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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녀(醫女) 예진아씨의 진료 대상은..? 2003-06-23
‘허준’의 의녀(醫女) 예진아씨는 조선이라는 유교중심 문화권에서만 존재 할 수 있었던 독특한 의료인!

조선초 사대부집 부녀는 중병이 들어도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것을 거부해야만 했던 의료의 사각지대였다. 이 때문에 태종 6년(1406년) 제생원 허도의 건의에 따라 의녀제도가 만들어졌다.

의녀는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한국적 유교주의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금남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한지(限地) 여의사이며 때로는 여순경이기도 했다. 따라서 단순 간호뿐 아니라 진맥과 침뜸을 익혀 부인들의 질병을 직접 진찰하고 치료했고, 수요가 많아 제생원과 전국 각 지방관서의 요구를 충당치 못할 정도였다.

세종 세조 및 성종의 3대에 걸쳐서 의녀제도는 양적 질적으로 발전하여 저명한 의녀가 많이 배출되었다. 세종때 소비와 세조때 접상이 있었으며 특히 성종 때는 치과치료에 재주가 뛰어난 장덕라는 제주도 의녀도 있었다.
특히 세조 때 중추원부사 이순지의 딸과 동거한 여장남자 사방지를 체포할 때 의녀가 투입되어 은밀한 곳을 검사해서 중성임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때에 이르러 의녀는 창설당시 임무와 달리 공공연히 연회에 불려나가 기생 노릇을 해야 했다. 연산을 몰아낸 중종은 이런 의녀의 임무 이탈을 엄금하였으나 한번 흐려진 의녀의 풍기는 명조 선조 때에도 계속되어 근세에는 ‘약방기생’이라는 별칭마저 얻게 됐다.


의녀 예진이 허준과 유의태 문하에서 의학을 수학하며 애틋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동문사이라는 것은 드라마적인 허구이다.
그러나 당시 의녀를 기생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의태 문하 의료인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예진의 자세는 의녀의 역사를 볼 때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4월 27일 동아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