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서는 원래 상서 6부 중 이부(吏部)가 문반, 병부(兵部)가 무반의 인사를 담당하였는데, 병권과 인사권 장악이 중앙 정치를 좌우하는 데 필수적이었으므로 최우 이전부터
무신집권자들은 인사 행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최우의
아버지인 최충헌(崔忠獻) 이전에는 무신집권자가 이부나 병부의 직책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둘 다 겸하지는 못하였다. 최충헌이 집권하면서부터 무신집권자가 두 직책을
겸하였는데, 두 직책을 겸하면서 그에게는 두 관서에 모두 출근하여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겼다. 이를 없애기 위해 아예 자기 집에서 이부와 병부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데 이르렀는데, 이는 ‘정방’이라는 이름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정방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종 6년(1219)에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는 곧바로 아버지의 인사방식을 계승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최충헌 집권 때 행해진 인사제도의 문란을 바로잡으려 하면서 인사권을
다시 이부와 병부에 돌려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권력 기반을 어느 정도 다진 뒤
고종 12년 6월에 가서야 최충헌이 사용하였던 인사처리방식을 재도입하였는데, 아버지와는
달리 ‘정방’이라는 정식 명칭을 붙여 공식기구화하고, 여기에 따라 정색승선(政色承宣),
정색소경(政色少卿), 정색서제(政色書題)와 같은 요원도 갖추었다.

고종 45년(1258)에 최씨무신정권이 붕괴하였으나 인사권은 여전히 이부와 병부에 돌아가지 않았고, 정방은 왕의 편전(便殿) 옆으로 옮겨져 존속하였다. 그러다가 원종 11년(1270)에
무신정권이 완전히 붕괴하면서 왕정이 실질적으로 복고되었음에도, 국내에 굳건한 기반이
없는 채로 원나라에 의존하였던 원종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측근기구를 찾다가 편전 옆에
위치한 인사기구인 정방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무신집정의 사적 인사기구인 정방은
폐지되지 않았고, 오히려 왕의 측근기구로 변화하였다.

이같이 정방은 무신정권의 다른 지배기구가 무신정권 붕괴와 함께 소멸된 것과는 달리 무신정권 붕괴 후에도 그대로 남아 지인방(知印房) 또는 차자방(箚子房), 상서사(尙瑞司)로
이름이 바뀌면서 조선 태종 5년(1405)에 폐지될 때까지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원 간섭기에 한하여 본다면 왕권 안정 여부가 원나라에 의해 좌우됨으로써 지위가
불안정했던 고려 국왕 입장에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측근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이 측근세력 중에는 신분적으로 하자가 있는 자들이 많았는데,
왕은 문무반의 단일인사기구로 이미 측근기구가 된 정방을 통해 이들을 적당한 자리에
진출시켰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정방 자체가 이미 측근세력의 일부를 이루어 왕권을
뒷받침하였다. 원 간섭기에 재위한 왕들은 대체로 정방을 폐지하기보다는 존속시키기를
원하는 편이었다.

국가기구로 변한 이후 정방은 대체적으로 권신(權臣)들에게 지배되어 많은 폐단을 낳았기에 폐지되었다가 다시 설치되기를 여러 차례 거듭하였다. 정방의 설치와 폐지가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부각된 것은 인사권 장악을 둘러싸고 유교적 소양을 갖추고 있던
유신세력(儒臣勢力)과 비유신세력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표현된 측면이 크다.
정방은 충렬왕대(1274.6～1298.1, 1298.8～1308.7)까지는 유신세력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으나 충숙왕(재위 1313～1330, 1332～1339) 때에는 왕권이 약화되고
폐행(嬖幸 - 국왕에게 아첨하여 사욕을 채우고 권세를 휘둘렀던 집단)이라고 일컬어졌던
세력이 성장하여 인사권을 장악함으로써 유신세력을 위축시켰다.

이런 이유로 정방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이제현 등은 충목왕(재위 1344～1348)이 즉위하자 정방 폐지를 주장하여 이를 관철시켰지만 폐행세력의 반발로 한 달만에 다시 설치되었다. 이후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즉위하면서 원년(1352) 2월에 정방이 폐지되었으나 친왕세력의 반발로 곧 부활되었고, 공민왕 5년(1356)에는 이색의 건의가 수용되어
개혁정치의 일환으로 폐지되었다가 개혁반발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6년 2월에 다시 설치된다.
개혁 후유증이 사라지고 체제가 안정되기 시작한 6년 12월에 정방은 다시 폐지되었으나
홍건적의 침략으로 맞은 비상사태에서 정방이 부활하여 개혁적 유신세력의 성장을
방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