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의 김재윤 검사, 영화 <숨>의 하정우 인터뷰
: <히트>라는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주연 자리를 꿰찼다.
하정우 : 드라마의 구조와 시놉시스가 마음에 들었다. 기존의 드라마 캐릭터와도 달랐고,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특히 흔한 삼각관계 구도도 아니라서 좋았다. 물론 삼각관계, 멜로물도 시켜주면 하겠지만(웃음).
“<히트>는 확실히 내가 카메라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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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트>의 김재윤은 어떤 남자인가. 초반은 굉장히 자의식에 차 있는 것 같은데도,
정작 차수경 형사 앞에서는 결국 꼬리를 내린다.
하정우 : 인간적이고 어설픈 남자다. 얼핏 비슷한 캐릭터가 연상될 수도 있겠지만 기존 드라마들에서 보여줬던 정형화된 남성의 이미지를 벗으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멋있게 보인다거나 강렬한 눈빛연기 등을 배제하고 편안하게 가려고 노력했다.
: 남성적이고 잘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감성도 보여줘야 하는 이중고를 가진 캐릭터다.
하정우 : 사회적응을 잘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부적응자다. 사람을 대할 때도 어디까지만 열려 있고, 정작 내부적으로는 결핍된 게 있는 사람이다. 피아노 같은 취미활동으로 그걸 포장하려고 해보지만, 원천적으로 상처가 있고 나약한 사람이다. 차수경으로 인해 이런 삭막한 남자가 변화한다. 4부까지는 범죄드라마를 보여주기 위해 수사 위주인데 5부부터는 본격적인 로맨스가 시작된다.
: 첫회는 물에 빠지는 장면도 나오더라. 추격전이 많은데 몸도 고생이겠다.
하정우 : 지금 파주 세트 촬영 끝나면 압구정으로 또 거리 신 찍으러 나간다. 매일매일 촬영이 빠듯하다. 홍콩에서 찍은 추격 신은 직접 운전도 했다. 한강물에 빠지기도 했다. 이틀 동안 밤새도록 찍는데 끔찍하더라. 대사로도 투덜대지만 정작 내 마음도 그랬다. 헬기도 무서웠다. 빨리 드라마가 멜로로 접어들어서 커피숍에서 대화하고 싶다(웃음).
: 김재윤 검사의 ‘기’가 상대배우인 고현정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드라마로 보면 고현정은 대
선배이지 않나.
하정우 : 팀워크인 것 같다. 스케줄이 빡빡하고 고되도, 장난치면서 즐겁게 일한다. 그래서 일부러 틈만 나면 술자리를 갖으려 노력한다. 고현정 선배와도 아침 8시에 스탠바이 하고, “12시 전에 끝나면 술 한 잔 하자”고 이야기한다. 촬영이 빠듯하고 어렵지만 술은 물론이거니와 밥은 꼭 같이 먹으려 한다. 홍콩에서도 술자리 두 번이나 가졌다. 그런 점에서 서로 잘 맞는 것 같다.
: 다양한 환경,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매번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일 것 같다. 국제적으로
성장한 배우에 대한 스태프들의 부담감도 있을 것 같다.
하정우 : 유철용 감독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하시더라.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쉬지도 않고 드라마를 주구장창 찍으니까 카메라를 정작 의식할 틈도 없더라. 호흡이 워낙 잘 맞기도 하고. 카메라 앵글만 빠져나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의식하지 않고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프라하의 연인>에서는 카메라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히트>는 확실히 내가 카메라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거친 피부의 이 남자가 정글에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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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트>는 본격적으로 하는 드라마 작품이다. 매력적인 요소도 많을 것 같다.
하정우 : 드라마는 바로바로 반응이 오니까 재밌다. 그런데 부끄러운 점도 있다. 피부도 너무 안 좋고, 눈도 잔뜩 충혈되어 있다. 꽃미남 배우들이 관리를 너무 잘해주니까 나 같은 거친 피부로는 HD 카메라에 살아남기 힘든 것 같다.
피플(1989zzaang) : 브라운관에서 살아남으려면 피부 관리도 따로 필요하겠다.
