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 취재 후기
제작진이 들려주는 방송으로는 못다한 이야기...
 '유혹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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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광 기자,2007-01-26
 

러시아의 소설가 안톤 체홉의 ‘비탄’이란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늙은 마부다. 어느날 이 마부의 아들이 죽는다.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슬픔. 그러나 천지간에 그 슬픔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들이 죽었다는 슬픔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슬픈 외로움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이 슬픈 외로움은 원래의 슬픔을 압도하게 된다. 결국 이 마부는 그 외로움을 털어내기 위해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낸다. 그런데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다. 말(horse)이다. "마부 노릇을 계속 하기엔 내가 너무 늙었지? 내 아들놈이라면 내 뒤를 이어 잘 할 수 있을텐데...“ 늙고 슬프고 거기다 외롭기까지 한 마부는 말을 상대로 하염없이 자신의 말을 한다. 그저 누군가가 내 슬픔을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슬픔은 많이 가신다. 적어도 몸서리치게 외롭지는 않아진다. 그게 아무런 반응 없는 짐승이어도 말이다. 그런데 그게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면? 나의 슬픔을, 외로움을, 아픔을 묵묵히 들어주는 대상이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면, 거기다 그냥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닌 마치 나의 슬픔을 다 안다는 듯 맞장구까지 처준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항상’, ‘거기’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면? 060은 그렇게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항상’, ‘거기’에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내 XX 오빠한테만 보여줄게.."
”남편이 출장 갔어요. 외로워요. 통화하고 싶어요“  060 스팸 메일은 대개 이런 식의 내용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실제 060 통화가 모두 이런 음란 대화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060 폰팅업체를 취재하던 취재진이 처음, 놀랐던 부분이기도 하다. 060 폰팅업체에 위장 취업한 취재진과 상대 남성과의 대화 내용은 예상 외로 ‘건전했다’. 취재진이 일부러 건전 대화를 유도해서는 절대 아니다. 대화 분위기는 마치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소개한 뒤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들이 오갔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상당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나아가 성적인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돈도 줄 수 있으니 일단 만나자’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화 자체는 정중했다. 물론 다짜고짜 ‘너 팬티 무슨 색깔이냐’는 식의 말을 뱉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은 ‘예의’를 갖춰 깍듯하게 말을 했다. 심지어 이른바 ‘폰섹’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존대말’로 ‘폰섹하고 싶은데 가능하신가요’ 이렇게 묻는 식이었다. 물어 보면서도 혹시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난감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이들 남성들이 이렇게 깍듯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전화를 받는 여성들이 060 전문 상담원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이웃 여성, 자신과 별반 다를게 없는 평범한 이웃 여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060 업체의 사기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060 폰팅업체 사무실은 고시원을 생각하면 된다. 한 평 남짓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방 안엔 전화기만 놓여 있으면 된다. 전화기 주위엔 보통 주소와 띠를 붙여 놓은 표가 붙어 있다. 주소는 전화를 건 남성의 부근에 사는 척 하기 위해, 띠 표는 나이를 속이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창원 사는 40대 유부남이 전화를 걸어오면 대충 마산이나 창원 어디 사는 30대 초중반 정도의 유부녀 행세를 하는 식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감쪽같이 다 속는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73년 소띤데요“, 어디 사냐고 하면 ’마산 무슨무슨 동, 아, 왜 거기 마산 mbc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속지 않을래야 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담원들은 전화를 걸어온 남성들의 사는 곳과 나이를 먼저 파악하도록 교육받는다. 한번 060에 전화를 걸어 보시라. 내가 먼저 ’사는 데가 어디신가요?‘ 물어보면 대부분 ‘그쪽은 어디신데요?‘ 하면서 되물어본다. 내가 어디라고 대답하면 상대 여성이 사는 곳이라고 대답하는 곳은 대부분 백이면 백 다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주기 위해서다. 이 모든 것이 평범한 이웃 여성과 대화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사기는 이게 다가 아니다.


