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관리자 조회:
수사 드라마│“차수경은 시고니 위버도, 린다 해밀턴도 아니다”
 

 

<히트> 공동집필 중인 박상연 작가 인터뷰

t :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 소설 ‘DMZ’를 집필하셨는데 <히트>를 통해 TV 드라마에는 처음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밖에 어떤 작업들을 해오셨는지.

박상연 : 96년에 민음사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DMZ’로 등단한 뒤 당시 명필름 (현 MK픽쳐스)에서 영화화 제의를 해왔어요. 당시는 영화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박찬욱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과정에 모니터링을 하는 정도로 참여했는데 소설을 쓰는 작업이 정말 외롭다는 걸 뼈져리게 느끼고 있던 시점이라 함께 회의하고 의논하고, 아이디어를 내며 이루어지는 시나리오 작업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공동경비구역 JSA>가 히트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좋은 환경이 되어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제작사 사정으로 영화가 엎어지기도 하고 중간에 제가 그만둔 적도 있고. 가장 최근에는 5·18 광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습니다.

용산서 강력 4반에서 며칠씩 먹고 자며 취재

 
t : 그러면 <히트>라는 드라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습니까.

박상연 :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영현 작가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예상외로 잘 통하더라구요(웃음). 그 뒤로 김작가가 <대장금> <서동요>의 대본작업을 하고 저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몇 년 동안 서로 모니터링도 해주고 아이디어도 내주면서 친해졌어요. 같이 회의를 하다 보면 호흡이 참 잘 맞고, 취향도 비슷한 면이 많아서 언제 기회 되면 공동 작업을 해보기로 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거죠. 김영현 작가가 정식으로 제의했고 함께 일하면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받아들이면서도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소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드라마로 작가로서의 폭을 넓힌다는 면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드라마를 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수사 드라마를 한다는 것, 그것도 공동작업을 한다는 것까지 세 가지 도전 중에 하나는 빼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김영현 작가의 작가적, 인간적 능력을 굳게 믿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었고 지금도 힘들지만 아주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t : 언제쯤부터, 어떤 자료와 취재 방법을 통해 작품을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품 특성상 민간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소재라는 면에서 어려우신 점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박상연 : 작년 6월에 같이 일하자는 합의를 보고 일단 책 읽기부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작업실에 가보니 큰 책장 두 칸은 가득 채울 만한 책들이 쌓여 있었어요. 경찰공무원 수험서, 경찰관련 수기, 에세이, 연쇄살인 관련 서적들…. 저는 기가 질려 있는데 김작가는 “이 정도는 읽어야 되는 거 아니야?” 하더군요. 처음으로 내가 과연 경찰 드라마를 할 수 있을까 후회한 순간이었습니다(웃음). 그 다음은 취재였는데, 우리가 여자 강력팀장을 주인공을 하려다 보니 리얼리티가 중요했죠. 마침 강동서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강력팀장 김화자 경위님이 계셔서 만나뵙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차수경의 모습을 그려갔어요. 그리고 MBC <현장기록 형사>라는 프로그램 제작 현장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면서 용산서 강력 4반에서 며칠씩 먹고 자며 취재를 하다 보니 조금씩 차수경을 둘러싼 환경과 인물들이 잡히더라구요. 그때 저희를 도와주신 <형사>의 김명균 PD님은 그 인연으로 현재 <히트>의 조연출을 하고 계십니다.

공동작업의 포인트는 감정을 넣은 리딩!

t : 현장에서의 취재 과정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으셨는지.

박상연 : 사실 기대하는 것처럼 체포 과정이 재미있지는 않더라구요. (웃음) 지명수배자나 용의자를 체포할 때도 몇 번 따라가 보았는데 조직폭력배라고 해도 반항하는 법이 없어요. 그냥 형사다, 이런저런 일로 같이 가야겠다, 혹은 체포한다고 하면서 미란다 원칙을 불러주면 알아서 조용히 차에 탑니다. 물론 현실에서 재미가 있으면 큰일나겠죠.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극적으로는 그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취재를 하다 보니 극적인 효과를 위해 포기해야 할 리얼리티의 목록들이 생기더군요.

t : 형사인 친구분으로부터 디테일에 대한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부분들이었는지. 그리고 방영분에 대한 그 친구분의 평가도 궁금합니다.

