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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망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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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균,2005-07-27

일본 망언의 뿌리

 


  「천황의 나라 일본」 5부작 다큐멘터리가 방송(8월 7일부터)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이 시리즈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닌데, 이 기획과 통하는, 예전에 썼던 글 네 편을 여기에 옮긴다. 본래 "미디어 오늘"에 <교양PD의 세상보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다가 졸저 「비극은 행진으로부터 시작된다」(들린아침)에도 실린 글들이다.


   할 말 다하는 박력남(?) 이시하라


  오는 9일 일본의 중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일본 정치인들의 미친 말들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미친 말 시리즈야 유구한 전통을 자랑한다. 미친 말 한 마디 해놓고 문제가 되면 곧바로 “실수였다, 책임지겠다” 하며 자리를 내놓는 게 그동안 일본의 얄미운 관례였다. 하지만 요즘은 양상이 다르다. 문제가 되어도 버틴다. 실수가 아니라 그게 진실이라고 항변한다.


   지난 10월 28일, 일본의 대표적 꼴통보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왼쪽 사진) 도쿄도 지사가 “한일합방은 조선인이 선택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자, 2000년에 이미 ‘삼국인이 일본에서 흉악범죄를 일으킨다’고 말한 전력이 있다. 문제가 됐던 것은 ‘삼국인’이란 단어였다. 이에 대해 이시하라는 ‘삼국인이라는 말은 단지 외국인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사전에도 삼국인은 외국인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삼국인’이라는 말은 일본 제국주의와 인종주의가 흘레붙어 생긴 말이다. 즉, 45년 전후에 재일조선인이나 중국인 등을 일컫는 말로 민족적인 차별과 경멸의 느낌이 결합해 있다. 2차 대전 후,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오른쪽 사진)가 ‘삼국인’ 발언을 해 재일조선인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은 게 좋은 예이다. 차별적인 용어라는 이유로 쓰이지 않던 말이 이시하라를 통해 부활한 것이다. 이 자, 그래도 일본에서 꽤 인기있는 사내다.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겸양을 내세우는 일본인들에게 ‘할 말 다하는’ 박력있는 사내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물론 20세기의 아픈 역사를 겪은 우리로서야 피가 거꾸로 솟구칠 일이지만 잠시 참고 우선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한반도가 분열돼 의견이 통일되지 않으니까, 조선인 총의로 러시아?중국?일본을 택할까 하다 근대화가 뚜렷하고 얼굴색이 같은 일본인의 도움을 얻으려고 전 세계 국가가 합의한 가운데 합병이 이뤄졌다. 즉, 조선인의 총의로 일본을 선택한 결과 한일합방이 이루어졌으며, 일본은 결코 무력으로 침범하지 않았다", "한일합방을 100% 정당화할 생각은 없고, 그들의 감정으로 볼 때 화가 치밀고 굴욕적인 일이겠지만, 어느 쪽인가 하면 책임시비를 가린다면 조선인 선조의 책임이며, 일본의 식민주의는 좀더 선진화된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이었다."


  사실 이런 말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본의 꼴통보수들이 숱하게 해온 말이다. '조선인 선조'에 책임을 지우고 일본의 식민지주의는 '인간적'이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고맙게도 지난 11월 1일자 마이니치신문에 기고한 니시오 간지(西尾幹二)-이 자는 누군가?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을 주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대표였다-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나섰다.


  니시오는 "20세기 초까지 한반도는 법의 공정성도 없고 부(富)의 합리적 배분도 없는 지금 북한의 김정일 체제와 같은 극빈열악한 비인간적인 상태였다…한국인은 이대로 일본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보다 합병을 해서 세계 1등 국민으로서 일본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100만 명이 넘는 일진회가 합방을 요청하는 정치적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며, 한국인이 일본과의 합방을 열렬히 원했다는 증거는 "일본제국의 군인이 되겠다는 한국인 지원병의 경쟁률이 1938년에 7.3 대 1,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30만여 명이 응모해 47.6 대 1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조선인 선조가 왜 책임을 져야 하고 일본이 왜 인간적인지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세계 1등 국민이 되고 싶어서 일본과의 합방을 원했고 일본은 관대하게 그것을 받아들여 일등국가로 가는 길을 열어 줬다는 것이다. 그 다음 이어질 말이야 그가 말하지 않더라도 뻔한 것이다. 한국의 해방은 몹시 안타깝게도 일등국가로 가는 탄탄대로를 가로막아 버린 것이다. 한국이 그나마 이 정도로 살게 된 것은 일본의 식민 통치 덕이다…. 그야말로 궤변이지만 흥분하지 말기로 하자. 대신 이시하라와 니시오가 드러내 주는 일본 정신의 정수에 주목하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은 이른바 '탈아론(脫亞論)'을 억지로 한국에, 또 아시아에 꿰맞추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벗어나기

