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진 한 장으로 열등감을 확인하다

한 장의 사진 속에는 두터운 책으로 담아야 할 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도 하다. 1945년 9월 27일에 찍힌 이 한 장의 사진은 얼핏 보아 아주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이 한 장의 사진 속에는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1880∼1964) 장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신만만함, 혹은 오만함과 히로히토(裕仁.1901∼1989)
천황으로 대표되는 패전국 일본의 열등감, 혹은 비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맥아더와 히로히토가 이렇게 마주 서서 사진을 찍는 순간, 이후
6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불평등한 수직 관계는 결정되고 말았다.
1945년 9월 2일 전함 미주리호(USS Missouri) 선상에서
일본의 항복 선언을 받은 후, 맥아더와 연합군은 도오쿄오(東京)에 진주했지만, 맥아더는 천황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만나러 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맥아더의 집무실은 해자를 사이에 두고 황궁이 내려다 보이는 다이이찌(第一) 빌딩에 있었다. 그는 일본 제국의 천황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연합군이 도오쿄오에 진주한 지 20일째인 1945년 9월 27일, 오전 10시가 되자 황궁 차고에 있던 천황의 구형 벤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를 만나기 위해 히로히토 천황은 미 대사관저로 향했다.
천황이 맥아더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황궁을 나섰다는 것 자체부터가 일본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원자폭탄의 폐허 속에서도
히로히토 천황의 학같은 옥음(玉音)-일본인들은 히로히토의 가늘고 높은 목소리를 학의 소리라 했다- 한 마디면, 일억옥쇄(一億玉碎)를 마다하지
않겠다던 일본인들이 아니던가. 그 신과 같은 존재가 황궁을 나서, 일본의 새로운 쇼군(將軍)을 만나러 가다니. 그것도 일본의 패전을 인정하고 새
주인인 미국에 복종을 맹세하기 위해서 말이다.
대사관저에 들어서서 연합군 측의 한 사람이 모자를 받아들었을 때 히로히토의 손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는 문 앞에서 맥아더를
보자마자 하인들이 인사를 하듯 고개를 아주 낮게 숙이고 인사했다.
미국 대사관저에서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만남이 어땠는가는 사진 한 장에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맥아더의 장대한
체구가 우선 왜소한 히로히토를 압도했다. 맥아더는 정복이 아닌 전투복에 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 양손을 뒷주머니에 꽂아넣은 채 짝다리를 짚고 서
있다. 턱을 당긴 그의 얼굴은 근엄한 표정이지만, 히로히토는 턱을 약간 처들고 계면쩍은 웃음기를 흘리며 'O'자 모양으로 굽은 다리를 볼품 없이
벌리고 서 있다. 그나마 그가 입은 양복 상의는 소매가 지나치게 짧다.
사진은 미국인들에게 승리의 진정한 증거, 미국의 힘을 과시한 극적인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맥아더의 전쟁(MacArthur's
War)」를 쓰기도 한 미국의 역사학자 스탠리 웨인트럽(Stanley Weintraub)은 2003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그 사진을 이렇게 평했다.
"천황은 잘 맞지도 않는 구식 예복을 입고 있었고, 맥아더는 격식을 차리지 않은 채 평소처럼 자신의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맥아더는 천황보다 약 18인치나 더 컸습니다. 천황보다 훨씬 높이 서서, 매우 거대한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패배한 천황과 승리한 장군, 이들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맥아더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했던 신과 같은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언론은 거대한 맥아더와 왜소한 히로히토의 사진에 질겁해 편집을 거부했지만,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명령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에드워드 베르(Edward Behr), 「히로히토, 신화의 뒤편」). 그 사진이 일본 열도에 가한 충격은 엄청났다. 패배한 일본,
미국보다 열등한 일본의 운명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맥아더의 생일이면, 교사들은 초등학생들을 동원해 다이이치 빌딩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맥아더가 모습을 드러내면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을 부르게 했다.
당시 맥아더의 비서장으로 근무했던 프랭크 색턴(Frank Sacton)은 나에게, 일본인들의 맥아더에 대한 열광을 이렇게
말했다.
"맥아더 장군이 다이이치 빌딩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늘 수많은 일본인들이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맥아더를 매우 위대한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4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맥아더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맥아더를 미국 대통령으로!"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내 걸렸다. 한 의원은 한 술 더떠 일본을 미국의 한 주로 편입시키자고 제안했다.
맥아더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광,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열등감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히로히토와 맥아더의
사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힘의 우열이 분명해 진 순간에, 자신의 열등한 위치를 보상받기 위해, 그들은 강자에게 기껍게 복종하기를 택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미국과 가깝게 지내지 않고 독일·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었던 것이 경솔했다는 당시 일본 수상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뼈아픈
후회가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 공유되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뒤늦은 반성을 계기로 미국 섬기기에 나섰고 그것은 전후의 확고한 질서로 자리잡았다. 그것이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사진 한
장이 상징하는 역사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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