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호르몬 작용에 의한 생물학적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여자 15개월,
남자 18개월. 개인차가 조금씩 있지만 결국 아무리 영원할 것만 같았던 설렘과 흥분의
최대 유효기간도 결국 2년을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열정’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72년 춤꾼 인생을 살아온 이매방 선생의 취재는 열정에 대한 사소한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우봉 이매방 선생의 팔순기념 공연’ 기사는 거의 모든 신문에 실릴
만큼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 기사 내용의 대부분은 44kg 노약한 몸의 팔순 선생이 무대에 올릴 소품과
옷감을 손수 제작한다는.. 시들지 않는 춤에 대한 열정의 찬사였다.
전화취재도 하고, 기존에 나와 있는 선생의 관련 자료도 빠짐없이 꼼꼼히
챙겨 봤다. 그러면서도 나는 솔직히 반신반의 했다. 70년 넘게 외길 인생을 걸어온
선생에게 춤에 대한 열정이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사람들이 그토록 극찬하는 선생을
통해 ‘열정’이 실로 얼마나 깊고, 뜨거운 것인지가 확인하고 싶었다.
열정은 스며서 표현되는 것.
취재 첫날, 양재동 자택에 도착했을 때 선생께선 공연에서 입을 의상을
만드시느라 분주했다. 그 와중에도 취재팀에게 대뜸 탁자에 놓인 쿠키며, 사탕 등을
한손 가득 건네신다. 죄송스런 마음에 “괜찮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표정이 굳어진
선생은 “받으라니까. 받아놓고 나중에 먹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다음 날 알게
됐지만, 선생께서 건네시는 호의엔 가식이 없다. 그런 탓에 선생의 호의를 거절하면
불호령과 함께 나쁜 기억으로 각인돼버리는 것이다.
선생은 제자들의 보필을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원래 선생의 가족은 세
명이다. 그러나 아내 김명자씨는 부산에서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터라 30년 넘게 떨어져
살고 있고, 춤을 전공한 딸 현주씨 역시 독립해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춤이 너무 좋아서 결혼 같은 건 안중에 없었던 선생. 결혼을
하지 않으면 할복을 하겠다는 가족의 협박성 발언에 못 이겨 결혼을 했다. 선생 나이
마흔 셋이었다. 그리고 마흔 일곱에 딸을 얻었다. 평생 춤과 함께 해온 부부. 그
길의 노고를 너무도 잘 아는 탓에 딸만큼은 춤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의
끼를 물려받은 현주씨 또한 춤이 좋았고, 무대에 서는 것이 행복했다. 전공은 현대무용이지만,
전통무용의 매력에 끌려 승무와 살풀이춤을 이수했다.
인사 후 일에만 몰두하던 선생께서 말문을 여셨다. “원래 한복 바지는
두 겹으로 만드는데 나는 몸이 너무 말라서 세 겹을 써.”, “이 재봉틀은 백 년
됐어. 우리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오셨어.” 5년 전 위암으로 위의 2/3를
절제한 탓에 선생의 몸은 볼품없이 야위었다. 앉고 서는 것조차 힘들어 늘 제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말을 끝내고 다시 일을 하시던 선생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얘~ 힘을 들쭉날쭉 주면 바느질이 고르지가 못하잖아.” 선생의 재봉질을
돕느라 곁에서 천을 잡아주던 제자가 힘 조절을 잘못하는 바람에 바늘땀이 삐뚤어진
것이다. 평소엔 후덕하기 짝이 없지만 춤과 관련된 것이라면 한 치의 허술함도 용납할
수 없다.
80년의 세월은 선생에게서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젊음, 건강... 그러나
춤에 대한 열정만은 늘 예외였다. 펄펄 끓어오르는 열정과 무관하게 자꾸만 떨어지는
기력은 선생을 불쑥불쑥 억울하게 한다. 선생은 우리 전통 춤을 후대에 길이길이
남기고 싶다. 이건 선생의 사사로운 욕심이전에 무인으로서의 의무이자, 예도라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선생은 춤이 좋아서, 춤을 배우고, 춤 속에 나를 스미게 하는
것이 진정한 춤꾼이라 생각하신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예와 권세를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헛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춤 속에 제 고집을 넣고,
제멋대로 변형시켜 그것을 정통처럼 남용하는 허세가 못마땅하다.
기력이 있을 땐 매로도 다스렸다. 그러나 이젠 이 모든 걸 입이 대신한다.
그 탓에 말이 많이 거칠어졌다. 따발총, 직사포, 욕대장.. 어떻게 보면 이 별명들은
선생의 열정을 간접 표현한 말들인지도 모른다.
취재 이튿날, 집안 가득 한기가 느껴졌다. 취재팀의 인사에도 묵묵부답.
