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제신은 6살에 아버지를 잃고 외할아버지인 조인규의 집에서 자라다가 11살에 원나라에
가서 고모부인 원나라 평장사(平章事) 말길(末吉)의 집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20살에 원나라
태정제(泰定帝)의 눈에 들어 궁중에서 황제를 시종하고 호위하였다. 29살이 되어서는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하여 원나라 순제에게 귀국을 요청하였고, 원나라에서는 그를
정동행성의 낭중(郎中 - 정동행성의 종5품 관직)으로 임명하여 고려로 돌려보냈다.

고려에 돌아온 염제신이 원나라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고려
정부는 원나라를 상대로 한 외교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그를 중요하게 기용하였다.
그러던 중 공민왕이 즉위하였는데, 왕은 염제신을 더욱 중용하려 하였으나 염제신의
이종사촌인 조일신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조일신이 제거된 뒤 2년이 채
못되어 염제신은 좌정승으로 임명되었고, 공민왕 3년 7월에는 원나라 내에서 일어난
한족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차출되어 고려군을 이끌고 원나라에 갔다 왔다.

공민왕 5년에는 기철 일파를 제거한 공민왕이 원나라의 공격이 있을 것을 염두에 두고
염제신을 서북면 도원수로 임명하여 대비하게 하였으며, 7년에는 그를 문하시중으로
삼았다. 8년에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처자와 재산을 싣고 피난길에 오르는 수레는
대단하였으나 그 어머니는 버리고 피난했다는 이유로 탄핵당하기도 하였고, 김용이
처단된 뒤에는 김용의 인척이라 하여 파직되기도 하였다. 신돈 집권기에는 신돈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염제신은 공민왕대에만 세 차례(7년, 12년, 23년) 수상에 임명되었고,
우왕 즉위 후에도 재상직에 머물러 무려 29년이나 재상직을 역임하다가 우왕 9년(1383)
3월에 79세로 사망하였다.

염제신은 어려서부터 원나라 고관인 고모부 집에서 생활하여 원나라 정계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강점을 이용하여 그는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수행할 때
원나라에서 가해지는 압력을 줄이는 데 외교적 능력을 발휘하였다. 또한 대원관계와
관련하여 군사적 역량도 상당히 보여주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볼 때 그는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과정에서 고려에 많은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