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리~ 띠리리리~. “2580이죠. 인터넷 사기를 당해서 전화를 했는데요.” 2580팀에 걸려 오는 전화제보
중에는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전화를 주시는 분들은 연령, 직업이 다양하지만 호소하는 내용은 대개 비슷합니다. “단 돈
만원이라도 싸게 살려고” 인터넷 장터를 뒤지다가 “자신도 엄마라는 말을 믿고” 또는 “물건을 보냈다면서 송장번호까지 불러 주는 바람에” 돈을
보냈는데 사기였다는 것입니다. 2580은 인터넷 사기를 취재하기로 했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인터넷 사기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서울 관악경찰서 한 곳에만 한 달에 50건 정도의 인터넷 사기 신고 전화가 걸려오고, 정식 문서로 접수되는 건수도 한 달에 30건은 된다는
겁니다. 관악서 관계자는 “서울의 다른 경찰서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만 매일 수십 건의 인터넷 사기가 발생한다는 거고,
그 얘기는 돈 날리고 속상해서 며칠씩 잠 못 자는 사람들이 매일 수십 명이 생겨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2. “대포통장은
추적하기 어렵습니다.”
취재중 관악경찰서에서 만난 박성진 조사관은 “인터넷 사기에는 대포통장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포통장은
추적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대포통장은 국어사전에 (1) 화약을 쓰는 무기 (2) 거짓말, 허풍이란 뜻으로 풀이돼 있습니다. 범인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남이 이름으로 된 통장을 썼을 때 대포통장을 썼다고 하는데, 4~5년 전부터 이런 범죄가 많이 발생하면서 생겨난
말 같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가 만난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이동환 수사과장은 “대포통장이 쓰인 인터넷 사기는 짧게는 2달, 길게는
1년씩도 수사를 하는데 결국 진범을 못 잡는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통장을 판 사람은 범인과 통화만 했지 얼굴은 본 적이 없고, 통화를
했다는 휴대폰 번호는 대포폰이어서 범인은 마치 유령처럼 자신을 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동환 수사과장은 “요즘은 개인들이 통장을 파는 경우도
있다”면서 “하지만 통장을 거래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통장 판매를 처벌하는 법은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입니다.
취재 포인트는 인터넷 사기에서 대포통장으로 옮겨 가고 있었습니다.
#3. “제 명의로 된 통장을
팝니다.”
대포통장 판매업자가 인터넷에 광고까지 하면서 대포통장을 판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 대포통장
판매업자들은 노숙자들에게 돈을 주고 통장을 만들어 파는 걸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들이 직접 자신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판다는 것,
그리고 그런 개인들이 인터넷에 통장판다고 올린 글이 화면 가득 뜬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습니다.
취재진은 그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통장을 사겠다고 하고 만났습니다. 약속장소에 나온 20대 초반의 남자는 자신을 대학 휴학생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알고 지내는 형과 오락실
사업을 하다 망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통장 4개와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한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통장 4개 18만원에 가져가세요.”
#4. “저희는 수사기관이 아니라서...”
취재 중에
입수한 대포통장의 주인 두 명의 이름을 인터넷 사기 피해 사이트 ‘더 치트’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두 명의 이름으로 된 사기피해 사례가 여러 건
올라 있었습니다. 통장 명의가 같고 계좌 번호가 유사한 걸로 봐서, 판매업자와 개인이 팔아넘긴 통장은 여지없이 인터넷 사기에 이용되는 걸로
보였습니다. 통장을 발행한 은행 본점을 찾아가 대책을 물어 보기로 했습니다.
해당 은행에선 “수사기관이 아니라서 대포통장이 거래되는
걸 막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사기 피해자가 대포통장을 은행에 신고한다고 해도 “계좌 주인의 동의없이는 지급정지나 환불, 계좌폐쇄중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자의 말이 사실인 지도 확인할 수 없고, 일단 계좌송금이 되면 그 돈의 소유권은 이전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포통장 주인에 대한 정보는 오직 은행만이 갖고
있습니다. 검찰이나 경찰도 이 정보를 손에 넣으려면 법원의 영장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수사기관이 영장을 발부해 대포통장 주인을 불러 조사를
하는데 빨라야 1주일, 그러는 사이에도 대포통장은 사기에 계속 쓰이고, 은행과 금융감독원은 대책이 없다는 말부터 하고, 경찰은 단속법규가 없어
대포통장을 사고팔아도 못 잡는다고 하고, 일단 대포통장이 범죄에 쓰이면 추적이 어렵고, 현실은 참
답답했습니다.
#5 “통장 팔고...정말
치욕스럽습니다.”
대포통장은 일단 거래를 막아야 하는데, 대책은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서 30여명의 국회의원이 대포통장을 단속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입법이 돼야겠습니다. 대포통장을 이용한 사기는 대개 몇 십만 원짜리 서민 등치는 범죄가
대부분입니다. 국회가 빨리 법을 제정하고, 경찰이 대포통장이 범죄에 쓰이기 전에 거래단계에서 단속하면 대포통장을 이용한 사기가 줄어 들
것입니다.
은행과 금융감독원도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됩니다. 피해자-경찰-은행을 이어주는 가칭 ‘대포통장 핫라인’ 같은 걸 만들면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은행은 대포통장의 주인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으니까,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신고확인증 같은 걸 떼서
은행에 문의를 하면, 은행은 통장주인에게 어찌된 일인 지 확인 해 봐야 합니다. 은행은 통장 주인의 동의를 받아 대포통장을 폐쇄시킬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통장이 사기에 이용되고 있는데도 그 통장 그대로 두라고 한다면 그 통장 주인은 뭔가 이상한 것 아닙니까.
앞서
말씀드린 인터넷 사이트 ‘더 치트’에는 황모 씨가 자신의 실명으로 올린 글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황 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통장 6개를
팔았다가 사기 사건에 연루돼 지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황 씨는 경찰에서 이미 3번 조사를 받았고, 앞으로도 2번 약속이
잡혀 있다면서 “조사 받으러 가는 일...정말 치욕스럽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대포통장 단속법규가 없어도, 일단 대포통장이 범죄에 쓰이면
경찰은 통장주인부터 조사를 합니다. 그래야 통장을 팔았는지, 진짜 사기꾼인 지 알 수 있으니까요. 단속법이 없다지만 통장 잘 모르고 팔다가 황
씨처럼 큰일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