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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황인뢰식 감수성 다시 살아나는가?
MBC 수목극 ‘궁’의 연출자인 황인뢰PD는 80,90년대 MBC에서 독특한 연출력으로 각광를 받았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연출을 시작한 황인뢰는 ‘연애의 기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창밖에 태양이 빛난다’ ‘샴푸의 요정’ ‘고개 숙인 남자’ ‘도시에서의 사랑’ 등 섬세하고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연출했다.

MBC ‘베스트셀러극장’은 황인뢰식 감수성을 듬뿍 묻힌 영상어법으로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당시 MBC가 ‘드라마왕국’을 수립하는데 황인뢰는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그는 97년 영화 ‘꽃을 든 남자’도 만들었지만 TV 드라마와 달리 영화에서는 만족스런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한동안 사라졌다. 그리고는 TV로 다시 돌아와 ‘한뼘드라마’와 같은 실험적인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다.

황인뢰는 개성이 매우 강한 연출자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는 말을 뒤집고 드라마도 감독의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대사 의존도를 낮춰 서정성과 이미지를 강화한다. 인물의 대사로 거의 모든 것을 전달하는 대신 미장센이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탐미주의 프로듀서’니 ‘스타일리스트 PD’니 하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그런데 이런 황인뢰식 스타일이 요즘처럼 정형화되다시피 한 미리시리즈물(트렌디물)에는 어색할 수 있다. 대사 위주의 스피디한 진행과 인물을 따라가는 고정된 카메라 워킹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황인뢰의 연출을 지루하고 낯설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TV를 보며 집중을 하지 않는 시청자는 황인뢰 작품에서 놓치기 쉬운 것들이 많다. 다시 보면 미학적으로나 드라마 문법적으로나 멋있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대중성에서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황인뢰의 진가를 아는 사람은 대부분 그와 다시 인연을 맺는다. 제작사인 에이트픽스의 송병준 대표는 황인뢰 드라마의 음악을 담당했던 인연으로 회당 제작비 2억5천만원인 ‘궁’의 연출을 맡겼고, 황태후 역할을 하는 김혜자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출연해 황인뢰와는 절대적인 신뢰를 쌓아 이번에도 출연하게 됐다.

채경(윤은혜)과 신(주지훈)의 대사는 절제돼 있다. 채경의 분위기와 표정, 동작 하나하나도 의미를 지니며 곰 인형, 각종 사진 등 소품들도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채경이 신의 등에 집착하는 것도 기호적 의미를 지닌다.

황 PD는 처음에는 윤은혜 캐스팅을 원하지 않았고 ‘X맨’에서 나온 윤은혜를 보고나서는 더욱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윤은혜를 만나면서 씩씩하고 기존의 고정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장점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좌우당간 윤은혜의 캐스팅은 성공적이다. 윤은혜는 뛰어난 연기력이 없어도 가진 것만 끄집어내면 되는 것이다.

황 PD가 인터뷰에서 “채경은 다큐멘터리 찍는 기분으로 찍는다”고 말한게 이런 점과 관련이 있다. 윤은혜에게 회당 출연료 200만원으로 이 정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면 효용가치는 꽤 높은 셈이다.

독특한 설정의 학원로맨스물인 원작만화의 줄거리에 미장센을 중시하는 연출을 가미한 방식에 10대들이 열광하고 있다. 전통과 현재가 함께 하고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기에 30~40대도 매력을 느끼고 있다. 궁전내 권력투쟁이 존재하고 골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격방과 마상격구 등 우리 전통 놀이를 옮겨놓는 섬세함도 돋보인다.

황인뢰 감독은 자신의 섬세한 영상미학으로 신구의 어우러짐을 표현해 다양한 세대가 즐겁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헤럴드 생생뉴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





2006-02-07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