박상연 : 현재 본청 마약수사과에 있는 김근만 경감입니다. 그 친구 주선으로 강동서 강력 4팀 팀원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앞으로의 에피소드에 반영될 예정입니다. 사실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어려운 게 여전히 많아서 수시로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어요. 앞으로도 많이 귀찮게 할 예정입니다. 첫방송이 나간 뒤 여러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그 친구의 “재밌다. 잘 만들었네” 하는 문자가 제일 반가웠어요.

t : 김영현 작가님과의 협업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박상연 : 일단 2부 분량의 라인을 잡는 회의를 한 뒤 거기에 맞는 ‘신 리스트’를 함께 만듭니다. 그러고는 기간을 정해 각자 맡은 회별 대본 작업을 하는데 그때가 회의 안 하는 유일한 기간이에요. 그래서 나온 대본으로 모니터링 회의를 해서 확정을 짓는데 저희는 반농담으로 서로 ‘회의 마니아’ ‘회의 만능주의자’라고 부릅니다. ‘회의하면 다 풀릴 거야!’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그리고 이건 우리 영업비밀이라 혼날지도 모르는데, 서로 대본이 나오면 리딩을 합니다. 그냥 읽어보는 게 아니라 감정을 잡고 연기를 해보는 거죠. 물론 처음엔 낯뜨겁습니다(웃음). 하지만 문자만으로는 뉘앙스와 어조, 정서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공동작업에서는 리딩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색한 정서를 발견하고 고치기도 하고, 더 입에 잘 붙는 표현을 생각하기도 하고요. 문제는 김영현 작가와 제가 점점 연기력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전 벌써 연기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가슴 아픈 일이죠(웃음).

모든 캐릭터에 각각의 이야기를 주고 싶다

t : <히트>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한국판 CSI’를 표방하는 작품이 아니라 한국형 수사물을 지향한다고 보여집니다. 사실 수사기법의 진화와 같은 면에서는 미국 드라마에 좀더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지만 인물들 간의 관계나 사건의 성격은 보다 한국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작가님들께서는 한국형 수사물의 리얼리티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통해 그것을 구축하고 싶으셨는지.

박상연 : 미국과 한국은 수사 현실이 다르니까, 한국적 수사 상황을 반영하면 자연히 한국형 수사물이 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한국형 수사물’에서 영화로서의 모범답안은 <살인의 추억>이고 드라마 쪽은 <수사반장>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수사반장>은 범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이런 포맷의 드라마는 제작상의 어려움 때문에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비미국적 수사물’까지는 알겠지만 ‘한국적 수사물’이라는 부분은 아직도 저한테는 숙제입니다.

취재와 조사를 하면서 느낀 건, 우리나라 수사 현실이 예상 외로 상당히 과학적이기도 하고 그만큼 비과학적이기도 하다는 점이었어요. 미국 CSI 수준의 첨단기법에 의한 수사와 현장 형사의 열정이나 노하우에 모든 걸 기대는 식의 다소 원시적인 수사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어요. 과학과 비과학이 혼재되어 있는 구한말 같은 느낌이랄까요. <히트>는 사건, 수사 중심이라기보다는 인물 중심의 드라마라서 그런 특징이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는데 언젠가 수사 중심의 드라마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위에 말씀드렸던 한국적 수사 상황의 특징이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 같습니다.

t : 말씀하신 대로 <히트>는 인물이 중심이 되고 있는 작품이라 주인공들보다도 오히려 심종금, 장용하, 남성식 등 조연인 팀원들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면도 있습니다. 캐릭터 간의 밸런스도 염두에 두셨을 것 같은데 혹시 각 캐릭터의 원형이 있는지, 혹은 어디에서 착안해 이들을 현재의 진용으로 구성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상연 : 보는 분들 모두 느끼겠지만 심종금, 장용하, 김일주는 장르물의 전형적인 캐릭터고, 남성식은 만화적인 캐릭터입니다. 각각 새롭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형적이더라도 미니시리즈라는 포맷에 얹어놓았을 때는 또 다른 매력과 장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1~4회까지의 에피소드는 각 캐릭터들이 모이는 과정과 차수경의 과거 및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했고 5회부터는 장용하 경사의 개인사가 중심이 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히트 팀의 형사들과 김재윤 검사 등 각 캐릭터에 무게를 실으면서 전개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전체에 걸쳐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라인을 갖는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t : 그러면 그 캐릭터에 대해 실제 연기자들이 표현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남성식 경장의 미키마우스 티셔츠는 혹시 대본에도 나와 있는 설정인가요?

