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0의 ‘같기道’를 아십니까? 흔히 방송이나 신문보도에서 “아무개가 뭐뭐라고 주장했습니다”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면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기사를 쓸 경우 “경찰은(검찰은) 아무개가 어떠어떠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라고 하는데 반대로 피의자나 피고인 등 즉, 나쁜 사람들로 인식되는 사람들이나 그쪽 변호사들이 하는 말들은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이에 대해 OO씨(또는 OO측)는 뭐뭐라고 주장했습니다”라고 기사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밝혔다>는 내용은 ‘사실’이지만 <주장했다>는 내용은 ‘어차피 나쁜 사람들의 얘기니까 그냥 참고만해라’라는 기자의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거꾸로 경찰이나 검찰이 공금 횡령이나 수사무마 청탁 등으로 도마에 올랐을 때 기사멘트는 이렇게 바뀌게 된다. “서울 중앙지검 김 모 검사는 이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사안에는 이처럼 시청자나 독자들이 알게 모르게 기자 개인이나 데스크의 판단이 녹아있거나 숨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장했다>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부인했다><설명했다><해명했다>등등이 있지만 현재로선 <말했다>가 그나마 제일 나은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했다>라고 표현하면 약간 기자들이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고 그동안 ‘언론사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놓으신 분들’은 언짢아하실 수도 있다. 언론사가 식재료만 제공했을 뿐 한식이든 중식이든 퓨전이든 밥상은 본인 구미에 맞게 차려드셔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 2007년 4월 8일부터 7,8분 분량의 새로운 코너를 만들었는데 바로 이런 고민이 담긴 [2580 Minutes(미니츠)]이다. 2580分, 43시간을 전후로 벌어지는 우리 주위의 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는 것이다. 일단 화면이나 사건·현상에 대한 기자의 코멘트가 비교적 적다. 대신 시청자분들이 드실 싱싱한 식재료(화면, 인터뷰, 현장음)를 듬뿍 제공하는 선에서 살짝 빠진다. 시청자가 스스로 보도물을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단 기자는 얼마나 화면과 내용을 물흐르듯 연결시키는가에 대해 더욱 고민을 해야 할것이다.
첫 번째로 마련한 주제는 [소방관]이었다. 나는 [2580 미니츠]는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용어를 차용해서 ‘2580의 같기 道’라고 말하고 싶다. 2580分, 이건 하루인
것도 같고 이틀인것도 같다. 리포트인것 같기도하고 영상물인것 같기도 하다. 둘 다 아닌것 같기도 하다. 소방관의 경우를 봐도 소방관들의 활동이나 사연을 과연 43시간만 살펴보는건지 아니면 반드시 43시간이 이어져야하는 시간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리가 안돼 있는 것이다. 그만큼 실험적이다. 소방관들에 대한 이야기는 강남소방서 권영식 소방장(55살)과 성동소방서 김성성 소방교(40살)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8일 정도 따라다녔지만 실제로 방송된것은 어느 하루와 그 다음날 퇴근이후의 모습이었다.
