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녕공주의 아버지 슈오스반은 원나라 무종(武宗), 인종(仁宗), 영종(英宗), 태정제(泰定帝),
문종(文宗)대에 이르기까지 30여년간 원나라에 대한 반란을 진압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고, 내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 계속되었던
황위계승분쟁에 휩쓸리지 않고, 황실로부터 계속 신임받고 있었다. 그 부계(父系)가 황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고, 본인이 혁혁한 무공을 계속 세웠던 까닭에 그러했을 것이다.

충숙왕 때에는 상왕 충선왕의 유배, 충숙왕의 원나라 소환과 연금 등으로 고려와 원나라
사이의 관계가 경색되어 있었고, 심왕이 고려 왕위를 호시탐탐 노렸던 까닭에 고려 왕실이
안팎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충숙왕은 맏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고 원에
보내어 원나라 황실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던 사람의 딸과 혼인시킴으로써 난국을
타개하려 하였고, 혼인의 성립은 결과적으로 고려 왕실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충혜왕과 덕녕공주의 결혼이 초혼이었던 까닭에 공주는 앞서 결혼한 몽골인 왕비들과
비교하여볼 때 고려인 왕비와 불화를 일으킨 일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충혜왕이 고려인 왕비를 맞아들일 때에도 공주가 특별히 신경쓰지 않거나 또는 허락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공주는 원나라 황실에서 영향력이 큰 황족 출신이었으므로 고려에서도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충혜왕이 죽은 뒤 왕위를 이은 아들 충목왕은 겨우 8살로 매우
어렸다. 그래서 공주는 이전에 고려에 시집온 원나라 공주들보다 훨씬 깊숙하게 고려 정치에
개입하였다. 공주는 인사에 적극 간여하였고, 충목왕이 병석에 눕자 직접 국사를
처결하였으며 왕이 죽자 정동행성의 일에 간여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다음 왕인 충정왕
때에도 공주가 정치에 참여하였으나 왕이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뿐만 아니라
공주의 측근인 배전(裴佺) 등도 계속 공주의 위세를 업고 충정왕 때까지 세도를 부렸다.

공주는 충정왕 2년(1350)에 원나라에 갔다가 공민왕 3년(1354)에 돌아왔는데, 이때까지도
공주의 영향력은 유지되었던 것 같다. 충정왕이 물러나고 공민왕이 즉위한 뒤 이제현이
배전을 정동행성의 감옥에 가두었는데, 공주를 의식한 공민왕이 그를 풀어주기도 하였고,
공주의 또다른 측근인 강윤충(康允忠)은 공주가 고려에 돌아온 직후 찬성사에 임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원나라가 쇠퇴하면서 공주의 정치 개입도 차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