박상연 : 만족하고 있습니다. 심종금 같은 캐릭터는 처음부터 김정태씨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반드시 캐스팅해야 돼!’라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만들었어요. 남성식 경장의 미키 마우스 티셔츠는 대본에서 설정한 게 아니라 본인이 잡은 콘셉트인 것 같아요. 제작 발표회 때 마동석씨가 그걸 입고 나왔는데 다들 재밌다는 반응이었고 저도 “동석이형! 그거 촬영할 때 입어야 될 것 같은데!” 하고 말했거든요.

사건과 사랑,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봐달라

 
t : 주인공 차수경은 굉장히 남성적인 외양과 태도, 지극히 여성적인 슈어홀릭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혹시 모티브가 되는 인물이나 작품이 있었나요?

박상연 : 차수경은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가 아니에요. 원래는 천상 여자였어요. 5회에 김재윤의 대사로도 나오지만, 14년을 안간힘을 써왔지만, 아직도 강력팀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일에만 그렇게 올인해왔는데도, G.I 제인과는 달리 아직 인정받지 못하구요. 그렇게 스스로를 변화시켜왔지만,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튼과는 달리 자신이 감춘 여성성과 과거의 모습에서 갈등하고 있죠. 이런 차수경에게 뭔가의 설정이 필요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김작가가 슈어홀릭이라는 아이디어를 냈죠. ‘와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질투 나서 속으로만 생각하고 겉으로는 그냥 ‘뭐… 괜찮네…’ 했죠(웃음).

t : 그런데 김재윤 검사와 차수경 경위 사이의 멜로 라인이 강화되면서 극이 중심을 잃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박상연 : 사실 수사물이라는 장르와 남녀 간의 멜로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결합한 작품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미국영화에서도 찾기가 쉽진 않아요. 중심을 잃고 있기보다는 낯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한국에서 의학드라마는 병원에서 사랑하는 얘기고, 법정 드라마는 변호사들이 사랑하는 얘기고, 경찰드라마는 경찰서에서 사랑하는 얘기다”라고 얘기하는데 멜로 라인이 전체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문제라기보다는 유기적인 연결관계가 미흡할 때 나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멜로와 사건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줘야겠죠. 그 영향은 대개 장애의 형태로 오는데 욕망은 장애에서 오죠. 뭔가가 안 되니까 욕망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차수경이 자신의 과거 모습, 감춰진 여성성을 린다 해밀튼처럼 완전히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도 장애가 있는 거구요. 그래서 이런 불완전하고 불안한 현재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예요. 이 드라마가 차수경의 성장기라면, 차수경에게 멜로는 드라마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막 시작된 차수경의 멜로는 앞으로 벌어질 사건으로 방해받을 것이고 또 그런 사건들의 진행은 차수경의 멜로에 의해 차단되는 큰 구조가 될 거예요.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t : 여러 가지 면에서 <히트>의 시청자들은 작품에 대해 무조건적인 애정, 혹은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쪽으로 나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박상연 :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논쟁을 많이 하시더군요. 어떤 분이 비판을 하시자, 또 다른 분이 댓글로 “그렇게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잖아. 당신 같은 사람은 안 보는 게 도와주는 거야”라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안 보는 건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제발 봐주세요(웃음). 그래야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으니까요.

t : 작가님께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혹은 영감을 받으신 수사물이 궁금합니다.

박상연 : <LA 컨피덴셜>. 아마 김작가도 똑같을 겁니다.

t : <히트>가 끝난 뒤에는 어떤 장르나 소재의 작품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박상연 : 아마 한국 전쟁 당시 아주 유니크한 전장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 밖에 혼자 구상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홍길동에 관련된 사극이 한 편 있습니다.

(정리) 최지은 guilty@t-fac.com

 

(매거진t 블로그) 서교동 t 팩토리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magazinet)

저작권자 ⓒ 매거진t.(www.magazinet.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2007-04-06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