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 특별기획 ‘대장금’(김영현 극본·이병훈 연출)은 구름 한자락 없는 청명한 가을하늘처럼 ‘완성도 높은’ 초대형 사극이다. 50회분 드라마의 제작비가 70억원에 이른다. 감독부터 출연배우, 그리고 뒤에서 받쳐주는 제작진까지 모두 프로페셔널이다. ‘허준’(99~2000년), ‘상도’(2002년) 등 30년 넘게 사극을 연출해 온 베테랑 이병훈 PD를 비롯해 투명한 얼굴과 특유의 감수성 어린 연기의 주인공 이영애, 그리고 5회까지 사극의 꼭짓점을 이뤘던 아역 조정은의 눈부신 연기가 정확히 맞물리면서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장금’은 청와대 영양사에 해당하는 수라간 나인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천한 신분에서 왕이 먹는 궁중음식을 만드는 최고 요리사가 되고, 거기다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조선 최고의 의녀가 돼 훗날 ‘대장금’으로까지 칭송받은 중종(1506~1544) 때의 실존인물 ‘장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부 묘사는 ‘왕조실록’ 등 옛 문헌과 전문가들의 고증에 따랐다. 한 시대를 아우르는 사극의 경우, 주인공이 대부분 왕이나 귀족 등 상류층이지만 대장금은 궁중요리사와 의녀, 즉 삶의 뿌리인 민중에 초점을 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내용면에서도 진부한 권력의 암투극이 아닌, 전통 봉건시대 커리어우먼의 성공이야기를 담고 있어 신선하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해서인지 인기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시청률 조사 전문업체인 TNS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 15일 17.3%의 시청률로 시작한 대장금은 어린 장금의 열연으로 21%로 올랐고, 이영애가 등장한 6회 이후부터는 28%로 상승세다. 6일 같은 시간대에 방송돼 ‘사극 결투’로 관심을 모은 ‘깜불독’ 김재형 PD의 ‘왕의 여자’(11.9%)와의 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인기연예 검색어 순위에서도 선두를 찜했다. 복받은 가을, 새털구름 사이로 내뿜는 대장금의 마력은 무엇일까.
● 섬섬옥수 손놀림
드라마 전반부의 주요 무대는 궁중요리의 산실인 수라간이다. 왕의 음식을 준비하는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장금의 신비롭고 화려한 손놀림이 입맛이 돋운다. 이영애는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 원장에게 직접 배운 신선로, 오미자차, 타락죽 등 오감을 자극하는 궁중음식을 선보인다. 50부로 그려질 드라마에서 장금이 수라간 나인으로 일하는 18부(11월 11일)까지는 음식에 중점을 두고 그 이후부터는 의녀로 변신한 장금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후반부에는 건강을 소재로 한 전통문화를 재미있게 그릴 작정이다. 이영애는 궁중요리사 자격증을 딴 이후부터는 ‘허준’의 전광렬이 강습했던 동국대 한방병원 한의사들로부터 배운 침술을 뽐낸다.
귀중한 수라상을 차리기 위해 조심조심 음식을 내려놓고, 혹 실수나 하지 않을까 파르르 떨리는 장금의 침술 놓는 손끝이 시청자들의 눈에 새겨질 듯하다.
● ‘허준’의 아류작?
‘대장금’은 4년 전 이병훈 PD가 제작한 초대형 히트작 ‘허준’과 비교해 볼 때 비슷한 점이 많다. 현대극처럼 작품의 큰 줄거리를 상상에 의존하기보다 역사적 고증과 실재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일단 비슷하다. 주재료를 뒤집고 남녀의 역만 바꿔 놓았을 뿐 성공스토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맥락은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방영 초반에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인본주의에 근거한 성공 이데올로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인물만 바뀌었지 4년 전 허준과 별반 다른 점이 없다’는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하지만 극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런 통념이 깨지고 있다.
“같은 성공 이야기지만 ‘대장금’은 불리한 처지를 극복하며 순수한 노력으로 운명을 극복해 나가는 점이 다르다”는 이 PD의 설명처럼 ‘대장금’은 사극 역사에 새겨질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 화려한 조연
‘대장금’에는 주연 이영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출연진만 수백명에 이른다. ‘대장금’에서는 생각시, 수화병 등 500여명의 조연이 맹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있기에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중년 연기자들의 빛나는 열연이 극중 재미를 더하고 있다. 술 제조의 대가로 궁중에 연회가 있을 때면 수라간에 불려오는 남자숙수 덕구 역을 맡은 임현식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따뜻한 심성에 뛰어난 요리솜씨를 지닌 한 상궁 역의 양미경도 눈부신 연기로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이밖에 덕구의 처로 남편을 쥐고 흔드는 금보라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가 ‘약방의 감초’처럼 흥미롭다. 금영(홍리나)의 고모인 최 상궁 역을 맡은 견미리, 비서를 한 상궁에게 물려주려는 수라간 정 상궁 역의 여운계도 열연하고 있다.
● 애호 대장금
지난달 초에 종영한 ‘다모’에 열렬팬 ‘다모 폐인’이 있었다면, ‘대장금’에는 ‘애호 대장금’이라는 팬이 존재한다. 아직 ‘다모 폐인’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2만여명의 네티즌이 ‘애호 대장금’에 가입하며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방송 내내 제작진, 출연배우와 눈에 보이지 않는 교감을 형성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쌍방향 드라마’를 실현하고 있다.
‘대장금’은 이런 분위기를 한층 더 강화해 아예 드라마 제작진과 출연진이 고정적으로 글을 올리는 게시판을 따로 마련해 대장금 팬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병훈 PD는 “시청자와 제작진의 꾸준한 인터넷 대화를 통해 시청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