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숙왕과 이린진발라의 결혼은 앞서의 충렬왕＊충선왕과는 달리 큰 난관없이
이루어졌다. 그 까닭은 결혼 당시 충숙왕이 세자가 아니라 왕이었던 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당시 원나라 인종(仁宗)에게 청혼한 고려 충선왕의 정치적 위상이 원나라 내에서 매우
높았다는 점이 더 큰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주의 아버지인 에센테무르는 황위 계승권이 없었으나 원나라 세조와 무종(武宗), 인종에게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충숙왕은 이렇게 원 황실로부터 폭넓은 지지기반을
가졌던 영왕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원 황실에서 후원세력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왕권을 다질 수 있었다.

공주는 결혼한 해에 충숙왕과 함께 고려로 왔는데, 공주보다 먼저 충숙왕과 결혼했던 고려인 왕비 덕비(德妃, 명덕태후)를 질투하였고, 덕비 문제로 왕과도 사이가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공주의 질투로 덕비는 궁 밖에 나가서 살아야 했는데, 왕이 덕비를 만나기 위해 밤에
행차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주가 죽고 2년이 지난 뒤인 충숙왕 8년(1321)에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공주의 사인을 캐물었을 때 덕비 문제 때문에 공주가 질투하자
부부싸움 끝에 왕이 공주를 구타하여 코피를 흘렸다고 무고하는 일이 있기도 하였다.

공주의 갑작스런 사망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얽혀 매우 복잡하게 확대되었다. 이즈음 원나라 인종도 죽고 충숙왕 7년에 영종(英宗)이 즉위하였는데, 이때 원나라 국내 정세가 바뀌어
원나라에 있던 상왕 충선왕이 모함을 받아 유배되고, 충숙왕도 심왕(瀋王)의 모함으로
원나라에 소환되어 옥새를 빼앗기고 연금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심왕 일파가 고려 왕위를 찬탈하려는 책동을 공공연히 하였는데, 공주의 죽음은 심왕파에게 호재가 되었다. 고려인 왕비를 질투한다는 이유로 부부싸움을 하던 중 공주가
왕에게 맞아 죽었다는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외교문제를 일으키고,
심왕파가 고려왕을 흔들어서 축출하기 위한 구실로 삼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