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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체볼이 있다. 통통통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손에 쏙쏙 들어오는 작고 야무진 공. 하정우의 변신은 얌체볼을 꼭 닮았다. 다음
행보를 좀체 가늠할 수 없지만 그의 변신에는 손에 잡을 수 있는 확고한 이유와 설명이 뒤따른다. 드라마 <히트>로 고현정과 호흡을
맞춘다고 했을 때, 하정우의 선택은 분명 급작스러웠다. <용서받지 못한 자> <시간>으로 해외 영화제의 한참 주목을 받고
있었고, 개봉을 앞둔 미국 독립영화 <네버 포에버>의 주연배우로 한참 새로운 시도를 하는 참이었다. 누구도 하정우가 그렇게 갑자기
TV 브라운관을 택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정우는 자신이 지금 이 시점에 <히트>를 택한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국제영화제에서 이름을 알리다가, 정작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을 환호해주는 대중과의 끈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날
때부터 잘난 남자, 그러다가 사랑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히트>의 김재윤 검사는 그가 대중과 직접적으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고, 하정우는 그걸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본능이 가르쳐준 길을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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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감독의 <시간>(좌)과 <숨>(우). 김기덕
감독은 하정우를 ‘놓치고 싶지 않은 배우’라
평가한다. | |
돌이켜보건대 하정우는 셈이 빠른 배우다.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의 보디가드로 간신히 얼굴을 알렸을 때, 그는 연달아 쏟아져
들어온 멜로드라마의 ‘재벌 2세’ 주인공 자리를 과감히 물리쳤다. 때마침 먼저 촬영을 마친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부산영화제의 호평과 깐느의 블루 카펫을 밟을 때였으니, 이 정도의 탄력이라면 그를 만방에 알릴 절호의 찬스였다. 그럼에도 그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 <시간>으로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다. 당시 김기덕 감독은 ‘내 영화는 절대 국내 개봉 안 한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였고, 하정우는 개봉도 안 할 영화에 덥석 출연하는 간 큰 신인배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비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드라마에서
비슷한 역할로 몇 번 등장하고 나면, 사람들은 항상 그 이미지만을 요구한다. 그렇게 내 자신을 사용하는 것보다, 모험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 싶었다.” 선택은 빗나가지 않았다. 공격적인 야생성을 간직한 김기덕 영화의 이전 영화의 남자와 하정우가 연기하는 지우는 어느
하나 접점이 없었다. 여자친구를 위해 손수 음식까지 만들어주고, 떠나간 애인을 잊지 못해 매일 카페에 가 감상에 사로잡힌 지우는 김기덕 영화의
새로움을 알려줄 페르소나였고, 하정우는 그 중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스스로를 깨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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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받지 못한 자>(좌) <구미호 가족>(우)
하정우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 |
“<용서받지 못한 자>를 하면서 연기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자세를 배웠어요.” 하정우의 본격적인 데뷔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용서받지 못한 자>는 스스로 가장 어려울 때 자신을 북돋아준 작품. 그는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연기를 전공하면서 대학에서 연극무대에도 숱하게 섰지만, 그의 최종 목적은 어디까지나 충무로였다. 어느 때든 충무로로 갈 수
있도록 그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게 여의치 않았다. 오디션을 보는 족족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 했고 점점 자신감도
희박해졌다. 한번은 최종 오디션까지 통과하고 배역을 위해 머리까지 기른 상태였는데, 막상 촬영 당일 날 캐스팅이 번복된 적도 있다. 쓰라린
경험이었다. 그때 마음을 추스르고 매달린 작품이 바로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윤종빈 감독의 졸업 작품으로 아마추어들이 모여
‘공부하듯’ 매달린 이 작품은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때부터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드는 것. 그건 결국 어떤 변화에도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었다. ‘예술 영화’의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 믿음을 배반하고 추석용 대중 영화라 할 수 있는 <구미호
가족>의 덜떨어진 아들로 분했다. 김진아 감독이 연출하는 할리우드 합작 독립영화 <네버 포에버> 역시 색다른 시도였다. 백인
여성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야성적인 동양인 불법 체류자 역할을 하면서 할리우드 시스템에 자신을 맡기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전체 70%에
가까운 대사를 영어로 소화하는 것에 부담이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할리우드 영화는 남의 영역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근 김기덕 영화
<숨>에서는 주연이 아님에도 기꺼이 시간을 쪼개 출연을 했다. 사형수를 사랑하는 아내를 둔 외도하는 남편은 지금까지 하정우가 보여준
모습과 달리 차갑고 독단적인 면모로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누구도 가지 않은, 누군가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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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버
포에버> | | 다양한 방향, 다작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하정우에게 그것이 과연 가능한 도전이냐를 묻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돌이켜보면 연기는 그가 골똘히 생각해서 짜맞춘 것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생활이었다. 대한민국에 누구 하나 모르는 이 없는 배우 김용건의 아들, 집에 놀러오는 손님 모두가 배우였던 어린 시절. 그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몸에 익혔다. 이미 체화된 연기는 그의 무기다. 그는 이 연마한 무기를 그냥 창고에 썩혀두길 원치 않는다. 조금만 길을 달리하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대한민국 어느 배우도 지금껏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길을 모색하려 한다. 물론 좋은 배우라는 최종 목표는 여느
배우 못지않다. 최종 목표를 향한 그의 길이 하나 아닌 열, 아니 백이 되더라도 그는 혼돈하지 않고 나아갈 자신이 있다.
(글) 이화정 zzaal@t-f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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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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