 

  일본은 근대화와 더불어, 구미 열강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나라다. 일본의 근현대사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탈아입구(脫亞入歐)'이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시아를 벗어나 구미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탈아론을 맨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오른쪽 사진)이다. 1885년이었다.


 

  탈아론의 유명한 대목을 보자.


"서양 문명인의 눈으로 본다면, 중국과 조선을 보는 시선으로, 우리 일본을 평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오늘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우리 일본은 이웃 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번영시킬 여유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운명을 서구의 문명국가와 함께 하는 게 낫다. 중국과 한국을 대우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아무 특별한 대접이 필요치 않다. 그들은 그냥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대접하는 방법에 있어서 서양인들의 태도를 단순히 따르자. 나쁜 친구를 소중히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나쁜 평판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우리 마음으로부터 아시아에 있는 우리의 나쁜 친구들을 지워버리자."


  아시아를 벗어나 서양인들의 태도를 따르자, 이것은 구미 세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열망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서양의 문명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탈아입구의 열망은 일본을 군국주의로 나아가게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패배는 일본의 열등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식민지배와 전쟁의 책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할 파트너를 잘못 선택했다는 빗나간 반성으로 이어졌다. 패전 후 일본 수상이었던 요시다 시게루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언급한 것처럼, 역사는 입증해준다. 한 세기 훨씬 이전에 일본의 문을 서구에 연 이래로 일본 정책의 기본 원칙은 대영제국과 미국과의 가깝고 진심 어린 정치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일본이 이 기본 원칙을 떠나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었던 것이 우리나라가 경솔하게 무모한 전쟁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가장 힘이 센 놈을 친구로 삼았어야 했는데, 그보다 못한 놈과 사귀었기 때문에 얻어맞고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한테 얻어터진 놈이야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일본은 미국 점령군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굴욕을 달게 참아낸다. 미국의 인종주의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요시다는 일본인들에게 미국인을 잘 대해 주도록 촉구한다. 왜냐면 나를 비록 못 살게 굴지만 제일 힘이 센 것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탈아입구'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후 일본은 한번도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형식적으로 미군 점령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끝나지만-에서 벗어나려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오히려 미일안보조약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미국의 똘마니가 되기를 원했고 그렇게 되었다. 존 프라이스의 말을 빌리자면, '미국과의 냉전 연대에서 일본의 열등한 지위는 제도화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부르짖었을 때 일본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는 것이 그 예이다.

 

  일본의 유전인자


  다시 우리의 박력남(?)에게로 돌아가자. 그는 그의 말에서 저 일본 근대 정신의 비밀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탈아론! 그것은 국가의 수준을 나쁘고 못난 친구, 나, 힘세서 좋은 친구, 이렇게 단선적으로 파악한다. 나쁜 친구인 조선이 일본과 친해지고 싶어했기 때문에 일본은 관대하게 친구가 되어 주었다(사실 이 비유는 틀린 것이다. 힘센 친구처럼 똘마니를 두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하다), 일본은 좋은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이 말은 결코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박력남이 다시금 드러내는 것은 일본인들의 뿌리깊은 정체성의 혼란이다. 서구에 다가가고 싶으나 서구가 되지 못하는 열등감을 다스리는 방법은 아시아이면서 끊임없이 아시아이기를 부정하고 아시아에 대해서 우리는 우월하다고 되뇌는 것이다.


  박력남의 미친 소리에 일본 열도는 열광한다. 박력남이 일본인들의 우월감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2003년 4월 13일 도지사 선거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 무려 300만 표를 얻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렇게 막강하게 일본인들의 피에 녹아 있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왼쪽 사진)는 이 탈아론의 유전에 대항하고 비난했다. "일본인들은 패배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전체 근대화 계획을 취소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찾았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로서 일본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공존을 생각하는 대신에 다시금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다."


 

('온라인 미디어 오늘-교양PD의 세상보기'에

기고한 글, 2003.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