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아버지인 카말라는 원 세조(世祖, 쿠빌라이)의 손자 중에서도 세조가 죽은 뒤 황제
자리를 계승할 수 있는 첫 번째 후보였지만, 세조는 카말라 대신 그의 동생인
테무르(鐵木耳, 뒤의 성종)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럼에도 카말라는 동생을 지지함으로써
테무르가 황제에 오르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카말라에게는 3남 3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맏아들은 뒤에 태정제(泰定帝)가 되었다.
계국대장공주의 아버지와 원나라 성종과의 관계, 그리고 공주와 태정제 사이의 관계를 보면 계국대장공주 또한 원나라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원 세조가 죽고 성종이 즉위한 뒤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는 원나라의 강압적인 태도로 인해
경색되어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고려에서는 세자를 원나라 왕실의 사위로 만들고자
하였다. 정략적인 의도에서 이루어진 혼인이었기에 혼인대상을 고르는 데 신중을
기하였는데, 당시 황제의 나이가 30대 초반에 불과했으므로 고려 세자가 충렬왕처럼 결혼
적령기에 있는 황제의 딸과 혼인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세자는 성종과
혈연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진왕의 맏딸과 결혼하였다.
이로써 세자의 위치는 굳건해져서 왕으로 즉위한 후 대대적인 개혁정치를 시행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출신배경이 좋고, 정치적 힘도 막강했던 공주는 질투심도 남달랐고, 남편인
충선왕과 사이도 좋지 않았다. 충선왕이 당시 수상이었던 조인규(趙仁規)의 딸인
조비(趙妃)와 돈독한 관계를 갖자 조비를 질투한 끝에 ‘조비가 공주를 저주해서 왕이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원의 황태후에게 전하게 하고, 이어서 ‘조인규의
부인이 무당을 시켜서 저주함으로써 왕이 공주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딸만 사랑하게 한다’는
익명의 글을 빌미로 하여 조비와 조인규 등을 잡아서 원으로 압송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충렬왕의 측근세력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충선왕이 펼쳤던 개혁정치를 좌절시키려는 국내 정치세력 및 원나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던 차에 벌어진 이 사건의 여파로 충선왕의 개혁정치가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 왕이 폐위되어 원나라로 가고, 충렬왕이 복위하기에 이르렀다.
공주의 질투심은 충선왕 폐위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였고,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충렬왕 27년(1301)부터 공주를 다시 시집보내려는 움직임이 꽤 오랫동안 계속된 것으로
미루어 충선왕이 왕위에서 물러난 뒤에도 왕과 공주의 사이는 좋아지지 않았다고 추측된다.
공주는 충숙왕 2년(1315) 12월에 원나라에서 죽었고, 충혜왕 후 4년(1343)에 계국대장공주로
봉하여졌다.

한편 충선왕에게는 세자 시절에 맞이한 몽골 출신 비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녀는 <고려사>에 의비(懿妃)로 기록되어 있는데, 충숙왕의 어머니이다. 의비도 나름대로 좋은 신분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나 공주의 신분이 아니었던 탓에 같은 몽골 출신임에도 계국대장공주보다는
많이 떨어지는 대우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