<강남소방서에 도착하는 권영식 소방장>
서울 강남소방서 권영식 소방장은 올해 55살로 ‘불잡이’ 경력 29년이다. 최근 진급에서 떨어졌다. 정년이 3년 남았는데 그 전에 소방서의 간부급이 될 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대원들은 없었다. 그는 아침 6시에 분당집을 나와서 탄천변을 40분간 달리다가 내려서 자전거 핸들을 잡고 40분간 구보를 해서 소방서에 도착한다. 요즘 말하는 얼짱은 몰라도 몸짱은 확실하다. 부인이 왕복 차비로 2천원을 주면 그것을 모아 나중에 좋은 일에 쓴단다. 휴대전화가 있어도 한달에 두 통화 할까말까이고 카드는 지금까지 가장 많이 써본게 하루 12만원으로 부인과 그날 밤 옆집에 들리도록 싸웠다고 한다. 소방서를 처음 찾아간 날부터 연이틀 비가왔다. 비가 오면 부인들은 좋아라 한단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사무실에서 밀린 행정업무를 보다가 소방서 문밖을 나갈
수 없으니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지하실이나 오래된 집에서 연기가 난다고 출동했다 돌아오고...저녁에는 침대 두 개씩 있는 방에서 저마다 자유로운 포즈로 무작정 대기를 했다. 권 소방장은 “군대에서 쫄병이 빠다 안맞고 자면 왠지 불안한것처럼 낮에 불이 안나면 밤에 뭔일이 생길까 더 걱정된다”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오인출동으로 두세번 나갔다 그냥 되돌아왔던 4월 2일 밤 11시 강남 논현동의 아파트 한 집에서 불이 났다. 안방에서 자고 있는데 거실에 켜놨던 아로마향 촛불을 애완견이 넘어뜨려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였다. 이날 밤 나는 권 소방장이 버럭버럭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후배동료들을 다그치는 모습을 보고 ‘저러다가 혈압이 올라 쓰러지는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다. 다행히 별다른 인명피해없이 진압이 됐지만 소방관들은 다음 출동을 위해 더러워진 장비를 닦고 수관(호스)을 다시 돌돌 말아놔야 하기 때문에 침대에 누운것은 새벽 3시가 다 돼서였다. 권 소방장이 무전을 듣고 출동할 때 “불이 났어, 진짜야”라고 말했는데 어떤게 장난신고이고 오인신고이고 진짜 화재인지 알수 있냐고 물었다. “컴퓨터로 전화거는 위치가 나와 곧바로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해 확인하기 때문에 요즘은 장난전화가 거의 없고 수 증기 등을 오인해 신고하는 경우는 신고가 한건뿐인데 정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신고가 동시에 서너건 이상 들어오고 신고자의 목소리 톤도 뭔가 다르고 함께 출동하라는 지령을 받는 소방센터의 숫자도 많은 것을 보고 화재가 난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정도쯤 되려면 경력이 10년 이상은 돼야한다. 경력이 몇 년 안된 한 소방관이 전해준 이야기. “24시간 근무후 퇴근해 은행에 들렀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은행 창구 번호 바뀔때 나는 딸랑딸랑 소리에 갑자기 놀라 앞으로 뛰어나간거죠. 은행 고객들이 절 이상하게 보던데요.”
<강남 논현동 화재당시 현장에 함께 출동한 VJ들>
아침 9시에 퇴근해 들어간 분당집에는 5월에 입대하는 큰 아들이 있었다. 대학교 졸업하면 소방관이 되겠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엄마 나 이거 말해도 돼?” 하더니 “만약 소방관을 하면 저는 결혼은 안할겁니다. 엄마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짠했다. 첫날 만난 소방관들은 카메라 앞에서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불을 끄고나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켰다는 보람에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이틀 사흘이 지나서는 “시험보고 소방관됐는데 주위에서 그거 아무나 하는거 아냐라고 할때 완전좌절”, “애인이 어느날 얼굴 시커매져서 다니는 소방관보고 자기도 그래? 라고 물어봐서 가슴이 철렁”등등 솔직한 말들을 쏟아냈다. 권 소방장은 마지막날 새벽 다시 태어나면 소방관하실거예요? 라는 신참의 돌발질문에 “솔직히 답을 못하겠다야”라고 말했다. 만약 카메라가 없었다면 “신참, 너도 몇 년 있어보면 답을 알거야”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방(화재집압조)과 구조대로 나뉘는 소방관은 24시간 꼬박 일하고 다음날 교대해 24시간 집에 있다가 다음날 출근해 24시간 일 하는, 휴일도 명절도 제대로 못챙기는 직업이다. 경조사도 지금까지 가본 적을 꼽으려면 두 손이 필요없다. 시간외수당은 한달 125시간중에 75시간만 인정되고 순직 비율은 일반 공무원의 2배, 다치는 비율은 4배이다. 그런데도 왜 소방관을 할까? 그런데 화재현장에서 ‘저 사람이 혹시 전생에 불하고 원수진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휙휙 날아다니는 모습을 떠올리면 연봉, 전망, 자아실현 등 일반적인 직업선택의 기준 말고도 이 직업을 계속 하게 되는 뭔가가 분명 있다.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그런것을 2580 미니츠에 조금이라도 담았었어야 하는 아쉬움과 자책감이 진하게 남는다.
<성동소방서 김상성 소방교와 가족, 허행진 카메라 기자>
<강남소방서에서 권영식 소방장과 24시간을 함께한 김경련 취재PD>
<화면편집과 구성을 담당한 서진교 차장과 김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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