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자가 재벌 2세 만나서 유리구두를 신나 싶었더니, 재벌 2세는 놀 것 다 놀고 위자료도 없이 사라지더라'

최근 한 네티즌의 '이런 드라마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리플 시리즈가 다른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으며 사이버상에 떠돌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익숙하게 보아오던 설정들을 비틀고 패러디하는 내용이다.

공식화된 드라마를 즐기며 보는 층이 있는 반면 이런 드라마의 일정 공식을 파악해서 이를 현실적으로 비꼬며 즐기는 층이 공존한다.

이런 네티즌의 패러디 놀이 근저에는 뻔하기 그지없는 신데렐라 드라마는 이제 그만봤으면 좋겠다는 시청자의 불만이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정작 같은 신데렐라 드라마도 포맷만 비슷하게 잡은 채 조금씩 다른 배반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성층을 주 시청층으로 잡고 있는 트렌디 드라마가 자신의 본류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완전히 배반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틀 안에서 색다른 변주를 계속하고 있는 것.

지난 해에는 재벌 2세와 헤어지라고 돈을 제시하는 측에 '돈이 너무 적습니다'고 맞받아치는 '캔디렐라' 이야기 SBS '파리의 연인'이 나왔고, 올해는 재벌 2세 왕자라도 '싸가지 없으면 내가 뜯어고친다'는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이 나왔다.

다만 이런 신데렐라 변주 드라마에서도 절대 건드리지 않는 성역이 있었으니 바로 '어떤 신데렐라든 왕자님은 사랑한다'는 불문율이었다.

드라마 속 여성형은 청순가련의 순정만화형에서 현실 밀착형으로 부지런히 발전했지만 정작 남성 캐릭터는 여성 신데렐라를 위해 '맹목적인 사랑을 준비한 채 기다리는 재단된 왕자'에 멈춰 있어야 했던 것.

'비밀남녀'-'맨발의 청춘' 신데렐라 비틀기

하지만 최근 방송중인 MBC 일일연속극 '맨발의 청춘'(극본 조소혜 연출 권이상 최도훈)과 MBC 월화 드라마 '비밀남녀'는 이런 '절대불변 왕자님의 사랑'에 메스를 들이댔다.

'비밀남녀'의 재벌가 남자 주인공 김준우(김석훈)는 '가진 것 없는 여주인공은 무조건 사랑하고 구원해 줘야 한다'는 신데렐라 나라의 왕자님 철칙을 정면에서 배반한다. 여주인공 영지(한지혜)의 엽기발랄함에 한 눈에 반했지만 그 사랑도 영지가 달동네에서 술꾼인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처녀가장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난 너를 사랑해'라는 멜로 드라마 상 마법의 주문은 준우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심지어 지난 4일 방송분에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자신의 친구들에게 영지를 소개하기가 창피해서 다른 조건 좋은 성형외과의사 아미(송선미)를 데리고 간다.이 드라마는 그런 준우의 고민에도 초점을 맞춘다.

가슴으로는 자신이 영지를 저울질한다는데 죄책감을 느끼지만, 머리로는 자신이 사는 상류사회에 영지를 편입시킬 때 자신이
잃어야할 것들을 계산하는 준우의 모습은 신데렐라 드라마들이 간과하고 있던 '왕자님의 고민'을 들고나왔다.

그럼으로써 사랑은 판타지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드라마는 오직 둘 만의 영원한 사랑의 아리아를 부르는 대신 지금 내가 속한 사회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비춘다.

'비밀남녀' 제작사인 팬 엔터테인먼트 측 관계자는 "여자만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역시도 여자의 집안, 재산, 학력 등 조건을 잰다"며 "이런 현실 속 사랑을 생각하는 남녀에 대해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맨발의 청춘'은 한술 더 뜬다. 이제 막 2회 방송한 이 일일드라마는 가난한 복서와 신분상승을 갈망하는 나레이터 모델, 술집 여주인의 사랑 이야기로 질박한 서민들의 사랑 이야기를 훑어가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100회를 넘은 긴 여정동안 여자주인공 경주(정애연)는 잠시 신데렐라가 될 예정이다.

자신의 미모에는 자신있는 경주가 재벌 2세 황준혁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도 잠시, 이 바람둥이 왕자는 자신의 버릇대로 색다른 경주에 끌렸을 뿐 경주가 지겨워하는 밑바닥 삶에서 끌어올려 주는 동앗줄이 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바람둥이 재벌 2세가 청순가련, 혹은 발랄한 신데렐라를 만나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기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데렐라 쪽 희망사항일 뿐, 그런 착각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은 어느새 바람둥이 재벌 2세의 지난 여자 리스트에 빠져버린다는 나름으로 처절한 패러디일 수도 있다. 물론 일일 드라마의 특성상 이후 어떤 전개가 될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해피엔딩의 철칙이 이 두 드라마에 어떤 식으로 적용될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결말보다도 사실 결말까지 풀어가는 과정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 두 드라마가 편하게 기댈 수 있는 판타지 보다도, 그 판타지가 은폐하던 모순을 전면으로 끄집어 냈기 때문이다.

'비밀남녀'의 영지는 "발은 시궁창에 빠져 있어도 사람들은 눈으로 저 멀리 무지개를 보고 싶어한다"고 한숨쉬고 이에 도경(권오중)은 "현실은 고단하고 그만그만하니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꿈꾸는 이야기만을 찾는다"고 퉁명스럽게 맞받아 친다. 신데렐라 모티브를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시청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남녀', '맨발의 청춘' 의 도발이 반가운 것은 비슷비슷하게 재단된 신데렐라 판타지가 대변해주지 못할 만큼 우리네 삶 속에 꾸는 꿈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달콤한 환상보다 척박한 현실 그 속에서 사랑과 조건이라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TV 드라마 주인공들을 만나는 경험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조이뉴스24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