그저 바느질만 하신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점심에 한 방송사와 인터뷰가 있었는데
점심을 먹고 가라는 선생의 제안을 거절하고 가버린 것이다. 그 서운함이 화로 발산한
것이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다 같이 밥 먹을
수 있게 식사 준비해라.” 그리곤 손수 주걱까지 드셨다. 선생의 손을 거쳐 간 그릇마다
고봉을 생겼다. 식사를 하는 동안, 선생께서는 취재팀을 챙기시느라 당신 밥숟갈엔
관심조차 없으시다. “저 쪽에 반찬 떨어졌다.”, “좀 더 먹어. 밥 많어.” 그리곤
굴비구이까지 뼈를 발라 취재진의 밥숟갈에 올라 주셨다. 깻잎조림부터 김치, 가자미식해까지..
선생의 음식 솜씨는 일품이었다. 선생의 집엔 언제나 따스한 밥과 맛깔스런 반찬이
준비돼 있다. 언제, 누가 찾아와도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참을 늘 챙겨두는 것이다.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라는 선생의 말처럼 사람에 대한 애정, 그 고운 마음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춤을 추게 하는 듯 했다.
취재기간 동안 많은 제자들을 만났다. 연령, 성별, 성격.. 모두 제각각이지만
선생 춤에 대한 생각은 한결 같았다. 바로 ‘마력’이다. 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 그렇다면 같은 승무, 같은 살풀이춤을 추는데 선생의 춤은 대체 뭐가
다르단 얘기일까? 답은 바로 정중동(靜中動)의 원리였다. 몸은 하나되 각기 다른
손짓, 발짓의 움직임. 상체는 동(動)으로 크고, 박력있게. 하체는 정(靜)으로 무겁고,
조용하게.. 그런데 서양무용이 들어오면서 무조건 크고, 밝음만을 좇다보니 전통
춤의 본질이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결은 의상, 음악, 감정의 삼위일체다. 이것은 선생이 장고장단만큼은
손수 고집하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잘 나가는 명무도 음악이 잘못되면 제대로
된 춤을 출 수 없는 법. 그 음악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장단인 것이다. 선생은 박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사촌누님이자, 명가수로 알려진 故이난영씨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평소 음악에 있어서 박자를 중시했던 그녀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드럼 연주자에게
손짓으로 박자 사인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은 연주자가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노래가 엉망이 돼버린 것이다. 완벽주의였던 이난영씨는 무대에서 내려와 드럼
연주자의 뺨을 가차 없이 때렸다고 한다. 이것은 음악에 있어서 박자가 중요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이매방 선생 역시 의상, 장고 장단뿐 아니라 음악편집까지 꼼꼼히 챙기신다.
이런 치밀함과 노력이 선생을 춤의 일인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덕분에 선생에게
춤을 배우려는 제자가 많다. 어림잡아도 수 만 명~. 그러다 보니 이수증 따기에만
급급한 제자도 대다수다. 심지어 모 대학강사이자, 이매방 선생의 살풀이춤 보유자로
알려진 정명숙씨는 6-7년 춤 이수 후 선생의 2-30년 제자라며 문화재청에 인간문화재
등록 신청까지 했다. 이 때문에 선생은 지금까지도 울분을 삼키지 못하신다.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다 보면 보람만큼 상처도 있다는 걸 선생은 알고 있다.
열정엔 기간이 필요 없다.
“선생이 가진 오랜 열정의 비결은 뭡니까?"라는 질문에 거침없는
대답이 이어졌다.
“나는 춤이 너무 좋아. 춤을 선택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지금도 스승만 있다면 천리만리라도 가서 배우고 싶어.”
그때 선생 눈에 담긴 애절한 진실이 마음을 타고 머리로 전해졌다.
취재기간 동안 선생의 생활을 들여다보면서 열정의 고귀함과 성스러움에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생활 곳곳에서 묻어나는, 오랜 세월 속에 곰삭은 내공의 표출이랄까..
선생의 춤 생은 녹록지 못했다. 인간문화재도 환갑이 지나서의 일이다.
무언가를 이토록 사랑하고, 갈구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불가능 했을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주위 이매방 선생처럼 훌륭한
분들 계시니 취재를 부탁한다, 이매방 선생의 열정을 본받고 싶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열정은 시시하기 짝이 없다.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요즘 같은 초고속 시대엔 열정마저도 속도를 강요받는다. 변화에 즉각 적응할 수
있는 찰나적 열정이 더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열정은 열정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존귀하단 생각이 든다. 그것이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사람의 심장을 뜨겁게 달군다는 건, 아직 꿈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취재를 통해 이매방 선생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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