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순이’ 김민희가 조선시대 의녀(醫女)가 되어 TV에 돌아왔다. MBC 월·화 드라마 ‘대장금’에서 내의원 훈육의녀 ‘비선’ 역이다. 제주도에 귀양간 장금(이영애)이 궁에 돌아와 새로 만난 얼굴 중 하나로, 군대 내무반의 ‘군기 반장’에 해당하는 배역이다.
“제가 올해 만 서른두 살인데, 시청자들은 아직도 저를 여섯 살 때 별명 ‘똑순이’로 불러요. ‘똑순이’는 그만큼 제게 영광이고 짐이지요. 한때 속상했지만 이젠 괜찮아요. 설마 제가 마흔이 되도 사람들이 절 보고 ‘똑순이’라고 부르겠어요?”
김민희는 ‘달동네’ ‘호랑이 선생님’ 등 70~80년대 드라마에서 아역을 도맡았다. 어른 탤런트 뺨치게 인기를 누렸던 그 시절 김민희는 꽤 고달팠던 것 같다. 가령 결석을 밥 먹듯 했던 초등학교 시절, 어쩌다 학교에 간 날 같은 반 아이들이 김민희의 책걸상을 치워버렸다. 중학교 입학 후 그런 일이 없어졌다. 김민희가 ‘학교 짱’이 됐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짱’의 책걸상에 손을 대겠는가.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아버지는 불혹을 갓 넘긴 나이에 과로사했다. 김민희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녀가 집안의 가장이었다. 김민희는 “어린 나이에 돈 버느라 고생이 막심했다”고 서러워하는 대신, “우유도 안 먹고 너무 바쁘게 돌아다녀서 키가 안 큰 것이 천추의 한(恨)”이라 능청을 떨더니, “돌이켜보면 서른여덟 살에 딸 둘 데리고 홀몸이 된 엄마가 나보다 훨씬 안쓰럽다”고 했다.
김민희는 88년 KBS 청소년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이미연·최수지·이상아와 함께 출연했다. “저만 빼고 다 청춘 스타가 됐어요. ‘실패한 아역배우의 대표적 인물’로 저를 거명한 기사가 났는데, 그 밑에 누가 ‘키가 작아서 안 뜬다’는 댓글을 달았어요. 저를 두 번 죽인 말이지요.”
김민희는 “20대 초반엔 억울하고 초조했다”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연기에는 자신 있었지만 성인 배역이 들어오지 않았다. “확 벗지 않으면 모를까, 넌 한국에서 뭘 해도 안 된다”는 감독도 있었다. 김민희는 “너무 괴로워서 만날 술 먹었다”고 했다. 그 무렵 별세한 외할머니의 유언이 “민희야, 밤에 제발 일찍 귀가해라”였다.
김민희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갔다. 그때 난생 처음 배우가 아닌 시청자 입장으로 마음 편하게 TV를 봤다.
“다른 아역 출신 탤런트들의 연기를 보고, 배우가 아무리 아등바등 열심히 해도 연기는 역시 보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깨달았지요.”
배우가 자신의 실패담을 소재로 듣는 사람을 쥐었다 폈다 하며 깔깔 웃게 만들 때, 그 배우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청춘이 다 가기 전에 일찌감치 절정과 조락(凋落)을 두루 경험한 사람만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웃으면서 치고 올라올 줄 안다. “도(道) 닦으셨나요?” 했더니, 김민희는 “아니요, 애 낳고 철들었어요. 그래서 사실 철든 지 얼마 안 됐어요” 했다.
다섯 살짜리 딸을 둔 연기 경력 26년의 이 고참 배우는 “장차 탤런트 임현식 같은 감초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연기자 말고 생각해본 직업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트로트 가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