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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전..
작년 11월 석간신문에 한국은행이 선정한 저축 왕 관련 1단짜리 기사가 한구석에 났습니다.
팔십이 다 된 노인이 연예인들과 함께 선정됐는데 노인이 무엇을 어떻게 저축했길래 저축 왕이 되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하사용 어르신은 <2580> 출연 전부터 ‘종이컵 모으는 별난 할아버지’, ‘저축 왕’, 그리고 ‘자린고비’로 몇 차례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은, 할아버지의 인생 얘기를 풀어내기 위한 사전 취재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질문이 한 가득 써진 노트를 펼쳐 놓고 어르신께 전화를 드렸던 첫 날.
“MBC 시사매거진..”이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에선 쩌렁쩌렁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와서 그 사람을 보고 야그 해야 지대로 알 거 아녀. 아까운 전화비만 날린당께. 와서 혀~”
어르신의 성품 또한 신문 지면에 실린 얼굴만큼이나 꼬장꼬장, 고지식의 표본인 듯 했습니다. 그 후 몇 차례 더 전화통화를 시도 해봤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을 하셨고, 어쩔 수 없이 저희 제작진들은 기존에 소개됐던 내용만을 숙지하고 충북 청원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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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충북 청원군 강외면에 자리한 어르신의 집. 마당엔 주워온 고물들로 가득했고 집안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건 없었습니다. 취재 내내 점퍼를 입고 있어야할 만큼 방 공기는 차가웠고, 곳곳에는 주워온 물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습니다. 어르신 댁은 한겨울에도 실내온도를 항상 17도로 유지하고 머리도 찬물로 감아야 합니다. 그 탓에 겨울마다 벌어지는 어르신과 식구들 간의 실랑이는 일상이 된 지 오랩니다.
뿐만 아닙니다.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1-20대 손주들의 고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행여 피자라도 한 번 시켜 먹을 때면 마치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합니다. 일단 어르신의 동태를 파악한 후, 집을 비운 막간을 이용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피자를 배달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배달된 피자는 부모님이 사시는 이층으로 들고 올라가서 어르신이 오시기 전에 먹어야만 합니다. 어르신이 짠돌이라는 것은 이미 청원 일대에 정평 난 사실! 그 탓에 배달원들도 집과 거리가 다소 떨어진 곳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조심조심 걸어서 온다고 합니다. 한번은 피자를 시켰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나가 봤더니 어르신이 계신다고 착각한 배달원이 문도 두드리지 못한 채, 몇 십 분 동안을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습니다.
당신 손으로 가장 큰 돈 주고 샀다는 만 원짜리 점퍼, 십년이 훌쩍 넘어 남루하기까지 한 바지, 세 켤레만 있으면 겨울 한철 너끈히 지낸다는 버선에, 삼천 원짜리 고무신 신은 백발노인...
어르신께서는 거실 벽에 걸린 너댓 개의 시계와 티비 등 주워온 물건들을 자랑스럽게, 친절히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습니다. 물론 모두 옳은 말씀이긴 했지만, 지나칠 만큼 절약을 강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축 왕에, 땅 만평을 가진 만석꾼인들 정작 당신이 누리고 즐기지 못하는데 그게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자, 어르신께서는 지난 80년의 인생 얘기를 속사포처럼 쏟아놓기 시작하셨고, 그 언변은 과히 만담가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월사금을 내지 못해 퇴학당한 후 엿 장사를 하던 시절, 한 번은 서울까지 엿을 팔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추운 겨울이었는데 빙판길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바람에 엿을 다 쏟아버렸습니다. 쿵 소리에 놀라 달려 나온 개 한 마리가 땅에 널브러져 있던 엿을 주워 먹곤 이가 붙어버려 짖지도 못하고 한참을 고통스럽게 끙끙거렸다는 추억담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곤 말 안 듣는 개한테는 엿을 주라는 생활 속 지혜까지 친절히 귀띔해 주셨는데 그 바람에 집안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얼마 전 한창 논란이 됐던 노대통령의 감정어린 발언 모습을 통해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돋보기 없이도 깨알 같은 글을 읽어낼 만큼 밝은 눈으로 세상을 읽고 계셨고, 팔십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의 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사회 전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셨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어르신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박정희 전대통령께 표창을 받을 만큼 모범 농민으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또한 취재 기간 중에도 새마을 운동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중국에서까지 찾아올 만큼 유명 인사였습니다.
50년 전, 어느 아침 서리 내린 밭을 걷다가 우연히 떨어져 있는 종이를 주웠습니다. 서리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에 덮여있던 식물이 파릇파릇 살아있는 걸 보시곤 비닐하우스 농법을 터득했습니다. 국내최초로 시도된 비닐하우스 농법은 농가에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농촌후계자들은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송덕비’건립을 추진해왔지만, 어르신의 반대로 미뤄오다 지난 2001년에서야 비로소 건립됐습니다. 취재 내내 만나는 사람들의 입에선 어르신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어르신은 “나는 내 할 도리만 했을 뿐이랑께~”라며 사춘기 소년마냥 쑥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밖에도 동네 노인회관은 물론, 지역 경제를 위해 농협 세울 수백평의 부지도 선뜻 내놓으시고, 가족조차 몰랐을 만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말없는 선행을 베풀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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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후..
‘잘 사는 法’의 가제는 ‘新 자린고비’였습니다. 그러나 취재를 하면서 보고, 느낀 어르신은 결코 자린고비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에겐 야박할 만치 인색하셨지만, 한푼 두푼 소중히 모은 돈을 진짜 필요한 곳,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후덕한 실속주의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르신께 의문을 가집니다. ‘그렇게 모으기만 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거냐?’ 그러나 어르신께 부귀영화란 거대한 재산, 목적이 아니라 차곡차곡 모아가는 과정, 현재 그 자체였습니다. 노력 없이는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수 십 년을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뭔가 하나씩 이뤄가는 성취감.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부지런히 살아가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어르신께서는 몇 년 전, 평생 소원이셨던 땅 만평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종이컵 모종을 팔아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불우 학생들을 위해 1억 장학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불우학생들을 위해 4천만원 장학금 기부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재 아드님이 청원군의원직을 맡고 있는 터라 선거법에 저촉이 된다는 이유로 기부시기를 재임 기간 후로 보류를 해둔 상황입니다.
요즘 어르신께서 부쩍 바빠지셨습니다. 방송 후, 대학교를 비롯한 각 단체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할 만큼 어르신을 찾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급기야 얼마 전엔 방송을 보신 현직 장관님께서 어르신 댁을 다녀가셨다는 후담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바쁜 와중에도 여전히 종이컵을 주우러 동네 곳곳을 다니십니다. 그리고 봄 농사를 위해 40년 만에 하는 객토작업과 비닐하우스 시공까지 꼼꼼히 챙기십니다.
평생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하시면서도, 힘든 사람들에겐 한없이 베푸시는 하사용 어르신! 방송을 통해 어르신의 이런 정신이 사람들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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