하정우 : 돼지고기 마니아라 아침식사로 보쌈 먹고 점심에는 족발 먹고. 마늘진액, 포도즙 등 즙 5종을 섭취하고 있다. 아이크림도 바르고 있다. 나름 관리 중이다. 근데 무엇보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고현정씨 피부와 너무 비교돼서 나름 노력하고 있다. 독주를 끊고 맥주로 가볍게 하고 있다. 운동도 시간 나는 대로 하려고 노력한다.
피플(이류시인) : 부친인 김용건씨를 비롯, 동생분도 연기자로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연기를 하게 됐나.
하정우 : 아버지가 배우다 보니 집에 놀러오는 손님들이 모두 다 배우였다. 어머니는 무용을 하셨고, 사촌 누나는 둘이나 모델라인 소속의 패션모델이었다. 아버지 친구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들도 모두 연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영화에 대한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어릴 땐 수영선수를 하려고 수영도 했는데 그만두고, 그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고 싶었다.
피플(더머) : 아버지가 연기자이다 보니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하정우 : 김성훈이라는 본명을 두고 하정우로 활동하니, 아버지의 영향을 벗어나려고 하는게 아니냐는 질문도 많았다. 그런데 그건 배우로는 좀 심심한 이름 같아서 좀 독특한 이름을 찾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배우라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남보다 50미터 정도 더 빨리 갈 수 있는 발판 쯤. 그런데 그게 끝이다. 호랑이는 내 힘으로 되어야 한다. 정작 호랑이가 되는 것 자체를 도움받아버리면 그 이후는 막막해져버리는 거다. 그런 게 오히려 부담스러워, 일부러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자 싶었다. 아무것도 없을 때도 혼자 일과표 짜서 빈틈을 주지 않고 일했다. 헬스클럽도 등록하고 영어학원도 다니고, 피아노도 배우고, 오디션도 봤다. 언젠가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혼자 놀기’를 즐겼다.
“다양한 시도로 나만의 틈새시장을 개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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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개봉이 얼마 안 남았다. 개봉 준비도 바쁠 텐데 드라마 촬영까지 하느라 일정이 빠듯하겠다.
하정우 : <네버 포에버>를 끝내고 나니 들어오는 작품들이 별로 없더라. 영화 시장이 어려워진 탓도 있다. 때마침 <히트>는 좋은 기회였다. 작년 한 해를 돌아봤을 때 많이 부족했던 부분들을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게 힘이 되어줄 것 같았다. 이번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 사실 <구미호 가족>이 그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나.
<구미호 가족>이 시장에서 실패하고 오히려 ‘예술영화의 배우’로 더 꼬리표가 확고해졌다.
하정우 : 그게 내 길이라면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웃음). 그래도 드라마 출연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 같다.
: 김기덕 감독과는 <시간> 이후 <숨>으로 벌써 두 번째 작품이다.
조재현에 이어 김기덕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로 떠오르고 있다.
하정우 : 굉장히 재밌는 분이다. 나랑 잘 맞아 술자리를 갖고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촬영해보니 대화도 많이 하고 배우들의 의견도 잘 받아주신다. 이번 작품은 주연이 아닌데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직접 메일을 보내오셨다. 전체 9회차 중 5회차가 내 분량이다. 음대 강사 역할인데 첫 시놉시스에서는 비중이 작았다가 연기를 하면서 오히려 비중이 분량이 높아졌다. 바쁘게 찍는 와중에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주변 상황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네버 포에버>에서는 백인 여성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동양인 불법체류자로
출연한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가장 강한 야성을 간직하고 있다. 색다른 도전이다.
하정우 : 미국에서 촬영한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구미호 가족> 찍고 체코 까를로비바리 영화제 갔다가 바로 미국에 가서 촬영했다. 맨해튼에서 주로 촬영했는데 쭉 공원에서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도 스크립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런 말 하면 웃길지 모르지만 아는 사람도 없는 황폐한 환경을 연기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고나 할까.
: 빔 벤더스 감독이 방문했을 때 ‘네이티브에 가까운 영어회화’를 선보여서 언론의 표적이 됐다.
영어 잘하는 한국 배우로.
