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대군’

공민왕은 왕이 되기 전에 강릉대군으로 불렸는데, 공민왕이 즉위 전에 가졌던 ‘대군’이라는
명칭은 어떻게 해서 사용되었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겠다.

고려가 건국되고 얼마간은 종친을 원군(院君) 혹은 대군(大君)이라고 칭하였고, 때로는 태자(太子)로 칭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현종대(1009～1031)부터 당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서 종실 및 공이 있는 신하에게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이라는 작위를 수여하였다(종실에게는 공, 후, 백까지만 수여하였다). 이는 황제체제 하에서 제후를 왕으로 봉하고,
영지를 나누어주어 왕실을 지키는 울타리 역할을 하게 한 것과 형식상 같다.

이를 봉작(封爵)이라고 하였는데, 고려 때부터는 종실이 조정에 출사하여 관료로 나아갈 수 없었기에 이를 대신하여 종실에게 특권을 주어 대우한 것이고, 공이 있는 신하에게는 특별한 공에 대한 반대급부로 관료체계의 차원을 초월하는 특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고려에서 종실 등에게 봉작을 행하였다는 것은 중국의 천자가 제후국을 봉하는 것과 같이 고려의 왕도
제후국을 봉한다는, 황제체제하의 분봉제 성격을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고려 국가의식의 한 면모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원나라의 간섭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충렬왕 24년(1298)에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관제를 개편하였는데,
이때 충선왕은 원의 제도를 적극 수용하여 고려 정치제도를 개편하였다. 이때 봉작제도
개편되어 종실과 신하에게 봉작하는 대신 군(君)으로 봉하는 봉군제(封君制)을 행하였다.
충선왕은 고려를 원나라의 제후국 위치에 두려는 입장을 취하면서 고려 관제를
정비하였는데, 이때 황제체제하의 분봉제 성격을 갖는 봉작제는 분수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므로 주요한 개편 대상이 되었다. 제후국체제하의 분봉제 성격을 갖는 봉군제가
시행됨으로써 부원대군(府院大君, 약칭 대군 혹은 부원군),부원군(府院君),군(君) 등의
명칭이 공, 후, 백 등의 명칭을 대신하였다.

봉군제는 공민왕 5년(1356)에 모든 관제가 문종대에 정비되었던 구제(舊制)로 회귀하면서
봉작제로 다시 바뀌었다가 공민왕 11년에 원의 압력으로 위축되었을 때 다시 봉군제로
돌아갔고, 공민왕 18년(1369)에 외압을 극복하고 신돈을 내세워 개혁정치를 시도할 때
봉작제로 되돌렸으나 21년에 신돈이 몰락하고 왕권도 위축되는 상황에서 봉군제로 돌아갔다. 이때 봉군제로 되돌린 것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의식하여 취한 조치로 보인다.

강릉대군 왕기(공민왕)

2005-11-07(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