 여성과 채팅을 하다 보면 060으로 전화하라는 쪽지가 심심치 않게 날아든다. 그런데 이런 쪽지를 보내는 사람은 실제 여자가 아니다. 남자다. 남자가 남자를 꼬시는 것이다. 채팅 사이트에서 뿐이 아니다. 각종 메신저나 대화방, 게시판 등 060으로 전화하라고, 통화해보고 만나자고 그럴듯한 말로 유혹하는 사람들은 다 아르바이트생이다. 그리고 거의 다 남자다. 060 업체 대표는 여자가 아닌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마케팅을 잘 한다. 왜? 남자니까 남자에 대해서 더 잘 안다.’는 거다. 한마디로 남자들이 원하는걸 잘 아니까 그때그때 그럴듯한 말로 더 쉽게 꼬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꼬심을 당한 남자가 아무 것도 모른채 060으로 전화를 걸면 업체 안에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060 업체 안에서 일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은 모두 메신저 등으로 연결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다. 꼬심을 당한 남자가 060으로 전화하면 꼬신 남자는 메신저에 전화가 왔다고 이른바 ‘콜’ 사인을 띄운다. 그러면 대기하고 있던 여자들이 일제히 그 ‘콜’을 받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꼬신 남자는 이 가운데 한 여성에게 꼬심을 당한 남자를 연결해 준다. 이때 채팅 당시 주고 받았던 내용도 메신저로 여성에게 넘겨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는 전화를 하고 있는 여성이 자신과 채팅했던 여자인줄 알고 또 이런저런 얘기들을 한다.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말이다. 호기심이든 뭐든 이렇게 일단 060에 전화를 걸게 되면 중독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항상’, ‘거기’에서 내 말을 들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중독이다. 특히 그 누군가가 직업적으로 전화를 받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이웃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말이다. 


 평범한 이웃 여성이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여 준다. 그냥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더 나아가 그 누구한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스런 이야기도. 심지어 온갖 변태적인 성 얘기까지. 싫은 기색 없이 다 들어준다. 그냥 들어만 주는 게 아니다. ’내가 맞다‘는 식으로 다 맞장구를 쳐준다. 직장 상사 욕을 하면 ’세상에 그런 나쁜 직장 상사가 있냐‘며, 아내의 험담이라도 늘어 놓을라 치면 ’오빠, 그런 마누라 데리고 사느라 고생 많겠다. 나라면 그렇게 안하고 잘해 줄텐데..‘하며, 나는 성 행위 가운데 이런이런 체위를 좋아 하는데 하면 ’어머,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이런 식이다. 그러면서 실제로 만날 수 있을 거란 환상을 자꾸만 심어준다. 어떤 남성이라도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한번 빠진 늪에선 다시 나올 수 없다. 발버둥 칠수록 더 빨리 가라앉을 뿐이다. 취재인이 만난 한 060 전직 상담원은 이 정도에 이르면 통화 상대가 전문 상담원인줄 알아도 빠져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을 여럿 봤다고도 했다. 심지어 하도 안쓰러워 보여 ‘이거 다 사기다. 정신 차리라’며 전화를 끊어도 다시 들어와 다른 상담원과 통화하고 있는 사람도 여럿 봤다고 했다. 이 여성 상담원은 처음엔 ‘너도 당해봐라’ 하는 식으로 남성들을 속이곤 했는데 이렇게 중독되는 사람들을 여럿 보게 되면서 죄책감과 회의를 느껴 060 상담일을 그만 뒀다고 했다. 그만큼 060의 중독성은 강하다. 이런 케이스도 있었다.  