하정우 : 나도 그 기사 봤다. <아메리칸 좀비>라는 영화 PD를 맡은 분과 깐느에서 뵙고 이번 <네버 포에버>로 선댄스를 갔을 때도 인사했는데, 그분의 주선으로 빔 벤더스 감독을 만났다. 정작 영어가 중요한 게 아닌데 기사는 그런 식으로 나서 깜짝 놀랐다. 영어는 어릴 때부터 가까이 접한데다, 97년에 어학연수를 갔다와서 조금 하지만 유창한 건 아니다. 물론 언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일본배우 와타나베 켄을 보면서 '아시아 배우들도 쿵푸가 아닌 역할을 할 수 있구나' 하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배우들이 홍콩 배우들보다 연기를 잘해도 언어 문제로 할리우드 진출에 난관이 있는게 사실이다.
: 박중훈의 예가 있지만 사실상 한국 배우가 할리우드 진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네버
포에버>로 할리우드에서 제의도 들어오고 있다. 할리우드 진출의 가능성이 점차 열리는 걸 실감하지 않나.
하정우 : 할리우드로 진출하자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용서받지 못한 자>로 깐느에 가서 느낀게 많다. 한국 내에서의 성과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좀 더 크게 보자 싶었다.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서 한 명에게라도 더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운 좋게도 그런 여지가 있고, 그런 길이 보여서 채널을 넓혔다. 물론 처음엔 고민도 했다. 독립영화이다 보니 대중적이지 않고 70% 정도가 영어대사라 좀 어색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작품 캐스팅을 맡았던 사람과 이제는 연이 닿아서 오디션을 주기적으로 보고, 좋은 분들 만나면서 길이 넓어진 것 같다.
: 홍콩 촬영분을 찍어뒀다고 하더라도 지금 촬영은 그날그날 바쁜 것 같다.
하정우 : 매일매일 빠듯하게 돌아가는 드라마 제작 환경에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사실 나 자신이 문제다. <숨> 때부터 연기를 하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안에서 끌어내야 하는데 뭔가를 못 찾고 있는 것 같다. 여러 편 작품을 연달아 보니 내가 가진 것이 소진된 것 같기도 하고. <히트> 역시 그런 바쁜 마음가짐에서 출발했지만, 어쨌든 또 상황에 처하면 달리는 수밖에 없다.
“변화보다는, 배움의 자세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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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바쁘게 달려왔다면 스스로는 아쉬운 점들도 많을 것 같다.
하정우 : 지난해 말이 좀 아쉬웠다. <네버 포에버> 끝나고 3개월간의 시간을 그냥 허비한 기분이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도 열심히 하지 못했다. 드라마 <9회말 투아웃>을 비롯해서 출연하려던 두 작품이 들어가질 못했다. 돌아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그때 그냥 확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걸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 DVD 모으는 취미는 어떻게 됐나. 이렇게 시간이 없어서야 정작 하정우의 취미생활은 물
건너갔겠다.
하정우 : 그래도 할 건 한다. 요즘은 LP에 빠졌다. 재즈를 LP로 듣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는데 마침 친구들에게 LP 플레이어를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회현 지하상가로 LP판을 사러 다닌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건 베토벤 전집이다. 지지직거리는 느낌이 너무 좋다. 클래식한 걸 좋아한다. 삶의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 같다. 사람들이 유기농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
: <히트>를 통해 ‘배우 하정우’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정우 : 이 드라마로 내가 어떻게 되겠다, 어떻게 변하겠다는 것보다는,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 크다. <숨> 찍을 때까지는 내 안에 있는 걸 소진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숨>이 끝나고 나니 ‘내가 배워야겠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연기하니 편해지고, 쉽더라.
: 도대체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배우다. 다음 작품 계획은 또 어떤 ‘서프라이즈’인가.
하정우 : 드라마는 5월 20일에 종영한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시간이 어떻게 갈지 모르겠다. 끝나면 바로 여행 가려고 한다. 휴양지로 가고 싶다. 깐느 시즌이라 그쪽으로 가서 놀고 싶기도 하다. 갔다 오면 할 윤종빈 감독과의 작품도 구상 중이다. 매일 전화로 작품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다. 또 드라마 한 편과 할리우드 진출작도 논의 중이다. 아직은 어떤 작품을 먼저 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글) 이화정 zzaal@t-fac.com
(사진) 백가현 beck@t-f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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