]





2007-01-10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