 

 한 산골 총각이 있다. 두메산골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휴대폰으로 이상한 문자 메시지가 날아 들었다. ‘오빠 전화해줘..’ 뭐 이런 내용이었다. ‘이게 뭐지?’ 하면서 번호를 눌렀다. 상냥한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아 줬다. 그 어떤 여자와도 변변한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던 이 산골 총각. 그날 대화는 한 시간이 넘었다. 여자는 시종일관 친절했다. 전화는 매일매일 이어졌다. 어느 날은 산골 생활의 외로움을. 어느 날은 늙으신 홀어머니에 대한 건강 걱정을. 또 어느 날은 오늘 농사 지은 얘기를.. 여자는 그 어떤 말도 재미있게 들어 줬다. 한달 뒤, 이 산골 총각에겐 수백 만원의 통신 요금이 날아 들었다. 취재진이 만난 060 상담원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엮시 취재진이 만난 한 대학생은 수십 만원의 통신 요금을 물고도 여전히 자신이 통화했던 여성이 060 상담원이라는 것을 잘 믿지 못하고 있었다. 여대생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물며 통화 당시에야 여대생이 아닐거라곤, 상담원일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쩜 그렇게 바보같이 속았을까?’ 해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다 속았다. 위장 취업한 취재진이 전화 걸어온 남성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나이를 속이고 사는 곳을 속여도 취재진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만나줄 것처럼 하자 모두들 자신의 개인 휴대폰 전화번호를 가르쳐 줬다.  속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라면 속는 사람을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 다 속는다면 속는 사람이 아닌 속이는 사람을 탓해야 한다. 속을 수밖에 없게 속이기 때문이다. 전문 사기꾼이라는 얘기다. 사기는 범죄다.  


 현재 060 폰팅업은 관할 체신청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업종은 ‘부가 정보제공 서비스업’이다. 체신청에 신고할 때 어떤 어떤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을 밝혀야 한다. 폰팅의 경우 대부분 성인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신고를 한다.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정보 ‘제공자’가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정보 ‘제공자’는 060 상담 여성이 된다. 따라서 상담 여성과 아무리 음란한 대화를 해도 이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성인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문제는 정보 ‘제공자’가 자신이 정보 제공자가 아닌 일반 여성인척 했을 때다. 이는 명백히 불법이다. 사기다. 법원에서 사기죄로 처벌받은 판례도 있다. 전문 상담원이 상담원이 아닌 일반 평범한 여성인 것처럼 하는 것과는 반대로 실제로 일반 여성이 일반 남성과 통화하는 것도 불법이다. 정보 제공자, 즉 상담원이 아닌 여성이 정보, 다시 말해서 음란 대화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060에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는 여성이 상담원이면서 일반 평범한 여성인 것처럼 속이거나, 실제 상담원이 아닌 평범한 여성이 전화를 받는 경우, 그 어떤 경우도 불법이다. 쉽게 얘기해 060에 전화를 걸었을 때 상담원이 아닌척 하면 실제로 그 여성이 상담원이 아니든 상담원이 맞든 그 어떤 경우라도 불법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060에서 전화를 받는 여자 가운데 상담원이 아닌 평범한 여성은 없다는 것이 060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평범한 여성이 돈도 안받고 뭐가 아쉬워 남자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대화를 하겠냐는 거다. 맞는 말이다.
 

하수구는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 하수구에 오물이 흐른다고 욕할 수는 없다. 하수구는 오물이 흐르라고 있는 것이다. 060에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찌꺼기들이 떠다닌다고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취재진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060에서 음란 대화가 오가는 것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다만 상거래를 지키라는 것이다. 하수도이면서 상수도인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 평범한 여성인척 속이고, 만나줄 것처럼 속이고, 전화비가 얼마 안나오는 것처럼 속이고, 그러진 말라는 것이다. 이거 060이고 통화요금 얼마가 나오고 전화받는 여성은 고용된 여성임을 밝히고 하라는 것이다. 그대로 다 까놓고 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060에 전화를 거는 사람들한테만 장사를 하라는 것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스팸 발송하고, 무차별적으로 유혹해서 늪에 빠뜨리고, 심지어 중고등학생들까지 꼬여내서 장사하진 말라는 것이다. 경찰이든 정보통신부든 이런 걸 단속하라는 것이다. 060 업체가 사기를 치는지 안치는지는 전화 통화 한번 해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전화받는 여성에게 “상담원이세요?‘ 한마디만 물어보면 되는데 뭐가 잡아내기 어렵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제발 060 스팸 좀 그만 받았으면 좋겠어서 드리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