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 취재 후기
제작진이 들려주는 방송으로는 못다한 이야기...
 '장수동 개지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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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광,2006-03-29
“선배, 기사 송고했습니다.” ‘인천 장수동 개 학대 사건’ 기사를 송고했다. 죽 기사를 읽어본 데스크, “어, 그래. 그런데 제목은 뭘로 하지?” 하고 물었다.

“제목이요? 글쎄요...뭘로 하죠?” 데스크에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되물었다. 순간 약간의 핀잔을 각오했다. 왜나하면 아이템 보고든 기사든 주제가 잘 서 있으면 당연히 ‘제목’부터 딱 나와야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글쎄, 뭐 ‘차라리 안락사를..’ 정도면..”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내 말꼬리를 잡고 평소 큰 목소리로 농담 따먹기 하는 걸 좋아하는 모 선배가 “그거 말고, ‘차라리 된장을 발라라’”가 어떠냐며 본인이 생각해도 기발하다는 듯 마구 웃어 제꼈다. 이게 시작이었다.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이때 나온 제목들은 ‘개 같은 내 인생’ ‘차라리 죽여라’ ‘개들의 아우슈비츠’ ‘이런 개만도 못한..’ 다시, 그래도 ‘차라리 된장을..’이 제일 낫지 않냐 등등...

한바탕 시끌벅적했던 사무실 분위기와는 달리 방송은 ‘견공 잔혹사’라는 다소 고상한 제목을 달고 나갔다.

방송이 나간 뒤 2580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개들이 불쌍해서 어쩌냐’는 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개 주인을 그 개장에 가둬 놓고 똑같은 고통을 당하게 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에서부터 ‘조폭 애견인을 동원해 개들을 구출하자’는 황당한 의견들도 여럿 있었다. 인터넷 포털들에서도 이번 사건으로 들끓어 올랐다.

네티즌들은 이번 보도에 ‘장수동 개지옥’ 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개지옥이라...

고백이랄 것도 없지만 나는 보신탕을 먹는 쪽에 속한다. 그것도 ‘즐겨’ 먹는다. 처음 제보를 접했을 때도 ‘그 뭐, 어차피 복날이면 도살당할 텐데...’하며 썩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현장으로 갔다.

그런데 가서 개들을 딱 본 순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백번 천 번을 양보해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이라도 식용 ‘상품’으로서의 최소한의 관리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좁은 우리 곳곳에 널려 있는 오물하며 그 오물을 온 몸에 묻히고 쉰 냄새가 펄펄 풍기는 상한 밥을 먹고 있는 개들. 그나마 방송국에서 취재 온다고 대충 치워 놓은 것이 그 정도였다. 위생은 단순히 보기에 더럽다 하는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의 개들이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털이 뭉텅뭉텅 다 빠져 나간 피부에서 진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개들. 그 상처를 핥기 위해 있는 대로 고개를 돌리고 혀를 쭉 빼고 있는 모습하며.

얼마나 가렵고 고통스러울까.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좁은 우리에 갇혀 있다 보니 자기들끼리 싸우고 물어뜯어 뻘건 맨 살을 드러낸 개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동행한 수의사는 그런 현상을 동족이 동족을 물어뜯어 죽이는 ‘카니발리즘’ 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수의사는 장수동 개들에게선 전형적인 카니발리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사육장 주인은 취재팀에게 수십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끔찍했다. 머리와 다리 한쪽만 남기고 몸통은 다 뜯어 먹힌 자그만 강아지. 머리만 남은 그 강아지의 눈엔 고통의 피눈물이 흘러 고여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끔찍했던 건 어미개가 금방 낳은 자기 새끼 머리를 뜯어 먹는 사진이었다. 털도 나지 않은 그 강아지의 머리 없는 붉은 목은 그야말로 섬뜩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리포트에도 나간 또 한 장의 사진. 죽은 수컷 개 옆에서 서너 마리의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어미 개. 또 다른 개는 죽은 수컷의 냄새를 맡고 있고.

사진 속의 개들은 어떻게 됐냐고 사육장 주인에게 물었다. 대답은 명쾌했다. “다 죽었지 뭐.” 죽은 수컷 개는 다른 개들이 다 물어뜯어 먹었고. 어미 개는 전염병으로 죽고. 어미가 없어진 새끼들은 다른 개가 또 물어 죽이고. 그야말로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

방송이 나가고 일부 수십 마리의 개들은 동물 보호 단체에 구조되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여전히 보상금을 둘러싸고 사육장 주인과 구청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장수동 말고 인천의 다른 지역의 개 학대 사건이 또 터져 나왔다.

현행법상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 조항은 벌금 몇십 만원이 전부다. 학대 행위를 막기엔 턱없이 약하다는 것이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학대받는 동물들을 빼앗아 올 수도 없다.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는 돼지나 소처럼 가축법상 식용 가축에 포함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개 우리 등에 대한 환경 위생도 가축법을 적용할 수가 없다. 엄연히 보신탕이 팔리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개 사육에 대한 법제도는 전무한 셈이다.

이 때문에 보신탕을 금지하라는 쪽과 양성화 하라는 쪽의 해묵은 논쟁이 계속돼 왔다. 여기에 동물보호단체에선 동물학대 방지법의 처벌 조항을 강화해줄 것과 학대받는 동물들을 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긴급히 구조할 수 있는 이른바 ‘피난권’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회원과 개 사육장 주인. 보신탕 매니아와 애견인. 이 극과 극의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접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비록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이라고 해도 그 순간까진 ‘지옥’에서 살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법이든 뭐든 말이다.

[시사매거진 2580][유재광 기자]